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6. 휩쓸고 지나간 자리

by 재학

묘약의 마법이 휩쓸고 지나간 어느 날 장남의 큰아들이 손톱을 물어뜯는 것을 보았다.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손가락마다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검지를 칼로 베어 피를 쥐어 짜낼 때도 느끼지 못한 아픔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한 거지? 40년 전혈서가 나에게 온 건가?

장남의 큰아들도 유약했다. 장남에 더하여 신중함을 갖고서. 장남이 그랬던 것처럼 혈서를 쓰지는 못하리라. 대신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는 것으로 대신 한 것이다. 장남이 아버지에게 향했던 분심을 큰아들은 자신에게로 돌렸을 것이다.

언제였던가…. 장남은 큰아들과 함께 아침 일찍 자동차를 가지고 나온 적이 있었다. 둘째 아들 생일날이었나 보다. 아침 일찍 제과점을 찾아 돌아다녔다. 생일 축하 케이크를 사려고 그랬던 것 같다. 장남이 아는 케이크는 둥글게 쌓아 올린 하얀 거품 위에 딸기, 포도가 올려져 있는. 무엇보다 케이크는 배고픔을 달래는 음식이 아닌 장식용 간식거리일 뿐이었다. 그런 장남의 생각이 입을 통해 막 나왔나 보다. 큰아들은 모처럼 동생의 케이크를 준비하러 아침 일찍 따라나서서, 이왕이면 좀 더 멋들어진 케이크를, 나중에 알았지만 케이크 전문점이 있단다. 그런 곳에서 젊은 취향에 어울리는 것으로 사고 싶었는데….

장남이 사자고 하는 케이크는 동네 제과점에서 파는 값싼 것임을 알았을 때, 그때 큰아들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곤혹스러움을 얼마쯤 지나 알았을까? 큰아들은 결코 말하지 않았다. 제 생각을. 꽤 시간이 흘러, 어떤 계기로, 그래 레지오를 간다고 어두운 저녁에 성당 언덕을 오르면서 문득 큰아들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 끝에 그때 그 표정이 그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장남의 큰아들은 아빠, 요즘은 그런 케이크 안 먹어요. 케이크 전문점이 있어요. 조금만 가면 전문점이 나오니까 거기서 멋있는 것으로 사요라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음을.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을. 하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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