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백호는 만 여섯 살 순종 진돗개다. 어릴 때부터 워낙 사람을 잘 따르고 순해서 낯선 사람이 오면 짖을 수나 있을까 싶었다. 대형견인데도 불구하고 물기는커녕 짖지도 않아서 성대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다. 그러다 처음 백호의 야생성을 볼 수 있었던 건 몇 해 전, 목줄에 묶인 상태에서 눈 앞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쥐새끼를 한 손으로 때려잡더니 입에 물고 정신없이 땅바닥에 연속 패대기를 쳐서 몇 초 만에 죽은 쥐를 만들어버리던 광경이었다. 그때 본 백호의 송곳니를 드러 낸 표정이 정말 낯설어서 ‘아, 진돗개는 맹견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느 날 쪼그만 말티즈 한 마리를 데리고 누가 놀러 왔다. 대문 앞에서부터 짖어대던 그 강아지는 백호 가까이 오자 목에 핏줄 터지겠다 싶을 정도로 격렬하게 짖기 시작했고 개 짖는 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의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도 이런데 청력 예민한 개는 더하지 않을까 싶어서 백호의 눈치를 살폈다. 혹여나 갑자기 그 맹수의 본색을 드러내면서 말티즈 목덜미를 잡아채는 건 아닐까 걱정도 조금 하면서. 그러나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은 그 개 앞에서 백호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은 자세로 멀뚱히 앉아있다가 ‘얘가 왜 이러나’ 싶은 표정으로 말티즈를 바라보기도 하다가, 자기 몫의 밥을 먹더니 결국 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눈 앞에서 백호가 사라지자 그제야 말티즈는 안정을 되찾았고 모두에게 평화가 돌아왔다.
백호는 분명히 말티즈 앞에서 같이 짖어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목덜미를 무는 것도 어렵지 않았겠지만 사실 송곳니 한 번 드러내고 으르렁만 해도 그 강아지는 자기 한계치 이상으로 짖어대다가 숨통이 끊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백호는 강하고 지혜로운 녀석이다. 그런 조그만 강아지가 위협을 느꼈을 때 자신을 보호하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보다 약한 상대에게 대응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 때문에 일부러 자리를 피해 주었을 것이다. 백호는 그런 애다. 나의 지나친 상상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진돗개의 지능과 판단력을 잘 모르거나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약자인 쪽이 더 시끄러운 법이다. 강자인 백호는 자신의 힘과 무서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레 겁먹고 짖어대지도, 그럴 필요가 없는 상대에게 대응하지도 않는다.
나와의 일들을 부지런히 상대방에 전하고 다녔다는 어느 약한 사람의 이야기를 어제 또 한 번 들었다. 끝났나 싶으면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새롭게 튀어나오는 그 사람의 졸렬한 에피소드. 대체 끝이 어딘가 싶어 듣는 당시에는 잠시 어이가 없었지만 얼마나 약한 사람이면 그렇게 자기를 보호하는 데 혈안이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마치 단거리 달리기 스타트 라인에 선 사람처럼 나와 공통으로 아는 지인에게 먼저 자기 입장을 전달하는 데 재빨랐던 것도 그 맥락에서라면 이해가 된다. 두려웠던 거겠지. 숱한 자신의 구멍들이 날것으로 드러날까 봐.
그러나 당신은 꿈에도 몰랐고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우리의 관계 속에서 너는 언제나 말티즈고 나는 진돗개였다는 걸. 아니 취소해야겠다. 치졸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너의 언행들을 귀엽고 순진한 말티즈에게 붙이는 것은 강자답지 못한 짓 같으니. 그저 나는 백호가 그랬듯 너의 짖어댐이 의아하고, 성가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응할 필요를 못 느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