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행복한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꽃집에 들러 축하하는 마음을 잔뜩 담아 꽃다발을 만들었다.
꽃집에서 나와 꽃을 들고 친구에게로 가는 길, 그 오 분 남짓한 시간에
그래. 널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되짚어보았을 때, 그럼에도 미소 지어지는 기억들의 몇 장면엔
그래, 맞아. 꽃이 있었다.
네가 툭 하고 건네던
신문지로 돌돌 만 후리지아
길에 떨어져 있던 꽃 나뭇가지
휴지로 만든 장미꽃
시월의 가을, 보스톤의 어느 작은 동네 골목에 놓여있었던 다홍빛의 꽃.
그래, 보스톤의 꽃.
스물여섯 보스톤의 어느(이름이 기억나지 않는)전철역(안에 도미노 피자가 있는)에서 너와 나의 빠른 걸음으로 십오분 정도 걸리던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지나며 너는
‘이곳엔 종종 꽃이 놓여있어’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날도 그곳에 꽃이 있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른 뒤 문 바로 옆에 있던
네 방에서 너는 내 귓가에 꽃을 심어주었다.
아직도 나는 잠결에 또는 잿빛 구름의 날씨를
만날 때 귓가를 쓰다듬어 그 꽃을 찾는다.
'잊어버린다'와'잃어버린다'는 다른 거야. 라고 문
법을 지적했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잊어버린다'와'잃어버린다'가 완전히 다른 건 아니었구나.
잊어버려서 잃어버리고, 잃어버려서 잊어버리는구나.
잊혀 지지 않으려면 잃어버리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음을.
너를 보기 위해 달려간 그 곳 그 동네에서 우연히 내게 나타난 꽃처럼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마음 놓게 해주던 내 머리맡의 이 꽃처럼
지금은 어디 있는지 조차 모르게 스르르 사라져버린 꽃처럼
우연히 내게 와 가장 가까이에서 내 마음을 놓게 해주다 지금은 어디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너라는 사람.
네게는. 내가 네게 있던 그 때가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니었을지라도
내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게 있던 그 때가 가장 좋은 시기였어-’라고 가만히
내뱉는다.
그 시기가 내게는 서러웠던 지난 사랑의 여운을 담고 '진짜' 오래오래 영원히 함께하기를 기다릴 수 있었던 가장 좋은 시기였었지-
너를 잃고 나를 함께 잊어버린.
너를 잊고 나를 함께 잃어버린.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때의 난 이렇게 꽃과 함께 너를 기다린다.
오 분 동안 나는
꽃 나뭇가지를 들고 버스를 탔고
다홍빛 꽃을 손에 쥔 채 보스톤의 작은 동네를 걸었다.
그리고, 종로1가 횡단보도 앞에서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힌 채 신문지에 안긴
노오란 후리지아를 들고 있었다.
너와 함께.
그래.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