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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엘라 Mar 18. 2020

ep21. 식욕 폭발, 요요가 왔다

누르면 반드시 튀어 오르는 스프링처럼

소금 간도 하지 않은 삶은 닭가슴살은 

꽤 맛있(었)다.







 나는 닭가슴살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맛있었다. 닭가슴살을 3일에 한 번 1kg씩 삶아놓고 100g씩 소분해서 늘 챙겨 먹었다. 언제부턴가 살이 빠지겠지 하며 먹는 닭가슴살은 꽤 먹을만했다. 눈바디가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2주 동안 무탄수화물 식이도 해봤다. 그리고 내 몸에 기쁜 변화가 찾아왔다. 

 허리둘레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평소 27 사이즈를 입었는데, 조금 헐렁해졌다. 바지가 점점 커져서, 매장에 가서 사야 할 정도였다. 매장에서 맞는 사이즈는  25. 그리고 얼마 지나자 그 바지가 또 헐렁해져서, 맞는 바지를 사러 매장에 가야 했다. 24 사이즈 바지마저도 헐렁해져 허리띠를 사러 역 주변 노점을 돌아다녔다.  
불과 한 달 동안 생긴 변화였다.  



 이제 나에게도 건강한 날씬이의 삶이 오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평생 닭가슴살에 채소만 먹고살 수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과자나 초콜릿이 먹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땐, "내가 돈을 주고 살을 찌우려고 하네", "내가 아는 맛 인 걸", "후회는 금방 하게 될 거야." 등 마음을 다잡으면 금방 식욕이 사라졌다. 친구들을 만나면 닭가슴살 도시락을 챙겨갔고, 친척 어른들을 뵙는 자리에서는 일부러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늦게 밥을 먹거나, 밥을 덜어서 먹었다. 심지어 썸을 탈 때도,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만 식사했다. 내 의지만 있으면 건강하게 먹는 건 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의지를 굳게 한다는 게 내 욕구를 누르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리고 눌려있던 식욕은 터지고야 말았다.  






"사 오는 사람 따로 있고, 먹는 사람 따로 있냐?"

"아~쫌. 그거 먹은 거 가지고 그래~"




 

방울토마토를 두고 하는 대화였다.   

점점 먹고 싶은 게 늘어났고, 나는 토마토를 먹는 것으로 다스리기로 했다.  


처음엔 5알만 꺼내 먹었다. 배가 차지 않았다. 

또 5알을 먹었다. 부족했나 싶어 또 냉장고를 열었다. 

그렇게 냉장고를 수시로 열었다 닫았다 하다 보니, 토마토 한 근은 내 입 안에 다 넣어졌다. 그것도 자기 전에. 

밤에 어떻게든 참고 잠을 자려고도 해봤다. 배고픔에 새벽에 눈이 떠졌다. 그럼 잠을 다시 자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토마토 몇 알을 물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집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지하철을 타기 전, 괜히 편의점을 기웃거린다거나, 지하철 내 자판기에 어떤 과자가 있나 유심히 살펴보는 횟수가 늘었다. 그리고 헬스장을 갈 때 체크카드를 챙겨 나가기도 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운동 한 뒤 파리바게트에 들러 생크림이 가득 들어있는 소보로를 한 개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생크림의 달콤함과, 소보로의 바삭 거림과, 고소한 버터향이 너무 반가웠다. 그래 이 맛이었어. 






빵 한 개로 먹고 싶은 게 해소가 되었길 바랬지만, 입 터짐의 시작이었다. 

매일 잘 먹어오던 닭가슴살인데도 생각만 하면 맛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강해졌다. 닭가슴살 대신 먹을만한 맛있는 단백질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연어도 챙겨 먹고, 두부도 샀다. 야채샐러드에는 옥수수콘을 넣어 먹기도 했다. 

건강한 식사인 듯, 살짝 반칙인 듯한 음식으로 시작했는데, 점점 야채보다는 옥수수가 많아지고, 통밀이 들었다는 이유로 식빵도 먹고, 계란에도 케첩을 뿌려먹었다. 눌렸던 식욕이 해소가 되지 않았고, 건강하게 먹은 것도 아니니,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차라리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버리면 먹고 싶은 음식이 없지 않을까?"


남들이 운동할 때 하는 그 치팅데이를 가지기로. 메뉴 선정은 '미래의 배고픈 나' 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 날은 바로 왔다. 

퇴근길에 지하철에 앉아서 오지 못한 날이었다. 터벅터벅 집 근처에 왔는데, 눈 앞에 평소엔 거들떠도 보지 않던 맥도널드의 m 싸인이 너무 눈에 확 들어왔다. 어딘가에 이끌리듯 들어가서, 빅맥 버거 세트 하나를 시켰다. 감자튀김에 콜라까지 다 먹었는데, 배부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칼로리만 계산한다면 평소량의 몇 배는 되었겠지만, 먹고 싶은 걸 남기면 또 음식 생각이 날 것 같았다. 상하이 스파이시 버거 하나를 추가 주문해서 바로 끝냈다. 

배가 완전히 부르지는 않았다. 
입가심할 거리가 없을까? 하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초코칩이 박힌 부드러운 쿠키가 2+1이었다. 한 개로는 모자랄 것 같으니 세 개를 집었다. 그리고 평소에 좋아하던 콘 아이스크림도 하나 집었다. 계산을 하자마자 쿠키를 하나 까서 먹고, 아이스크림을 크림부터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엄청난 양을 먹고 집에 왔다. 엄마께서 저녁상을 차려주시려고 하기에, 밥 생각이 없다며 방에 들어갔고, 나머지 쿠키 2개를 마저 먹어버렸다.   





본능에 이끌려 먹고 싶은 걸 다 먹은 나는 행복했을까? 

음식을 먹을 때는 잠깐 행복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죄책감이 몰려왔다. 
운동을 시작한 후에 이렇게 폭식을 한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다스려야 할 줄 몰랐다. 
급하게 가장 작은 24인치 바지를 입어봤다. 느낌인지 꽉 끼는 듯했다. 
지금이라도 달리고 올까 싶었지만, 배가 꽉 찬 느낌이었기에  움직이기 싫었다. 
그런데 더 절망적이었던 건, 이 생각을 하면서도 또 냉장고를 열어보며 맛있는 군것질은 없나 찾아보는 나였다.


그 뒤로 닭가슴살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먹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평소에 입던 바지를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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