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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우 May 22. 2022

이미 진 게임

아이와의 모든 일은 그냥 다 내가 지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건 이미 진 게임이다.

아이하고 게임하냐면 그건 아니고

아이하고 경쟁하냐면 당연히 그것도 아니다.

나는 내 아이들의 엄마이고

나는 아이보다 나이도 수십 살을 더 먹었고

엄마이자 어른의 권력으로

아이들도 학교에서 숱하게 배웠을 내용으로

백 번 천 번을 옳은 소리 해 가며 군림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뽀뽀를 해 주고

초등학교 3학년 4학년이 된 아이들을 매일 번쩍 안아주고

한 번씩 어미새마냥 밥숟가락을 입에 넣어줄 때도 있고

이제 매일은 못해주지만 책도 소리내 읽어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들을

제가 어지른 것들을 치우도록,

하루에 주어진 학습량을 채우도록,

이 세상에 저들뿐인 사이가 돈독하도록,

아니 그냥 내 맘에 들게 행동하도록 

타이르며 훈육하며 사실은 그냥 화를 낸다.



아이들이 잠들고 난 깊은 밤에는 한 번씩

내가 오늘 아이들에게 뭘 해 주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젠 오롯이 내가 뭘 해 주기 보다는

저와 내가 이 공간을 이 시간을 같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아이의 매분매초에 전전긍긍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늘 사랑해 지겨워 그리워 그리워의 반복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미 진 게임이라는 말은 그냥 문득 생각난 건데

아이들과 나 사이를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자란다. 

나는 아이들이 아가였을 때 언제 기저귀 가리고 언제 나랑 사람같이 대화할지 기대에 찼는데

이미 그것을 다 하게 되고 나서는 못마땅한 것들이 눈에 띄고

때로는 이미 다 자란 듯한 모습에 혼자 마음이 서늘하다.

누가 들으면 내 아이들이 중고교생은 되는 줄 알겠다.

초등학생입니다...



제 속도대로 차근차근 자라고 있는 아이

나 혼자 빠르다 느리다 발목을 잡았다 풀었다 바쁘다.

내 이런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니까 여기다 부려본다.

내가 임신 중 태아의 성장 발달 과정과, 아이 이유식에 대한 내용은 책으로 빠삭하게 익혔는데

아이들이 십대 초입에 들어선 이맘때에 대해서는

학습이 어느정도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만 무성하지

어미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기에 말이다.



최근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그건 아니고

다만 지금을 충실히 살지 못하는 애미의 불안함에

마침 새벽에

여름이면 동이 틀까말까 하는 이 시각에

여기는 내꺼니까 이렇게 부려본다.

(202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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