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조석으로 불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편맥!
이었다. 술집에도 맥주는 팔고 우리집 냉장고 채소칸에도 싱싱한 맥주가 있지만 내가 원하는 건 편맥. 편의점 맥주는 마트에 비해서 비싸다. 세계 맥주는 네 캔씩 묶어 만원이니 만 천원이니에 팔아 내키지 않는 구성을 사야 할 때도 있다. 하긴, 한 때는 이 기회에 다양한 맥주 맛을 보는 구나 싶어 즐기기도 했기에 이런 소리를 하겠지?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쓰고 보니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맥주도 돌고 돌아 지금은 그저 테라나 카스 클라우드 정도이다. 버드와이저가 국산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 편맥을 하고 싶으면 혼자라도 가서 하면 될 일인데 또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편맥이 하고 싶다 나도 저기 편의점에 앉아서 맥주 한 캔 얼른 마시고 싶다 하며 들으란 듯 혼잣말을 하니 그럼 다녀 와 라며 쿨하게 이야기 하길래 눈 한 번 흘겨주고..
어제는 수요일. 남편이 일찍 마치는 날. 우리도 오늘 하루는 넘들이 저녁 먹는 시간에 먹어보자 하고 있는데 남편이 편맥 이야기를 꺼낸다. 응? 6시인데? 밥을 먹고 가야 하지 않어? 반가우나 다소 어리둥절해서 그리 말하니,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맥주랑 같이 먹으면 어떻겠냐는 거다. 오..어.. 글쎄.. 나는 편맥을 어두울 때 하고 싶은데.. 밥이랑 다 올려놓고 벌건 시간에는 안 하고 싶은데.. 라고 작게 말했다. 이러니 저러니 내 편맥 타령을 신경을 쓰고 한 소리이니 고맙긴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래 그럼 하고 말더라.
그렇지. 숙취를 많이 겪지 않으려면 속을 든든히 채우고 마셔야 한다. 이것은 딜레마로, 빈 속에는 밥도 맛있게 들어가지만 맥주도 신나게 들어가거든. 그런데 그렇게 마시면 속을 버리고 숙취에 시달리는 등 탈이 난다. 그런데 뭔가를 든든하게 먹고 마시면 배가 불러서 별로 마시고 싶지도 않고.. 어쩌라고?
아무튼, 어제 저녁을 야무지게 먹고서 볼일이 있어 남편과 잠시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 편의점을 몇 개나 지나는데 도통 말을 안 꺼내길래(생각해보니 내가 먼저 꺼내도 되는데) 마지막 편의점을 두고 저기서 마시고 갈까? 하고 말하니 남편이 마신다고? 하며 반문을 했다. 내가 배터지게 저녁을 먹길래 편맥은 취소인 줄 알았다나. 실은 내가 이렇게 말만 뻔지르르하고 적극적이지 못한 이유는 남편은 맥주는 못 마시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음료수도 즐기지 않는다. 내가 맥주 마신다고 내 앞에 편육에 소주 펼쳐놓을 수도 없으니 그저 핸드폰 보며 내가 다 마시길 기다려야 하는 형국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다음부터는 나 혼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근데 그건 좀..
어쩌라고?
어쩌긴. 오늘은 냉장고 채소칸에서 싱싱하게 보관되고 있는 맥주를 집에서 마시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