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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스 Jan 11. 2024

살면서 한 번쯤 히말라야

고생 끝에 값진 경험

히말라야를 다녀온 지 3주가 지났다.

지금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거 보면 내가 진짜 히말라야를 다녀온 게 맞나 싶다.

눈이 오면 히말라야 생각이 많이 난다.



제일 고통스러울 때: 아침에 일어나서 출발해야 할 때

물론 항상 힘들지만, 제일 고통스러운 순간은 아침에 멀쩡히 일어났을 때이다. 몸이 죽을 만큼 아프면 내려가기라도 할 수 있지만 그 정도로 아프지 않았다. 오늘도 고산병에서 살아남기 위해 밥을 든든하게 먹고 아침을 시작한다. 달밧이 너무 좋지만 아침부터 먹고 싶지 않아서 아침은 브런치 세트로 먹었다. 여기에서 제공해 주는 꿀이 아주 기가 막히다.

우리의 포터 . 허리가 삐끗해서 내 짐좀 가볍게 하려고 몰래 딜이 들어주는 짐에 무거운걸 더 넣었다. 포터만 십수 년 한 이 무게가 달라진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묵묵하게 내 뒤에서 따라와 줬다. 고마워서 1000루피 팁을 한번 줬다.


딜 과 나

"나 여기에서 사진 한 번만 찍어줘"


 경치가 예쁘다 하면 누나는 어김없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시도 때도 없이 사진을 찍어줘야 한다. 아무 말 없이 그냥 해달라고 하면 사진 찍어줬지만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화를 내진 않았지만 표정이 안 좋아졌다. 누나가 그걸 눈치채고 이제 자신이 아니라 내 사진을 마구 찍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서 풍경이 눈에 안 들어올 때라 누나가 사진을 계속 찍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이런 사진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한 추억이다. 막무가내로 이것도 추억이라며 사진 찍어준 누나에게 고마웠다.

 하루에서 가장 좋은 날은 점심때 달밧 먹을 때다. 점심때가 날도 따뜻하고 밥맛도 좋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시누아'에서 먹었던 달밧의 맛은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다. 고추장을 섞어도, '밥이랑'을 섞어도 달밧의 맛은 변함없이 맛이 없었다. 무언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시누아'롯지에서 '히말라야'롯지로 가는 길에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몸 안에 모든 걸 게워내었다. 나에게 고산병이 찾아왔다.

ABC코스를 시작하기 전에 고산병의 위험성을 보고 무서워서 고산병 걸리지 않기 위해 약을 먹고 마늘 수프를 먹었다. 직접 걸려보니 죽을 만큼 치명적인 병은 아니었다. 머리는 하루종일 지끈거렸고, 수프 제외하고 그 무엇도 먹을 수 없었다. 다 토해냈기 때문이다.


"넌 왜 그런데만 가?"


순간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이제까지 여행으로 몽골,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인도를 갔고 요번에 네팔도 가본다고 했을 때 친구한테 들었던 말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되게 멋있게 잘난 척하면서 말했던 것 같다. 헛웃음이 나왔다. 여기에 오는 게 왜 내 소망이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내가 왜 이런 여행을 하는지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친구의 말대로 일본같이 익숙한 나라 가서 편하게 여행이나 해볼걸 그랬나? 그때 내가 여행을 시작하면서 했던 다짐이 생각났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니깐 그 말을 믿고 끝까지 가보자. 그 말을 믿어보며 다시 발 걸음을 땠다.


히말라야 롯지

나는 지금 히말라야 롯지 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이제 하루만 고생하면 ABC를 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 포기하기엔 지금까지의 노력이 너무 아까웠다. 이때부터 내가 어떻게 ABC까지 올랐는지 모르겠다. 히말라야 롯지에서 먹은 커피 한잔 덕분이었을까? 만약 히말라야 롯지에 왔다면 커피를 한잔 무조건 마셔줘야 한다.  커피가 맛있어서 놀랐다. 커피의 기운으로 계속 올랐다.

안갯속을 걷다가 MBC에 가까워지니 안개가 걷어졌다. 그리고 경치가 잘 보이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안나푸르나 마추푸차레 세계에서 유명한 산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 광경에 난 압도되고 말았다. 자연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눈앞에 펼쳐진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내린 계곡물이 아름다워서 마치 천국이나 지옥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MBC롯지에 도착 고개를 돌리면 예쁜 설산들의 모습이 나를 반긴다. ABC에서 자도 되고 MBC 롯지에서 자도 되지만 MBC에서 자면 ABC까지 무거운 짐을 갖고 가지 않아도 돼서 MBC에서 자기로 결정했다.

네팔에서도 K국뽕을 느낀다. KT가 응급 구조 센터를 만들어놨다.

짐을 안 들고 갈 수 있어서 그런 건가 아름다운 풍경에 ABC를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MBC에서 조금만 걸어도 ABC가 보였고 이제 다 왔다는 생각에 매우 들뜬상태였다

ABC에 결국 도착했다. 5일 만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온몸에 전율이 느껴져서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사람이 한계를 정해두면 되는 것도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만약 내가 허리 아프다고 포기했다면 이런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고산병에 걸렸다고 포기했다면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ABC를 찾는 이유는 비단 경치, 풍경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한계를 이겨내는 이 쾌감 때문에 여기를 찾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네팔에서 처음으로 콜라를 마셨다. 그것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콜라이지 않았나 싶다. 고산병인 것도 잊고 마구마구 먹었다가 다 토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ABC를 다녀와서 난 행복했다.


"그런 여행이 기억에 더 남아"


친구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난 몸 편한 여행보다 많이 걸으며 돌아다니고 많이 도전하며 경험하는 여행이 좋았다. 그런 여행이 기억에 더 남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ABC코스에서 느꼈던 감정은 내 인생에 큰 터닝 포인트가 됐다. 어떤 힘든 순간이 찾아와도 고산병 걸린 상태로 ABC 가는 것보단 안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히말라야 등반보다 더 어려운 순간들도 있겠지만 그런 순간에도 끝은 있겠지 믿으며 힘차게 나아갈 것 같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자신있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살면서 한번쯤은 히말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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