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남산
남산에서 만난 태어나서 처음 보는 꽃.
좋은일들이 생길 것 같아-라는 생각을 오랜만에 해보았다.
아주 잠깐-
*십이월,소월길
어쩐지 여기에선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 눈물을 쏟아버렸다.
*구월, 이태원
나는 요즘 자꾸만 체하는데,
그건 네 이름이 내 목에서 아직 빠져나가지 못하고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더라고.
넌 관심 없겠지만.
네 이름을 뱉어 내려면 얼마나 더 오래 지나야 하는 걸까.
물도 마시고 침도 삼키고 울고 소리지르고 마구마구 먹어서
나는 토해내려고 해.
네 이름을 빼내면 또 다른 이름들이 있겠지.
모조리 다 뽑아버리고 잘 모아서
곱게 닦아 넣어두려 해.
가끔 가끔 내가 살아있었다는 걸 잊을때 한번씩 꺼내 보려고.
넌 관심 없겠지만.
*오월, 회현동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은 왜 늘 매몰차게 뒤돌아 온 후에야
혹은 가차없이 버려진 후에야 내게 선명해 지는걸까.
*사월.이태원동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끝나기 전, 그 사람과의 마지막 식사는 어땠을까.
내가 그 날의 그 시간, 그 식사가 그 사람과의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던 적은 몇 번이나 될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가 살아온 시간의 카펫-위에서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연락해 시간과 장소를 정해 얼굴을 마주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서로의 요즘과 언젠가-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사람들 몇몇이 떠올랐다.
내 잘못일 수도, 상대방의 잘못일 수도 혹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상황이, 시간이 우리를 그렇게 흘러가게 했을 수도 있기에
어쩔 수 없음을 알지만 문득,
다시는 같이 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자 무엇인가가 눈 앞을 훅-스쳐 지나갔다.
어떤 이와의 마지막 식사는 어렸던 우리가 자주 갔던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던 날이었고,
또 다른 어떤 이와의 마지막 식사는 지금은 찾지 않는 내가 다니던 회사 근처 햄버거 가게였고,
또 또 다른 어떤 이와의 마지막 식사는 경기도 어딘가의 닭갈비집이었나보다.
그 시간이 모두, 우리의 마지막 식사일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던 우린
서로에게 가장 서로다운 모습을 보이며, 가장 자연스럽게, 마지막이 아닌 것처럼
보낼 수 있었던 거겠지.
그래서-
그래서, 그 날들이 이리도 가장 좋았던 우리의 모습으로
자꾸만 눈앞에 스치는 거겠지.
*사월 남산
무언가를 오래-정성 들여 보아 주는 것이 다정한 위로라고
생각하는 나는
나를 얼마나 오래-정성 들여 보아줬었나_
아주 오랜 시간동안...
*십일월 이태원동
어둠에 익숙해지는 건 좋은걸까 나쁜걸까?
답을 내야만 하는 문제도 아닌데
어느 쪽이 답이어도 무서울 것 같아 괜스레 묻지 못하고
결국 반쯤 눈을 감지도 뜨지도 못한 채로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