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불안과 불편의 안개

고요히 잠재울 평정을 기다리며

by 해차

오랜 불안과 불편의 안개를 헤치고 마침내 거센 풍량 고요히 잠재울 평정이 네 속에 자리 잡게 되기를

- 풍경소리(2025년 7월호) 속 한 구절


아 뭐랄까 지금은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있습니다. 틈 날 때마다 끄적이는 고요한 유서를 하나 더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작성한 유서가 저의 모든 착잡함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사랑, 이별, 관계, 인연. 이젠 이러한 관계들 속에 지쳐,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없는 사람처럼 살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으로서 살아가려면 자본이 있어야 하고 자본을 충당하기 위해선 또다시 사회로 되돌아가야 하는 이런 멍청한 구렁텅이 덕에 저는 오늘도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떠오른 많은 방법들 중, 남겨진 나의 사람들이 너무 슬퍼하지는 않게 될 방법으로 다시 생각합니다. 그렇게 최소 백번의 여과를 거칩니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놀랍게도 아직 없습니다.


죽음을 생각합니다. 죽음을 위한 방법을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할 방법을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지나갑니다. 또 하루 살아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태 살고 있습니다. 죽을 용기가 없다고 하죠. 겁쟁이나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건만 제가 그러고 있습니다. 작은 변명을 해보자면, 죽을 용기가 없던 시절은 지나고 지금은 조금이나마 나은 죽음을 선택하기 위해 골똘히 생각 중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하루 더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스토아 철학에 대한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생각했습니다. 지난날의 내가 스토아 철학을 실천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G를 만남으로써 저는 꽤나 망가져 있었습니다. 충분히 망가졌던 삶이라 생각했건만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 고되지만 버텨내고 있던 제게 신뢰할 만한 안식처를 내어주고 기댈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가장 힘들고 아플 때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떠났습니다. 이제야 조금이나마 증오합니다. 차라리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주변에 무관심한 스토아 철학자가 되어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나 증오보단 고마움이 큽니다. 당신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내게 준 것은 어떤 형태였던 사랑이었고, 저는 제가 타인에게 주는 사랑이 어떠한 형태를 띠고 있는지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꽤나 아픈 방법이었지만 고맙습니다.


하지 않던 지난 사랑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니, 오늘은 주량을 조금 넘긴 듯합니다. 다들 행복하세요. 저는 행복하지 아니하지만 그래도 하루를 버텨내고 있으니 오늘도 달갑지 않은 아침을 맞이하러 침대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한 주를 살아내어 버린 어느 날의 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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