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생전 취미에도 없는 닥터 스트레인지 멀티버스 영화를 남편이랑 보았다. 마블 시리즈를 내가 다 본 게 아니라 세계관, 줄거리도 인지가 안 된 상태에서 보았으나 영화든 드라마든 무릇 앞 편을 안 봤다고 이해가 안 되게 만들리가 없지라는 마음으로 도저히 모르겠는 소리는 남편에게 작은 소리로 질문을 해 가며 보았다.
닥터 스트레인지로 나오는 데이비드 컴버비치는 지난번에 스파이더맨 세 명이 다 나오는 영화에서 거의 제대로 처음 보았는데 내 취향은 아니지만 정말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어스 브로스넌 닮지 않았냐는 남편의 말을 들으니 정말 그랬다.
영화 초반에 저 배우가 야무지게 슈트를 차려입었는데 나는 정말 그 장면을 보고 너무 멋있어서 내 친구에게도 이야기했다. 그 왜 있잖아. 너무 멋있는거야. 시계 광고 찍으면 딱이겠는거야. 하니까 친구가 말했다. 롤렉스 말이야? 그래 그런거 말이야.
하지만 이 영화는 뒷부분에서 내 눈두덩이를 떨리게 하더니 기어코 마스크 안으로 눈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게 만들었다. 내용을 적을 수는 없다. 이 글을 보실 많지는 않을 분들에게 영화의 내용을 누설하지 않으려는 이유와 등장인물의 이름이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 더 큰 이유와 실은 잘 설명할 자신이 없음을 정확한 이유로 삼아야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오밤중에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고 또 눈물을 한바가지 흘렸다. 아이는 무얼 보고 자라나. 부모를 보고 자란다. 부모가 서로에게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 자란다. 그 모습이 긍정적이지 못할 때 아이는 입을 다물고 눈치를 보고 외려 더 거칠게 나온다. 행복한 가족이 되고자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이 가식처럼 보여도 그 사랑이 계속 되면 아이는 결국 미소를 짓는다. 못난 욕을 하고 매섭게 부모를 노려보던 그 아이가 부모의 사랑해라는 말에 마냥 웃을 때 나는 눈물이 또 후두둑 쏟아졌다. 집 안이라 마스크는 안 해서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눈물과 콧물을 옷소매로 훔쳤다.
내 나이가 마흔을 넘게 살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어린시절을 대충 퉁 치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단언할 수 있는 건 아이를 낳아 키우고서야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마르고 닳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내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고서야 살면서 이 말을 그리 진정으로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보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말이 아이에게 닿을 때 아이는 단단하게 존중받았다. 사랑받는 게 당연했다. 아이가 해사하게 웃으면 그 말들이 고스란히 반사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나도 존중을 받고 있었다. 나도 그 사랑을 고맙게가 아니라 당연하게 받았다.
말 안해도 알아주겠지 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2022.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