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피크닉에 대한 고찰
BGM_IU 가을아침
내 경우에는 보통 생각할 것들이 많아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때, 일이 많을 때, 정신이 없어서 나를 돌볼 여유가 없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물론 위와 같은 이유로 행복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극한의 상황에서 행복감이 더욱 크게 와닿을 때가 많다는 말이다.
난 주변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할 때 물론 즐겁지만 그만큼 에너지가 뺏기곤 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기류, 그 안에서의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 기싸움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렇게 주변만 보게 되면 '나'의 기분을 살피기가 어렵고 어느새 에너지가 고갈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날은 한 여름이 가까워지던 봄날이었고 한바탕 비가오던 날들이 지나 먼지도 내려앉아 온전히 깨끗한 공기만 맡았던 날이었다. 사실 원래 계획했던 피크닉은 아니었다. 갑자기 비어있던 스케줄에 우연찮게 시간이 맞는 오래된 친구와 함께 갑작스럽게 한강나들이를 가기로 한 것이었다. 모두 그 날이 최적의 날이었던 걸 어떻게 안건지 다른 사람들도 옹기종기 모여 피크닉에 한창이었다.
그 날 그냥 자리에 앉아 가볍게 사온 샐러드를 먹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다 멍하니 자리에 앉아 눈 앞에 탁 트인 뷰를 바라보았다. 쨍쨍한 햇살을 받아 빛나는 물빛과 반짝거리는 잔디를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함께 생생해지는 느낌이 가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뜨겁던 해는 식어가고 마냥 내리꽂히기만 했던 햇빛은 선선한 바람과 함께 녹아내렸다. 기분 탓일수도 있지만 해가 쨍쨍할 때의 냄새와 조금 해가 누그러진 후 선선해졌을 때의 냄새는 무게가 다르다. 해가 쨍쨍할 때는 냄새도 무겁고, 맡기에 부담스러운 느낌이 있다. 하지만 선선할 때의 냄새는 마치 비온 뒤 처럼 시원하고 가벼워서 냄새맡기에 부담없이 상쾌하다. 이 날이 바로 그랬다.
거기에 눈 앞에서 하얬던 하늘이 파래지고 노을 직전에 분홍빛으로 물드는 하늘 색의 변화가 정점이었다. 색이 바뀌는 순간을 보고싶어서 그냥 바라만봐도 멍하니 보다가 어느순간 정신차려보면 또 다시 나도모르게 색이 변해있는게 재밌었다. 온전히 주변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내 눈앞에 있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다보니 온통 한 곳에 뭉쳐 좁아져 있던 생각이 펼쳐졌다. 내가 왜 쓸데없는 고민을 했을까.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이렇게 행복한데.
또 내가 정말 행복하다 느끼는 다른 순간들도 있었다.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항상 쓸데없는 것들에 걱정이 많던 때에 걱정하던 주변의 것은 잠시 뒤로 하고 '~가 예쁘다. ~가 기분 좋다. 즐겁다' 등 언제나 중심에 내 감정을 뒀을 때였다. 누군가가 예쁘고 좋은 것들을 보면서 살아라.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고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이런 작은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으라는 의미는 아닐까 싶다. 지금도 나는 마음이나 머리가 답답할 때면 이날의 기억에 의존해 한강을 찾곤 한다. 요즘도 날이 좋으니 다시 주기적으로 한강을 찾을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