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기수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종종 순간의 선택이 주는 아찔함을 겪는다. 우연과 필연의 중간쯤에 있는, 선택인지 간택인지 하는 것 말이다. 결정의 두려움에 흘러가는 시간에 맡기기도 하고, 온 힘을 다해 매달리기도 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그 덕분에 이만큼 된 거라고 할 수도 있고, 신의 가호와 조상님 덕분이지 싶은 순간도 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는 지금 그때의 긴박감은 사라졌지만, 그때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기억이다.
그날 밤도 그랬다. 사랑하는 자전거가 순간의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냥 집에 갈걸. 엄마 말 들을걸.
‘세 번만 타고 오너라.’
‘예’
예가 ‘아니요’를 의미할 때가 있다.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아는 ‘예’가 ‘예’가 되었더라면, 그날 밤 다리에서 사촌 누나를 만나지 않았을 테고, 그랬다면 ‘내 사랑하는 자전거’도 상처 없는 자전차의 삶을 마쳤을 것이다.
윗등에서 빨래터까지 세 번 타면서 긴장을 많이 했나 보다. 팔이 뻐근하다. 좀 쉬어야겠다. 빨래터 넓적 바위 옆에 자전거를 세웠다. 안장 한 번 쓰다듬고 위풍당당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어둠 속이지만 누군가 보아주면 좋겠다. 달빛을 듬뿍 받고 서 있는 자전거가 사랑스럽다.
사실을 말하자면 자전거가 나에게 좀 크다. 중1에게 어른 자전거를 앉긴 아버지의 심사란. 안장을 완전히 내려도 발이 닿지 않는다. 그래도 좋다. 애정을 가득 담아 바라보는 자전거가 재촉한다. 주인님, 다시 한번 달려요. 한 번만 더 달려줘요. 네가 날 간절히 부르는데 외면할 수 없지? 우리 함께 달려가 볼까나!
하필 그날 사촌 누나가 왔다. 사촌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다정다감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사촌도 있고, 명절 때 내 중형차 보더니 배가 아파 배배 꼬이던 사촌도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사촌에 대한 이미지가 그날 밤 누나 때문에 더 비뚤어졌지 모른다. 혜란이 누나는 큰 도시에서 학교에 다녔다. 방 두 개짜리 상하 방을 얻어 자취한단다. 보통 당숙모가 다니며 치다꺼리를 해 주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누나가 왔다. 눈부실 만큼 하얀 상의에 까만 치마 교복을 입고 왔다. 양 갈래로 땋아 묶은 머리와 반짝이는 구두를 신었다. 단추가 터질 듯 팽팽한 가슴에 이름표와 학교 마크가 반짝였다.
누나네는 부자다. 동네 앞 들판의 1/3이 누나네 논이다. 우리 아버지도 누나 네 논을 짓는다. 산과 밭도 셀 수 없이 많다. 나중에 그 일부가 우리 것이 되었다. 엄마가 외갓집에서 돈을 빌려와 우리 것으로 만들었고, 그날 밤 아버지는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나서 누나네하고 좀 멀어진 느낌이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사촌은 배가 잘 아픈가 보다.
누나네 (중기 할아버지) 사촌들은 모두 대도시로 유학을 갔고, 누나도 그랬다. 누나네 하고 친하냐고? 그렇지 않다. 멀리서 중기 할아버지가 보이면 일부러 다른 골목으로 다니고는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괜히 어려웠다. 당연히 누나하고도 그런 사이였다. 길에서 마주쳐도 맹숭맹숭 지나칠 뿐이었다. 그런 사이기에 누나 모습이 보일 때 조그만 주의도, 우려도 없었다. 완벽한 무방비로 누나가 나타났다.
세상에. 누나가 알은체한다. 나? 아닐 거야? 전봇대 뒤에 누가 있나?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기수야, 야? 왜 대답이 없어?”
“나?”
“그래 너 말고 또 누가 있냐?”
“?”
“나 자전거 좀 타자.”
그때까지도 상황 파악이 안 되었다. 아니다. 파악을 못 했다.
“자전거? 누나가? 나? 자전거?"
"자전거라니까!"
"…"
이상한 누나다. 아는 체하는 것도 이상했고, 내가 아니라 자전거를 아는 체하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누나의 엉큼한 속셈을, 평소처럼 맹숭맹숭 지나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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