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도 Jun 29. 2024

인생에 한번쯤은 히말라야로

네팔 여행기

언젠가 한번쯤은, ABC 트래킹

네팔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기 전에 Netflix에서 <14 peaks: Nothing is impossible>를 보았다. 해발 8,000m 이상 되는 14개의 봉우리를 최단기간에 오른 Nirmal Purja의 다큐멘터리다. 화면 속 히말라야를 보며 생각했다.


'저 풍경은 죽기 전에 내 눈으로 봐야겠어.'


첫째날

트래킹을 떠나는 당일 아침, 이미 전 날 밤에 짐을 다 쌓지만 왠지 다시 하면 더 효율적으로 잘 쌀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에 괜히 짐을 풀었다 다시 싸보았다. 필요한 물품만 챙겼다고 생각했는데도 내가 들 가방은 5.5kg였다.


포카라에서 ABC 트래킹을 시작하는 지누단다까지는 지프를 타고 간다. 1시간 정도 달렸을까 차는 도로에서 벗어나 흙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서 산사태가 났는지 앞에서 가던 버스가 오도 가도 못 하고 있었다. 버스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이기에 뉴턴은 절대 할 수 없고 뒤로는 차들이 있어 전진만 가능한 상황. 몇 번 엑셀을 밟아보던 버스에서 승객 중 한 명이 나와 길의 움푹 패어진 구멍에 근처에 있던 돌을 가져와 길을 만들었다. 돌멩이 하나 놓았다고 한참을 쩔쩔매던 버스가 바로 지나가는 게 웃기면서도 신기하고 괜히 뭉클했다.


버스 화이팅!


지누단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긴 다리를 건너야 한다. 아마 내가 건넜던 다리 중에 가장 길고 높이 있었던 거 같다. 고소공포증은 없지만 안전 염려증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다지 안전해 보이지 않는 다리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냅다 바닥만 보며 걸었다.


무서울 땐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걷자


첫째날의 목적지는 촘롱까지이다. 지누단다에서는 빠르면 2시간, 천천히면 3시간 만에 도착한다. 하지만 만만하게 보면 안 되는 게 촘롱까지 오르막 계단이 계속 이어졌다. 계단을 오를수록 배낭은 무거워지고, 안 가지고 와도 되었을 거 같은 물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숙소는 예상보다 괜찮았다. 화장실이 괜찮을지 걱정했는데 의외로 변기도 있었고, 따뜻한 물도 잘 나왔다. 그리고 아직은 고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지 샤워를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첫날이다 보니 숙소에 도착해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모른 채 우왕자왕하며 돌아다녔다. 어느덧 해가 지고 낮에 땀을 흘려가며 올라왔던 게 무색하게도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추워졌다. 그리고 햇빛의 빈자리는 구름으로 채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윈드폴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고산병 증상이 없더라도 고산병 약을 예방 차원으로 매일 저녁마다 반 알씩 먹으라고 하셨다. 나는 킬리만자로에서 고산병을 심하게 앓아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무런 증상 없이 갔다 오기 위해 약을 챙겨 먹기로 했다. 대신 부작용으로 손발 저림과 이뇨 증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였는지 알림이 울리기도 전에 화장실을 가고 싶어 일찍 일어났다. 나가보니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시간이었고 안나푸르나 정상이 저 멀리 보였다. 어제는 하나도 보이지 않던 게 갑자기 보여서였을까, 이상하게 그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저 위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꼭대기에는 눈이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 하얀색 색종이를 오려 산 위에 올려놓은 거 같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저 위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어제는 하루 종일 롯지 안에서만 있어서 몰랐는데 촘롱은 꽤 큰 마을이었다. 근처에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빵집도 있었다. 무려 독일 빵집이었다. 하나쯤 먹어보고 싶었지만 너무 맛이 없어 보여 지나쳤다.


산의 한 면에 있는 계단식 논에서는 옥수수, 고사리, 토란 등 다양한 야채를 재배한다고 한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히말라야 산에서 나는 옥수수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는데 그 맛이 궁금하다.


촘롱에서 밤부 가는 길

오늘 일정은 밤부까지이다. 어제 올라온 만큼 내려갔다가 짧지만 여전히 무서운 다리를 하나 건너고 또 한참을 올라갔다. 일찍 출발했지만 천천히 걷고 길게 쉬어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뒤처졌다.


히말라야 산을 걷다 보면 다양한 짐을 들고 가는 포터를 만나게 된다. 한번은 매트리스를 지고 가는 포터를 만났다. 롯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포터가 운반한다고는 했지만 매트리스를 통째로 지고 갈 줄은 몰랐다. 내가 놀라 하니 가이드가 “이들은 로컬 사람이야. 아무 문제 없어.“라고 했다. 순간 나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놀랍고 안타깝게 바라봤다는 게 부끄러워졌다. 그냥 그게 그들의 삶인데 말이다. 아무도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워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놀랄 필요는 없는 거였는데.


밤부에는 2시 30분에 도착했다. 바로 씻고 빨래를 했다. 계속 날씨가 안 좋았다 보니 전 날 한 빨래도 아직 마르지 않았다. 햇빛은 없지만 바람에라도 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널어놨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앞으로 젖은 양말을 신고 트래킹을 해야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마을에는 5개의 롯지가 있었다. 위쪽에 있는 롯지가 가장 컸는데 단체로 오는 한국인들이 주로 머무르는 곳 같았다. 이곳저곳에 한국어가 쓰여있었고 결제 수단으로 카카오 페이도 받는다고 한다.


저녁을 먹으며 롯지에 머무르는 사람들과 얘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 빼고 모두 하산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ABC의 풍경이 얼마나 멋진지, 거머리가 얼마나 두려운지, 이 롯지에서 파는 스프링롤이 얼마나 큰지와 같은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셋째날

새벽 2시쯤 잠에서 깼다. 잠이 오지 않아 밖에 나가보았다. 보름달이 되어버린 달에 하늘의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가이드와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본인은 믿고 있는 특정 종교는 없지만 가끔 기도를 한다고 한다.


“누구한테 기도를 하는 건데?”

“누구한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거야.”


지금까지 나는 기도하는 사람들은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무신론자인 나는 기도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어떤 존재를 믿어서 하는 게 아니라 나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을 바라기 때문에 기도를 한다는 그의 대답이 좋았다.


달님

보름달을 보며 생각했다. 만약에 내가 기도를 한다면 나는 달님에게 하겠다고.


옆방에서 들리는 인도 노래를 알람 삼아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제같이 얘기했던 사람 중 한 명이 본인들은 이제 필요 없다며 빈 봉지와 식수 정화제를 주었다. 빈 봉지에는 아직도 마르지 않은 빨래를 넣었고 식수 정화제는 나중에 사용할 일이 있을 거 같아 챙겼다.


셋째 날은 다우렐리까지 간다. 고도를 1,000m 올려야 해서 고산병이 올 수 있는 코스라고 한다. 가이드가 바로 전에 담당했던 사람이 다우렐리로 가는 길에 고산병이 걸려 크게 고생을 했다고 한다. 체온이 내려가면 고산병이 오기 쉽기 때문에 걷는 내내 겉옷을 벗었다 입었다를 반복했다.


멋진 폭포

가는 길에는 큰 폭포를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사진을 찍을 만큼 멋진 폭포였는데, 여행객뿐만 아니라 이 길을 몇십 번은 오갔을 가이드와 포터도 사진을 찍었다. 어떤 풍경은 아무리 자주 보아도 매번 저장하고 싶은가 보다. 근처에 작은 사원이 있길래 트래킹이 안전하게 끝나길 바라며 달님에게 기도했다.


히말라야에 오는 여행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건지 공사하고 있는 현장을 몇 번 보았다. 돌, 흙, 나무 같은 건축 자제들은 숲에서 조달하는 거 같았다.


길 옆에서 사람들이 돌을 깨고 있었는데, 그냥 돌이 아니고 산에 붙어있는 돌을 깨고 있었다. 탕탕하더니 산에 박혀있었던, 아니 어쩌면 산이었던 돌이 쩍하니 갈라졌다. 이 돌을 더 작게 만들어 길도 건물도 만드는 거겠지.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대나무 마디를 두드리고 있었다. 대나무도 중요한 건축 재료 중 하나이나 보다.


점심은 히말라야에서 먹었다. 어쩌다 이 마을은 히말라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다른 동네 사람들이 시

샘을 내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점심을 먹었다. 가이드와 같이 밥을 먹게 되었는데 우리가 밥을 나눠주니 가이드도 본인의 밥을 나눠줬다. 그런데 내가 시킨 메뉴보다 그 밥이 훨씬 맛있었다. 무엇보다도 야채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좋았다.


히말라야에서 데우랄리까지는 2시간 정도 걸렸다. 길이 힘들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번쩍했다. 헛것이 보였나 생각할 때 즈음 천둥소리가 들렸다. 산에 있어서 그런지 소리가 컸다. 비가 오기 시작하고, 산 저편에 숨어있던 구름도 이때다 싶었는지 산을 넘어와 시야를 막았다. 비를 더 많이 맞기 전에 데우랄리까지 가자는 가이드 말에 쉬지 않고 걸었다.


오늘부터는 샤워를 하면 안 된다고 한다. 물론 해도 되지만 샤워를 하면 체온이 내려가고 고산병에 걸리기 딱 걸리기 쉬운 몸이 된다. 날씨는 좋지 않았지만 대신 땀을 많이 흘리지 않아 찝찝하지 않았다. 그리고 샤워 티슈가 꽤 괜찮았다. 처음 사용해 보았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다. 고도가 높아지니 가지고 온 옷을 껴입어도 추워 핫팩를 붙일 수 있는 곳에 다 붙였다.


마당에 디스코 볼이 있다. 아무도 춤추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쓸쓸해 보인다.


넷쨋날

아침 공기는 밤공기보다 추워 옷 갈아입기 힘들다. 잠잘 때 옷을 침낭 안에 넣어두면 체온으로 따뜻해져 아침에 옷 갈아입기가 쉽다던데 제대로 안 댑혀졌는지 여전히 차가웠다.


오늘도 7시 45분에 출발. 목적지는 ABC이고, 다우렐리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


어느 순간부터 나무는 없고 풀만 자란다. 황폐해 보이지만 이런 곳에서도 양배추도 자라고 감자도 자란다고 한다.


가이드는 길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수다쟁이가 된다. 우리에게 친구들을 소개할 때 ‘예전에 같이 걸었던 친구야’라고 하는데 왠지 같이 걸었다는 표현이 낭만적이다.


다우렐리에서 ABC 가는 길

MBC 이후부터는 달리기를 하고 있는 거처럼 숨이 찼다. 그래도 풍경이 아름다워 힘들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마치 반지의 제왕 영화에서 봤을 법한 풍경이었다. 날카로운 절벽과 폭포 그리고 평지에 빽빽이 자란 풀까지, 아름다웠다.


길에서 트래킹 둘째 날에 만났던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한 걸음 때기가 어려워 보이셔서 ABC까지 가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지금 ABC에서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래, 천천히 하면 못 할 건 없어’라는 생각과 ‘남 걱정은 쓸데없다, 나만 잘하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 외에도 첫날 또는 둘째 날에 같이 올라가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그 사람들은 모두 하산하는 길이었다. 4박 5일은 너무 고생스러울 거 같아 5박 6일 일정을 짰는데 여유로운 일정이었나 보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여행이다 보니 약간의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ABC 도착!


가장 열악할 거 같았던 ABC의 롯지는 예상보다 너무 좋았다. 화장실에 무려 변기가 있었다. 이걸 들고 ABC까지 올라왔을 누군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니 건물 안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왔다. 구름 사이로 봉우리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가이드가 설명을 해주었지만 바로 잊어버렸다. 나에게는 이름이 중요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저 내가 여기서 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거 자체가 감동적이었다.


내가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구나

한쪽에서는 만트라가 적힌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서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깃발이겠지. 다음번에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면 나도 나의 만트라를 여기에 남겨두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만트라 깃발


저녁이 되니 롯지에 중국 단체 여행객 28명이 왔다. 정신없었지만 평온했던 시간 속의 이벤트로는 손색이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버스 탄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