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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을 수 있다면

모로코 3주간의 여행기

by 하안

모로코의 첫 느낌은 두려움.

이 나라가 사람 때문에 싫은데 사람 때문에 좋다.


길거리만 걸어도 모두가 쳐다보는 느낌과 끝이 없는 “니하오”가 모로코 여행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들, 반응할 때까지 따라오는 차, 무례한 행동들과 눈빛. 시선 때문에 덥지만 반팔 입기가 싫었고, 왜 여자들이 히잡을 쓰는지 이해될 정도였다. 햇빛을 피할 수 있는 나무 밑 그늘처럼 시선을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최대한 공격적인 표정을 짓거나, 바람막이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바닥만 보고 걷거나,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줄 힙합 음악을 크게 들으면서 걸었다.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내가 왜 모로코에서 2주를 지내려고 했을까 후회됐다.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와 가까운 시골마을 ‘카리아’에 도착했다.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모로코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신청했었다. 과거의 나는 이런 기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최소 2주는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순수한 눈동자와 호기심이 담긴 입술, 따뜻한 포옹까지.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람들 때문에 모로코가 좋아졌다.


자원봉사 헬퍼로 만난 나빌. 나빌은 모로코 인플루언서이면서 옷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동생 카리드는 모델을 하고, 또 다른 동생 바크만은 옷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형제 6명이 모두 나빌 옷 가게에서 일한다.


나빌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더 큰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한국사람인 내가 모로코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카리드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전에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놓쳐버린 것을 너무 후회한다고 했다. 영어로 대화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답답하다고. 나는 누구에게 이런 큰 존재가 되어본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의 인생에 자리 잡아 마음 한자리를 차지한 적이 있었던가. 그가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우리는 같이 커피를 마시고, 옷가게에서 일하고, 축구도 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모로코에서 인생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아침을 먹고 느지막이 학교를 가거나 가게를 열고, 오후 3시쯤 점심을 먹는다. 오후 내내 차나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는다.


한국에서의 나는 인생의 대단한 목표나 꿈을 꾸려고 했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고 했고, 가끔은 극단적으로 절약하기도 했으며, 매일매일을 꽉 찬 하루로 만들고 싶어서 하기 싫은 일과들을 가득 채워나갔다. 하지만 하루 일과는 빠르면서도 느리게 흘러간다. 온전히 그 시간들을 즐기고 있었는지 혹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목표 없는 목적달성은 공허하기도 했다. 아무리 나를 증명하려고 애써도 꿈이 없는 진전은 불안함을 친구 삼아야 했다. 나는 항상 불안했다.


퇴사를 하고 문득 그 시간을 버티지 못한 것 같아서 나 자신에게 많은 의문을 가졌었다.


나는 다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 나는 회사와 잘 맞는 사람일까? 나는 꾸준함이 부족한 사람일까? 나는 멘털이 약한 사람일까? 나는 왜?


불안함을 잠재우고 떠나온 아프리카 땅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나빌은 매일매일 “You're so amazing"이라고 말해줬다. 영어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나빌 입장에서는 최고의 칭찬인 것을 알기에 평범한 감탄사가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유도 없이 나를 사랑한다. 나는 사랑받을 수 있다면 인생에 어떤 목표가 없어도 살만하다고 느꼈다. 아니 그냥 전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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