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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minghaen Nov 10. 2017

틈틈이,서울-25,

십이월,와룡동


그 날은, 겨울이 시작되는,

서늘하면서도 한낮에는 햇빛이 진하게 온 몸을 감싸는 날이었다.


그 날의 난, 지금까지도 즐겨 입는 먹색코트-보송보송한 털모자가 달려있고, 지퍼가 있지만 귀찮아서 똑딱이 단추만으로 입고 벗어 바람이 슝슝 들어오는-를 입고 있었다.


십이월 초, 저녁 여섯시 즈음 우린 광화문에서 만났고

세종문화회관 뒷 편에서 돈가스와 우동을 먹었다.

눈이 온다는 소식은 있었지만 아직 눈이 오지 않았고

우린 눈을 맞고 싶었기에 눈이 올 때 까지 교보문고를 구경하기로 했다.


한 시간 남짓,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각각 다른 장소에서 읽었고

중간 중간 멀리서 서로가 어딘가에 있음을 눈짓으로 확인했다.

나는 서로의 책에 편지를 써주자는 그 사람의 익숙한 목소리를 쫑긋 세워 귀에 꼭꼭 담으며

교보문고를 나와 무교동으로 걸었다.

나는 코트의 단추를 하나도 잠그지 않고 코트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걷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

그 바람은 내 눈과 귀를 스쳐 온 몸을 흔들었다.

옆에서 걷던 그 사람은 휘청-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멈추어 섰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 오른손에 쥐어주고 무릎을 굽혀 앉은 뒤

손가락으로 내 코트의 지퍼를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나는 가만히 내 코트 끝자락의 지퍼가 흔들리는 걸 바라보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 사람은 내 코트의 지퍼를 끝까지 채운 다음 목 부분의 똑딱이 단추를

딸깍 하고 닫으며 단단히 여며주었다.

뿌듯해하는 그 사람의 눈이 내 얼굴을 스쳐 내 귀에 닿았다.

그 때.

눈이 내렸다.

또 그 때.

눈송이 몇 웅큼이 그 사람의 손을 따라 내 귓속으로 들어왔다.

차가운 눈송이와 따스한 손의 감촉이 내 귓속을 빙빙 휘감아 둥둥 울렸다.


난 알았다.

내가 이 장면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되리라는 걸.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겨울 날,

히터를 틀어 놓은 버스 안 서리가 낀 창문에 귓볼이 닿을 때.

둘둘 휘감은 목도리 속으로 눈송이 몇 알이 파고들어 귓가에 닿을 때.

그럴 때 마다

문득 내 귀를 두 손으로 감싸 쥐게 하는,

내게는 오래오래 없어지지 않을 기억을

결국 만들어버리고 말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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