나는 새해가 싫다
나의 세 자녀는 모두 사랑스러운 외모와 그에 걸맞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놀라곤 한다.
‘무슨 고양이가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만져주는 걸 좋아하지?‘
그에 대한 해답을 여러 해를 걸쳐 생각해오고 있는데 우선 3묘 1인 체제라 사람이 귀한 탓도 있다. 아이들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인간이 오직 나 하나뿐이기에 아이들은 나에게 유독 집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에게 끝없는 사랑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면아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유년기의 기억은 평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내 아이들은 유년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 내 아이들은 단 한순간도 사랑받지 않은 적이 없다. 그렇기에 이토록 구김살 없고 사랑스러움을 유지한 채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글에 여러 번 등장한 적 있는 ‘그 녀석‘은 내가 아이들에게 쏟는 정성의 십 분의 일만 자신에게 주면 몹시 감동받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정도로 나는 아이들에게 내 인생의 삼분의 일 이상을 바쳐왔고 마음의 무게로 따지자면 반 이상이다.
오늘도 유난히 회사에 가기 싫어 오전반가를 내고 책을 읽었다. 문득 옆구리 사이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져 쳐다보니 나의 막내딸 정라떼가 기대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딸의 사랑스러움을 지켜보며 이 아이를 보지 못한다면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가 밝았으나 마음이 가볍지 않은 것은 한 해가 간 것이 좋은 일이 아님을 알게 될만큼 나이가 무거워졌기 때문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