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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엘라 Mar 18. 2020

ep22. 갑자기 걸을 수도 없게 되었다

헬스장에서 앰뷸런스를 부르다

햄버거 폭식 그 후

나는 1년 동안 열심히 먹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몸에 나쁜 게 들어오면, 다리가 저리고 아파서 위가 찢어지도록 먹지는 못하지만, 떡볶이, 김밥, 냉면, 김치찌개, 피자, 파스타, 짬뽕 멘보샤, 치킨 등 먹고 싶은 음식을 잘 챙겨 먹었다. 술도 먹고 싶을 때 먹었다. (이 많은 음식들을 어떻게 참아온 걸까?)
오후에 당이 떨어질만하면 커피, 도넛, 초콜릿, 떡 등 간식거리도 넉넉했다.  그리고 난 열심히 먹었다. 


다만, 한 가지 지킨 건 있었다. 
운동.

주로 새벽 6시 헬스장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추어서 일어났다. 힘이 들면 드는 대로 유산소만 하거나, 가벼운 아령을 들면서 1시간 반 운동은 꼭 했다. 운동까지 놓아버리면 다시 폭식, 요요, 섭식 장애로 돌아갈 것만 같달까? 운동은 일종의 합리화 의식과 같았다. 
 




아침에 피곤해서 운동을 못해 퇴근 후에 헬스장을 간 날이었다. 오프라인으로 PT 열 번한 게 배움의 전부였기 때문에, 헬스장에서 운동을 잘해 보이는 사람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날은 누워서 다리를 밀어내는 운동기구에 꽂혔다.  


처음 하는 건 아니었기에 오늘은 120kg부터 시작해볼 계획이었다..
이전에도 양 옆에 각 60kg씩 120kg를 밀어낸 본 적이 있었기에, 한 세트 해보고 할 만하면 무게를 더 올려볼 참이었다. 20kg 원판을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세 번째 20kg 원반을 잘 꽂을 때였다. 

'읍'

쿵 소리도 아니었고, 소리가 아예 안 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발이 얼얼했다. 
원반을 내려놓고, 벤치에 일단 앉았다. 발가락이 어디에 부딪힌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평소랑은 느낌이 달랐다. 찌릿한 발을 끌고 혹시 구급약이 있는지 인포메이션에 물었다. 뭔진 몰라도 피는 약간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포메이션에 있던 직원은 나에게 약을 주는 게 소용이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  

"운동화 위에 비친 그거 피 아니에요?" 

그랬다. 나는 속에서 피가 좀 많이 났는지, 운동화를 적실 정도였다. 트레이너는 급하게 119를 불렀고, 그때까지 여직원이 내 짐을 싸주고 수건으로 발을 감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근처 병원 응급실로 갔다. 병원에서는 바로 휠체어를 내주더니 부목을 대고, x-ray를 찍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발톱은 완전히 으깨졌고, 발톱이 자라는 문이 크게 망가졌다고 하셨다. 발가락 뼈도 살짝 부러졌다며 지금 당장 입원하고 아침에 전문의 진료를 보라고 하셨다. 
얼떨결에 입원 수속 서류에 사인을 했다.  


병원 도착 직후 응급처치. 이때까지만 해도 입원하고 수술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내 발인데 내 것이 아니었다. 밤새 아이스팩으로 찜질했지만 아픈 건 가라앉지 않았고, 걷는 건 더 어려웠다. 발을 침대에서 땅으로 놓기만 아팠다. 그래도 밤새 아물었길 바랬는데, 의사의 답변은 "오늘 당장 수술하라"였다.  

잘 꿰매 준다는 병원을 찾아 다시 입원 수속을 하고, 바로 수술했다. 마취를 하고, 철심을 박고, 깁스를 만드는 것 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수술이 생각보다 짧았고, 아프지 않아서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금방 퇴원할 줄 알았다. (마취빨, 무통주사빨인 걸 몰랐다.) 


그런데 나는 혼자 움직일 수 없는, 도움이 무조건 필요한 환자였다. 
먼저 내가 배정받은 병실 이름이 집중치료실이었다. 그 병원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돌봐야 할 환자들이 가는 병실이랜다. 모든 움직임을 할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휠체어에 앉는 것, 화장실 가는 것, 밥 가져오는 것, 정리하는 것, 씻는 것, 옷 갈아입는 것 까지 말이다. 
 
쉬는 것도 좋고, 회복시간이 느린 것도 알겠는데, 몸이 불어나는 느낌은 견디기 힘들었다. 아무리 기름진 음식이 아닐 지라도, 걷지를 못하니 활동량이 제로인 셈이었다. 환자복이 헐렁하니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느낌으로 살이 붙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살이 확 찌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5일 뒤 퇴원을 했지만, 깁스는 한 달을 더 해야 했다. 한 달은 더 운동을 못하니, 집에서 홈트레이닝도 해보려고 유튜브 영상을 따라 했지만 역시 자세는 나오지 않았다. 다들 지금 운동하면 오히려 회복이 더뎌질 거라며 말렸다. 맞는 말이니, 불어나는 몸을 지켜보며 한 달이 흘렀다. 

의사 선생님께서 발가락에 박은 철심도 뺐고 뼈도 잘 붙었다고 하셨다. 이제 신던 신발을 신어도 좋다고 하셨다.  


무리는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깁스를 풀자마자 간 곳은 당연히 헬스장이었고, 느린 속도인 5km/h로 한 시간을 걷고서야 이제 안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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