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pinion 수필

먹는 음식을 보면

김장 한 날

by 재학

먹는 음식을 보면 그 나라의 특징을 알 수 있다.

기후와 땅에 어울리는 먹거리가 발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해서 먹거리가 다양하다. 그중 대표 음식이 쌀과 김치다. 김치를 담그는‘김장’의 계절이다. 2023.11.27부터 사흘간 김장담그기 행사를 했다.


넓은 텃밭에 봄부터 밭갈이를 해서 파, 배추, 무를 심었다. 반별로 한 구획을 정해 주었다. 어린잎이 물을 못 먹어 시들해지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물을 먹여 주고, 애써 올라온 싹을 벌레가 갉아 먹을 때는 뙤약볕에 아랑곳 않고 앉아 잡아 주며 키웠다. 파를 뽑고 무가 자랐다. 계절이 바뀌며 서리가 올 때 무는 미리 뽑아 보관했다. 무는 얼면 안된다. 바람들면 삶아도 익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 얼기 전에 뽑았다. 하얀 무가 쑥쑥 올라오는 모습이 그동안의 힘듦을 씻어 주었다.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 무, 배추가 한 아름이 넘게 컸다. 김장하는 날은 왜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다. 대부분은 매일 먹는 김치에 들어가는 수고를 모른다.


김칫소를 만드는 일은 무, 배추를 키울 때와 또 다른 노고의 과정이다. 무를 채 썰고, 쪽파, 대파, 마늘, 새우젓, 생강, 액젓, 고춧가루 듬뿍 넣어 버무리고 다져야 한다. 한번이라도 김장을 해 본 사람은 식탁에 올라오는 (흔한) 김치의 맛이 다를 것이다. 배추를 씻는 과정도 예삿일이 아니다. 잎 하나하나를 들춰가며 씻어 내야 한다. 흘러 내리는 고무장갑을 벗고 씻는 아이들도 있다.(오늘따라 겨울을 제촉하는 비가 온다. ㅠㅠ) 오롯이 내 일이 주는 보람이다. 반별로 나눠 담은 소에 배추를 비비는 작업이 남았다. 배춧잎 한 장 한 장 정성들여 비벼 넣어야 한다. 어머니가 해 주시는 김치 쉬운 줄 알았다. 수십년을 해 온 숙련된 솜씨 인 줄 모르고 단순한 일 인 줄 알았다. 일련의 작업이 허리를 펴지 못하는 동작의 연속이다. 두 계절 키운 배추가 김치가 되었다. 담아 가는 모습에 행복이 가득 들었다.

주변 다섯 마을이 있다. 한 통의 김치와 귤 한 상자씩 챙겨 마을 경로당을 다녔다.

할머니들 화투가 한창이다.

‘학생들이 정성껏 담궜어요. 맛있게 드세요.’

맛이야 할머니 솜씨를 따를 수 없지만 정성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다.

아이들과 함께 모종 심기부터 김치가 나오기까지 전과정을 함께한 선생님들 정말 감사 드린다.

‘김치는 손맛이라고 합니다.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먹거리의 소중함과 함께 만든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알려 준 것이 큰 보람이었습니다.’

라며, 양념이 묻은 얼굴로 함박 웃음을 짓는다.(그저 고마울 수 밖에)

오늘같은 날 보쌈이 제격이다.

대신 족발을 샀다.

아픈 허리 부여 잡고 맛있게 먹는다.

초등학생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중에 김치송이 있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진수성찬 산해진미 날 유혹해도 김치 없으면 왠지 허전해.… 맛으로 보나 향기로 보나 빠질 수 없지. 입맛을 바꿀 수 있나. 대한민국 어린이는 우리 나라의 자랑인 김치를 잘 먹습니다.’


K-푸드를 선도하는 김치에 대한 인식이 우리 학생들부터 달라지고 있다. 급식 잔반에 김치가 차츰 줄어들고 있다. 예로부터 ‘밥심’이라는 말이 있다. 육체적 배부름과 함께 정신적 포만감까지 이르는 말이다. 우리의 정신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음식, 밥심의 요체는 밥과 김치다. 그래서 김장하는 날은 연중 행사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실천하는 행사다. 정체성을 찾는 일이 특별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일상에, 주변에 있다. 번거롭다고, 비용이 든다고 차츰 사라지는 정체성 찾기 행사(김장하는 날)가 융성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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