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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방년 Aug 12. 2023

쇼!쇼!쇼! (3막)

우리말 연극 <메카로 가는 길>

1992년, 우리말 무대에 올려놓을 작품으로 <메카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번역은 (내가 제일 잘하니까) 당연히 내가 하고, 제작은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내가 하고, 주인공 역은 (미스 헬렌 역 하려고 선택한 작품이니까) 내가 하는 게 마땅하고.  

“지가 무슨 케빈 코스트너라고 …”  

바로 전 해, <늑대와의 춤을>을 감독도 하고 주연도 하더니 각종 상을 우르르 거머쥔 케빈 코스트너를 빗대서 비아냥대는 소리도 들었다. 




<학전 소극장>을 대표해서 면접관 역할을 하던 젊은이는 나에게 <메카로 가는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시장성이 없어서 공연을 못하고 있다는 소리가 있던데 — 그러니까, '작품이 우수한 건 알지만 우리 관객 수준이 낮다'는 소리 같은데 … 아니, 관객 수준을 왜 연극판에서 결정합니까? 혹여 관객이 수준이 낮다면, 그렇다면 낮은 수준을 높이도록 하는 게 이쪽이 할 일이 아닌가요?  …  이 연극을 보고 나서, 장담컨데, 자기 인생의 2시간이 낭비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 

횡설수설, 30분 이상 비장하게 거품을 뿜어댔다. 그러나 <메카로 가는 길>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비밀이었으니까.




20대 초반 영문과 학생으로 평생 처음 해 본 <Riders to the Sea>는 '아이리쉬 잉글리쉬'로, 40대 중반 영문과 교수로서 평생 두 번째로 해 본 <The Effect of Gamma Rays  on Man-in-the-Moon Marigolds>는 '스탠다드 잉글리쉬'로, 두 번 모두 '남의 나라 말'로 하는 공연이었다. <메카로 가는 길>은 평생 처음 우리말로 하는 공연이었다. 


커튼이 올라가기 직전, 방금 다녀왔건만 당장이라도 방광이 터질 것만 같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고 머릿속은 대사없이 말갛고, “내가 미쳤지, 이런 짓을 사서 하다니…” 

그러다가 막이 오르는 음악소리에 끌려 무대 앞으로 나가는 순간, 육신은 개운하고 정신은 맑아진다, 할렐루야! 전경자가 미스 헬렌으로 바꿈하는 순간이다.  




앞줄에 앉은 관객과 무대 앞쪽 사이는 손을 한껏 뻗으면 닿을 수도 있고 침을 힘껏 뱉으면 맞힐 수도 있는 거리다. 보자 마음 먹으면 얼굴도, 표정도 훤히 보인다.

1막 중간 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다가 숨이 헉 막힌다. 앞줄 왼쪽에서 서너번째 칸에 앉아 있는 젊은 남녀, 여자 품에 아기가 안겨 있다. 

미스 헬렌이 가뭇없게 졸지에 사라진다.


막간 사이 15분 휴게시간이 있었다.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거칠게 내뱉었다, 

"누구야?! 누가 갓난아이를 입장시켰어?!!!"

"공연 중 내내 잘거라고 해서… " 기획이 나지막이 대꾸했다. 

손에 잡히는 의자를 집어 내던졌다. 이러시는 거 아니라고, 이러시면 안 된다고, 관객들이 다 듣는다고, 연출이 엄하게 타일렀다. 


당장 젊은 부부 내보내지 않으면 2막 안 하겠다, 관객에게 사과하고 환불해주라, 등등 '드러운 승질'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무대 위에서의 연기가 삼류였다면 대기실 안에서 가감없이 펼친 연기는 가히 일류였다.  


그해 <메카로 가는 길> 공연의 진수는 대기실에서 보인 나의 꼴값이었다. 




다시 해야 한다, 반드시 다시, 제대로 해야 한다. 

다시 하는 데 드는 비용 마련이 3년 걸린다.


1995년, <성좌 소극장>에서 다시 했다. 

5월 3일 ~ 5월 28일, 오후 4시, 7시 30분


학교 수업 마치고 마포 개인병원 들려 링거 꽂고 한 잠 자고 나서 대학로에 도착하면 우황청심환 한 알, 무대 뒤에서 용각산 탁탁탁 털어넣고 들숨날숨 서너번 되풀이한 후, '당신 삶을 제대로 보여주도록 도와 주십사,' 화살기도한다, 헬렌 마틴즈한테.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미스 헬렌은 남아프리카 카루 지역 뉴베데스다(Nieu-Bethesda)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았던 헬렌 마틴즈(Helen Martins)라는 실존 인물이다. 

다만, '신뢰가 승리'하면서 막이 내리는 작품과는 달리, 아주 많이 달리, 헬렌 마틴즈의 생은 불타는 집 안에서 막을 내린다.) 




남편 장례식에서 돌아온 날 저녁 미스 헬렌은 마리우스 목사에게 고백한다: 남편과 살아온 '사는 흉내내는 삶'이 아니라, 일요예배에 조건반사로 참석하는 삶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겠노라고. 그날부터 알비 삭스(Albie Sachs)의 “Live Your Life for Yourself”라는 말이 미스 헬렌에게는 말이 아니라 삶이 된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이 집안으로 던지는 돌팔매질과 이웃의 따돌림 속에서 '정신 나간 늙은이' 취급을 당하며 미스 헬렌의 '내적 망명(internal exile)'은 15년 동안 묵묵히 이어진다. 


미스 헬렌의 '내적 망명'이 남의 일 같지 않았기에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은 참 마음이었는데…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3년 전 일이 또 일어났다. 



 

맨 앞줄, 중앙 통로 오른쪽으로 세번째.

어라? 눈을 질끈 감고 있다. 

꼿꼿하게 앉아 있는 자세로 미루어 잠을 자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누군지는, 물론, 알 수 없지만,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돈까지 내고 들어와서 맨 앞자리 꿰차고 앉아 보란듯이 눈을 감고 앉아있단 말인가. 


입으로는 한 치 오차없이 대사를 쏟아내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엉망이었다.

동선이 정면을 향할 때마다 눈길은 그 남자에게로 갔다. 끈질기게 감고 있었다.

휴게시간이 왔다. 

상대역은 무대 뒤로 들어가고 나는 무대 앞으로 내려가 남자 앞에 섰다. 

"저어, 내가 아직 훈련이 덜 돼서 그런데… 꼭 눈을 감고 있어야 하면, 죄송하지만, 내 눈에 띄지 않는 자리로 옮겨가 주시면 고맙겠는데…" 

남자는 신분을 밝혔다, 연극영화과 학생. 두 번 관람할 작정이었다나, 한 번은 대사에만 집중하면서 눈 감고 관람(?)하고 한 번은 눈 뜨고 총체적으로 관람하고. 

답을 듣고 나서 오해(?)는 풀렸지만 그러한 상황을 그런 식으로 처리한 자신이 한심했다. 


제작까지 해가면서 주인공 역을 해봤자였다. 나는 여전히 대학교수. 연극배우는 아니어도 한참 아니었다. 

'다시'는 했지만 '제대로'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3년이 지난 1998년. '다시' 했다.

공연장: <성좌소극장>

공연일시: 7월 2일 ~ 8월 2일, 화수목 오후 7시 30분, 금토일 오후 3시 30분, 7시 30분



1995년 가을학기부터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 언어문명과(East Asian Languages and Civilizations) 한국어 프로그램 책임교수로 일하고 있던 터이라 <메카로 가는 길>의 세번째 공연은 필히 하버드대학교 여름방학기간 중이어야 했다. 


월간 음악/공연예술지, <객석> 8월호, 자유기고가 박정영씨의 <메카로 가는 길> 평을 일부 옮긴다:


"… 우리는 이 작품을 볼 기회가 두 번 있었다. 92년도 초연 무대, 그리고 95년도. 3년 터울로 올려지는 이 작품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따라 다닌다. 전경자. 그는 세 번 공연 모두 미스 헬렌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연극배우라는 직업보다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먼저 앞선다. 현재 그는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직을 휴직하고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 언어문명과 한국어 책임교수로 재직중이다. 

초연 당시 그가 이 작품을 들고 대학로로 들어올 때만 해도 대학교수가 작품 하나 번역하여 연기도 해보는 정도의 취미생활이겠거니 별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자 ‘메카로 가는 길’은 대학로 중심을 술렁이게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작가 후가드와 함께 미스 헬렌 역의 전경자가 화제의 촛점이었다. 한번도 연기를 배워본 적도 없고, 경험도 일천한 그가 외로움의 극한 상황에 몰려있는 주인공 미스 헬렌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낸 것이다. …

50줄을 넘어선 대학교수의 신분으로 연극이라는 힘든 일을 새롭게 시작한 그의 모습 또한 미스 헬렌이 자신의 메카로 나아가기 위해 세상과 절연하는 용기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가 연극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메카를 찾아 떠난다. 그 길은 결코 누가 동행할 수 없는 혼자만의 여정이다. 그러나 자신의 촛불이 꺼질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견하고 담대하게 그 어둠을 지킬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메카로 가는 길’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고 그 존엄성의 무게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연극이다."




1998년 10월, 심장마비가 남편을 찰나에 다른 세상으로 보내지 않았더라면 지난 25년 동안 나는 <메카로 가는 길>을 3년 터울로 무대에 올렸을 게다. 미스 헬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소극장 무대 위에서 드높이 외쳐댔을 게다. 붕어빵 찍어내 듯 하루를 백 번, 천 번, 만 번 되풀이 찍어내고 있는 이들이 문득 '자신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면서. 




1992년, <메카로 가는 길>을 공연작품으로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나는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비밀이었으니까. 

1998년, <메카로 가는 길>을 세 번째 올릴 준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왜 자꾸 같은 작품만 하지?"

"좋은 작품이니까. <햄릿>을 어디 한 번만 하디?"

남편에게도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비밀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The Road to Mecca> made me think about my ow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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