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학교 안 빠져.
도대체 이 단어를 처음 만들어서 입 밖으로 뱉은 사람은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개근과 거지의 조합.
개근을 거지의 결과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른들이나 가능한 생각이다.
실제 이 말을 사용하는 아이들은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과거 "개근상"이 학년말에 주는 상 중의 하나였고,
사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받아서
"모범상", "우등상"을 받는 소수의 친구들에 비해
"개근상"은 받고도 깔깔 웃어버리는 살짝은 멋쩍은 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12년을 그렇게 매일 학교에 갔다는 것이 참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근의 가치는 무엇일까?
개근을 통해서 "성실"을 배울 수 있다.
성실은 공기와도 같다.
"유능"과는 달리 "성실"만으로 대단한 것을 이룰 수는 없어도,
성실하지 못하다면 아무리 유능해도 결국은 도태되고 만다.
성실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사회생활에서 성실하지 않은 사람은 신뢰를 얻지 못해서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
가정에서는 부부 중 한 명이 성실하지 못하면
다른 한쪽으로 과도하게 부담이 떠넘겨져서 많은 갈등을 초래한다.
성실은 사회 속에서 어른으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성실"은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배우고 학습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시나브로 몸에 배는 것이지 어른이 되고 갑자기 익힐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어린 시절에 이 성실을 배우는 것이 바로 "개근"이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학교가 재미있고 재미없고를 떠나서
학생으로서 학기 중에 일정한 요일과 시간에 한 장소에 12년 간을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성실이 된다.
"이것이 성실이다"라고 딱 집어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 시기를 지나면서 아이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을 체득한다.
개근은 또한 부수적으로 리더십을 길러줄 수 있다.
개근과 리더십 사이에 반드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의미한 연관성을 가진다.
학교는 학습과 생활의 두 영역이 있다.
우선 학습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일주일 정도 결석을 하면
교과서를 펼쳐도 무엇을 하는지, 어디를 하는지 모르고 헤매게 된다.
혼자 준비물이 없을 수도 있고
지난 시간에 해놓은 자료들이 없어서 수업 참여가 어렵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것이 빨리 회복이 되지 않으면 학교 수업은 점점 더 재미없고 악순환의 고리로 들어설 수 있다.
작은 그룹일지라도 그 그룹 안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거침없이 처리해 나갈 때
아이들은 자기효능감이 길러진다.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서게 된다.
생활의 측면에서 봤을 때도 시시각각 변하는 교실 속에서 결석한 아이들은 겉돌 수 있다.
학기 중에 성실하게 출석을 하는 학생은 교사 및 또래와의 활발한 상호작용으로
교실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흐름의 변화를 알고 분위기 자체가 자신의 것이 된다.
교실 안에서의 지위가 바위처럼 굳건하다.
체험학습으로 자주 결석을 하는 아이와 학교를 빠지지 않는 아이 중에
담임선생님은 어느 친구에게 신뢰를 보낼까?
"지난 시간에 어디까지 했지?" 이렇게 간단한 질문도 그 자리를 지키는 친구에게 묻게 된다.
사회생활에서 "보이지 않는 이러한 힘"이 아이를 더 자신감 있게 만들고
집단안에서 목소리가 커지고 어깨를 펴게 만든다.
결국 개근을 하는 친구와 결석이 잦은 친구는 교실 내에서 주인과 손님의 위치에 있게 된다.
아이들 중에서 교실의 주인은 그런 성실한 친구들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도적인 역할을 부여받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것이다.
학창 시절 교실이라는 환경 안에서의 경험들은 아이들 내면의 구조를 형성하여
잠재의식 속에 저장되고 삶의 방향에 깊은 영향을 준다.
아이들은 이 시기의 영향을 평생 무의식적으로 받고 살아간다.
학생이 어린 시절 "학교를 가야 하는 당연한 의무를 성실히 행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이런 모든 것을 감수하고 학교를 빠지면서까지 여행을 가야 할까?
주말에는 놀이공원에 사람이 많아서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평일에 놀이공원에 가는 가족들이 있다.
부모의 가치관 안에는 놀이공원이 학교보다 위에 있는 것이다.
한 번이라서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일관성이다.
한 번의 예외도 없어야 부모의 말에 권위가 생긴다.
무엇보다 방학이 있다. 방학의 한자 뜻은 "놓을 방"과 "배울 학"이다.
즉, "배우는 것을 놓는다"는 의미로 그 기간이 일 년에 3개월 가까이 있다.
사람이 많더라도 그때 가면 충분하다. 하물며 가지 않아도 아이의 성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기준과 그에 따른 구분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아이들은 부모가 어떤 판단을 하는지를 그대로 보고 배운다.
부모가 학교를 대하는 태도가 아이의 학교생활을 좌우한다.
학교라는 장소와 학교 선생님을 우선시하고 존중하는 부모의 태도가 그대로 아이들에게 학습된다.
둘째 ○○이가 입원을 하고 회복하느라 2주 정도 학교를 안 간 적이 있다.
같은 반 친구 엄마에게 들었는데, 그 집 아이가 ○○이가 학교에 안 온다고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께서 "체험학습 간 거 아닐까?"라고 말했고
그 집 아이가 "○○이는 학교 안 빠져"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아이들도 다 안다.
학창 시절 아이에게 개근의 가치를 알려주고
이를 통해 아이들은 당연한 것에의 순응과 성실을 익혀야 한다.
아이가 12년간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는 학교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생활하도록 부모의 일관된 메시지가 필요하다.
개근하는 부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