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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비바티 Apr 11. 2021

캐나다에서 뉴질랜드에서 제주도에서 서울로.


사람의 일은 알 수가 없다는 말, 

정말 공감하는 말 중의 하나이다. 

너무 힘들었던 고난의 시간이 나중에 보면 좋은 일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했던 발판인 경우도 종종 있고, 쉽고 좋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양날의 칼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는 게 인생이라는 것, 클리셰같은 말이지만 정말 그렇더라.



내 인생의 롤러코스터

몇 년을 열심히 노력해서 캐나다에서 영주권까지 취득하고 살다가 4년만에 한국에 돌아왔던 나는, 한동안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인생 최대의 우울한 시기를 보내다 기분 전환을 위해 나갔던 모임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몇 년의 행복한 연애 후 쉽게 결혼을 결정했으나 하필 남편의 출신 국가가 부유한 사우디인 바람에, 외국인에 대한 비우호적인 법률로 한국에서 결혼하는 것이 힘들었다. 온갖 방법을 강구하고 시도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8개월 여를 떨어져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을 캐나다로 불러들이는 방법도 시도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불발되었고, 나는 영주권을 포기할 각오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캐나다 영주권을 유지하려면 일정한 기간동안 캐나다에 거주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많은 조사 끝에 우리는 외국인들도 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 있는 뉴질랜드에서 결혼식과 혼인신고를 할 수 있었고, 가족들과 조촐하게 치른 뉴질랜드 바닷가에서의 결혼식은 우리 둘의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있다. 



제주도 세달살기도 결국은 비슷했다.

서울에서 내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근무 시작까지 2주를 기다리고도 사무실 앞에서 돌려보내지는 수치스러운 경험을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꿈만 꾸던 제주도로의 이사를 결심할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도 새로운 힘듦이 있었지만, 한달 간 힘들게 레스토랑에서 버텼던 덕분에 새로운 구직기간과 취업박람회 기간이 겹쳐 지금의 직장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제주도의 많은 직장이 그렇듯, 꽤나 박봉이다. 하지만 5분만 걸으면 에메랄드빛 바다가 반겨주는 직장에서 전공을 살린 사무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고, 정이 넘쳐나는 직장 동료들에 감사했다. 주6일 근무에 평일에만 하루 쉴 수 있었던 이전 일과 달리 주말 이틀을 꼬박 쉴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그제서야 제주도에서의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오름도 많이 가보고 바닷가도 많이 거닐었다. 


하지만 직장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최대한 제주도의 자연을 즐기던 나와 달리, 외국인을 고용하는 일자리도, 시간을 함께 보낼 친구나 가족도 없었던 시골에서 남편은 점점 말수가 적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제주도에서의 생활을 '세달살기'로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사실 100% 남편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고, 나또한 주말마다 가족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그리웠고, 모든 것과 동떨어진 삶이 쉽지만은 않기도 했다. 

자연스레 제주도에서의 직장은 그만두게 되었으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서울에서의 원격근무를 제안했고, 감사하게도 나는 서울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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