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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동이네 Oct 25. 2022

'타고나길 개'와 '개바보 엄마'의  
동거 이야기

네가 개라서 난 너무 좋아


나의 늙은 개 


올여름 한 철 내내 매일같이 구멍 난 런닝 하나 입고 온 동네를 돌아다닌 개가 한 마리 있다.

바로 9년을 함께 한 내 개 깜동이.

두 달 후면 딱 10살이 되는 우리집 막둥이 깜동이



옷이야 새 옷이 아니면 어떻고 예쁘지 않으면 어떠랴. 



주인과 함께 즐거운 산책을 즐길 수 있으면 된거지 하며 매일을 하루같이 구멍난 런닝 하나 입혀서 온 동네를 돌아 다녔다.

날도 더운데 굳이 옷을 입히지 말라는 주위 분들도 계셨지만 우리 깜동이는 다리가 짧아 체고가 낮은 닥스훈트여서 옷을 입히지 않으면 여름내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깜동이의 온 배와 옆구리, 심지어 등까지 훑어대는 통에 집 안에서 나와 함께 실내 생활을 하는 깜동이에게 얇은 옷 하나 정도는 입히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풀 사이 사이 있을지도 모르는 진드기나 해충들로부터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안전할까하여 궁여지책으로 런닝 하나는 입히는 것이 맞겠다 싶어 입히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깜동이의 다리가 너무 짧은 탓에 한 번만 입고 나갔다 들어오면 풀에 쓸리고 흙에 쓸려 런닝의 배 쪽에 새카맣게 때가 묻는 통에 한 번 입을 때마다 손빨래를 하여 볕에 널어 두어야 했고 그것을 그 다음 날 걷어 또 입히기를 반복, 그러니 그 얇디 얇은 런닝은 올 여름 한 철을 기어이 넘기지 못하고 그만 낡아서 구멍이 나 버렸다.

그래도 달리 마땅한 다른 여름옷이 없는 데다 제일 얇고 그나마 덜 덥고 안전한 것이 그 구멍난 런닝이라 이번 여름이 다 가도록 계속 그 런닝을 입혔더니, 그럴수록 구멍이 점점 커지고 개수도 많아졌다. 

여름 내 매일을 하루같이 빨아입혔더니 기어이 너덜너덜 구멍이 난 깜동이 런닝,  영광의 구멍들.


넌 '타고 나길 개'


두둥~~~

가는 시간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법,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도 어느덧 한 풀 수그러들더니 올해는 추석도 빨리 다가 왔다.

그래서 올여름 내내 구멍 난 런닝 하나로 온 동네를 돌아다니게 한 것이 맘 한 구석에 짠함으로 남아있던 차에 큰 맘 먹고 깜동이에게 추석빔 삼아 한복을 한 벌 사 주었다.


옷이 날개라는 옛말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구나.

너덜너덜 낡아버려 원래 색이 하늘색이었는지 흰색이었는지 아니면 회색이었는지조차 구분이 잘 가지 않는 면 런닝에 비하면 요 곱디고운 한복은 완전 깜동이에겐 날개였다.

그 한복을 보는 순간 나는 얼른 깜동이를 새 한복으로 갈아 입힌 후, 평소 간식 앞에서 한없이 잘 취하는 ‘앉아’ 자세를 하게하여 멋드러진 사진 한 장을 찍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거실 한 켠에 얌전히 앉아 있던 깜동이를 불러 한복을 겨우겨우 입혔다. 런닝은 목 끼우고 팔 두 개 끼우면 착장이 끝나는데 이 한복은 왜 이리 단추도 많고 입히기도 힘든건지...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한복의 착장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그리고 나는 완전 그림같이 예쁜 사진 한 장을 기대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깜동이는 그 어여쁜 새 옷의 불편함과 어색함으로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몸을 흔들고 지 혼자서 벗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평소엔 깜동이도 실내 생활을 하고 집안의 막둥이로 식구들로부터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녀석인데 그 날만큼은 딱 넌 ‘타고나길 개’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난 '개바보 엄마'


그래...... 네가 개인데 예쁜 옷이 뭔 소용이랴, 편하고 익숙한 옷이 훨씬 좋지.

헌 옷이라고 언제 깜동이가 불평 한 번 했던가, 새 옷이라고 언제 깜동이가 기뻐한 적 한 번 있던가.

다 사람의 마음이 그러했고 사람의 욕심이 그러했지.

그래서 깜동이는 다시 구멍난 런닝을 입고 산책을 나갔고 난 그 모습이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개는(옆 집 사는 고양이도, 아랫집 사는 햄스터도 그러하겠지만) 아무 계산도 없고, 아무 욕심도 없고 한결같아서 좋다.

매일 헌 옷 입고 매일 같은 길 산책해도 마냥 행복한 내 개 깜동이.

혹자는 짐승이라 그렇다 하겠지만 짐승이라고 지능이 없고 감정이 없고 고통이 없던가.


지나가는 바람결 하나에도 구름이 일었다 사라지듯이 사람의 마음도 시시때때로 변한다. 

그런데 개는 한결같다. 

우리의 세상은 참 많다. 그러나 개의 세상은 하나다, 바로 주인.

내가 깜동이에게 더 나은 더 좋은 세상이 되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이 한복 한 벌에서 새삼 또 느끼게 되는 하루다.



그래, 깜동아, 넌 지금 그대로 개 해라,  엄마는 더 좋은 개바보가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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