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를 하게 되면 영어공부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최대의 장점인데요. 저의 경우는 가급적이면 공연을 많이 보겠다 생각했었답니다. 외국 여행을 가더라도 아주 특별한 공연이 아니면 짧은 일정에서 일부러 공연을 보러 가는 건 사실 좀 힘든 일이거든요. 우리나라에게 아직 덜 알려진 '몰타'라는 나라에서는 어떤 공연을 하는지, 공연장은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해 드릴게요. ^^
이번 내용은 중세 시대 몰타기사단이 연극이나 오페라 관람을 했던 마노엘 극장입니다.
+ 마노엘 극장((Teatru Manoel)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장 중 하나인 마노엘 극장은 꼭 공연이 아니더라도 내부는 꼭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노엘 극장의 모습을 찍은 사진만으로도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아름다운 극장이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중세풍 가득한 곳에서 꼭 한번 연극을 한번 보고 싶었다. 몰타에 오자마자 마노엘 극장에서 어떤 공연이 열리는지 검색을 해보니 셰익스피어 4대 비극(Shakespeare's 4 tragedies) 중 하나인 오델로(Othello)가 상영될 예정이니 타이밍이 좋았다. 16세기에 중세 기사단들이 앉았던 마노엘 극장에서 오델로를 볼 것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약 300여 전의 시간으로 되돌아 간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몰타에서 보게 된 첫 공연이 셰익스피어라니!!! 절로 기대가 됐다.
1731년에 지어진 발레타 마노엘 극장은 유럽의 실내공연장 중 세 번째로 오래됐다.
다만 가보지 않은 극장이기에 어떤 자리를 예매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마누엘 극장의 홈페이지의 좌석배치도를 보니 로열석은 이미 대부분 예매가 끝난 상황이었고 스텔라 석과 맨 꼭대기 층만 좌석이 남아 있었다. 어느 구역에 어느 박스에 앉느냐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전체 좌석을 내려다볼 수 있는 초록색의 맨꼭대기 층으로 예매를 했고 학생할인이 적용돼서 20유로에 예매를 했다. 어학연수 학생증이 있으니 대부분의 공연은 학생할인 요금을 적용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몰타의 경우 공연 등을 예매하고 나니 티켓이 PDF로 이메일로 전송됐다. 어떤 공연장이냐에 따라 PDF의 큐알(QR)만으로도 입장이 가능한 경우도 있었는데 마노엘 극장의 경우 PDF 티켓을 스마트폰에 저장한 것을 보여주니 종이 티켓으로 교환해 줬다.
마노엘 극장의 티켓
마노엘 극장은 해협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으로는 온통 카페와 레스토랑, 바 등이 밀집된 지역답게 하루종일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거리의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잔 하거나 간단하게 식사를 하면서 공연의 여운을 즐기기에는 최상이었다. 이 근처에 한국 레스토랑도 있고 발레타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라는 Tico Tico도 모두 이곳에 위치한다.
현재 마노엘 극장은 외관 리모델링 공사가 한 장이라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공사 중이어서 굉장히 어수선한 느낌이었고 들어가는 입구가 생각했던 것보다 평범했다. 사진에서 보기는 했지만 큰 기대 없이 들어섰는데 맙소사!!! 화려하기 이루말할 수 없는 실내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공연이 없을 때는 5유로에 마노엘 극장 실내 관람을 할 수 있다. 꼭 공연이 아니어도 왜 꼭 한 번쯤 들어가 볼만하다고 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창 공사중인 마노엘 극장의 입구
평범한 외관과 달리 실내는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사진만으로 충분히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눈으로 보니 천장의 장식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극장이었다. 무대에서 객석을 정면으로 바라보니 중간 즈음에 'MDCCXXXI'이라는 장식이 눈에 띈다. 마노엘 극장이 건립된 1731년을 나타내는 로마숫자로 몰타 기사단이 머물던 중세 시대에 지어졌다. 현재 마노엘 극장은 유럽에 있는 실내극장으로는 세 번째로 오래된 극장이다. 이곳은 그랜드 마스터였던 안토니오 마노엘 데 빌헤나(Antonio Manoel de Vilhena) 씨가 기사단의 여가를 위해 건립했는데 그의 이름을 따 '마노엘 극장'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마노엘 빌 헤나 씨는 몰타 기사단 역사에서 중요한 사람 중 하나로 그의 통치 시절 다양한 문화적인 활동이 진행됐고 가장 번영했던 시기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성요한 대성당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1731년에 지어진 마노엘 극장은 유럽의 실내 극장 중 세번째로 오래된 극장이다.
내가 예매한 자리까지는 실내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야 했는데 그간 몇 차례 리모델링 됐음에도 곳곳에는 고풍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처럼 아름다운 마누엘 극장이지만 이곳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침이 있던 곳이었다. 마누엘 극장이 지어진 후 약 백여 년 동안은 몰타의 유일한 극장으로 몰타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는 국회의사당 옆에 1866년에 더 크고 화려한 오페라 극장이 생기면서 안쪽에 위치한 마노엘 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점차 뜸해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1873년 화재와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건물이 상당 부분 훼손되면서 극장은 유명무실해졌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노숙자들이 이곳을 숙박시설로 이용하면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고 한다. 그랬던 이곳을 1990년 중반에 몰타 정부가 복원을 결정했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세시대 건물인데 훼손이 심해 복원작업이 쉽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외관은 지금도 여전히 공사 중에 있다. 그래서인지 언뜻 보기에 실내 복원이 다 된 것 같아도 문고리 등 군데군데 상당히 부식되고 훼손된 모습을 볼 수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실내 계단을 이용해 각 층의 관람석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복도에 있는 문을 열면 각 층의 박스석이다.
군데군데 세월이 흔적이 묻어나는 마누엘 극장이다.
자, 이젠 연극관람을 위해 예매한 맨꼭대기 좌석으로 올라오니... 가격이 싼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4층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니 극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대학로 소극장보다는 큰 데 느낌상으로 소극장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요즘 공연장 기준이고 중세에 극장관람이 귀족층 위주였다는 걸 감안하면 당시로선 엄청난 시설이었것이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니 마이크 사용을 하지 않는데도 4층 꼭대기까지 배우들은 목소리가 잘 들리는 건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극장의 경우 마노엘극장 정도의 크기라면 핀 마이크가 없이 육성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되긴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중세 시대에는 마이크 시설등이 없는 건 당연하니 그에 맞춘 설계였을 것이니 오히려 육성에 최적화된 공연장이겠다. 다만 거리가 다소 멀긴 했고 타원형의 극장이라 공연을 관람하기에 편한 좌석은 아니었다. 한 30분쯤 시간이 흐르면서는 좌석이 너무 불편해 아예 서서 관람하기도 했다. 그래도 무대 전체를 볼 수 있어 좋기는 했는데 자리가 많이 불편하니 친구들을 대신해 예매를 한 내 입장에서는 다소 미안했다.
연극을 관람하기에는 다소 불편했던 맨 꼭대기 층
이때는 엘리멘트리 수업을 듣고 있었기에 영어는 10% 정도나 알아 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시작부터 좌절모드였다. 영어로 된 연극이어도 알아듣기 힘들 텐데 중세 영어인 '오델로'의 내용이 대사만으로 이해한다면 어학연수를 굳이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오델로의 주인공인 이아고(iaogo) 역의 에드워드는 내가 다니고 있는 ec 몰타의 선생님이었다. 에드워드는 상급반을 맡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나마 영어 선생님이라 그런지 그분 발음만큼은 확실히 잘 들렸다. 다행은 그나마 후반부가 되니 어느 정도 줄거리 파악도 되고 조금씩 상황 파악이 되는지라 관람이 한결 수월하긴 했다. 런던에서도 그랬지만 몰타에서도 영어를 가르치면서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더러 있었다. 에드워드는 연극배우였고 런던에서 만난 알렉스 선생님은 뮤지션이었다. 고정적인 수입이 담보되지 않는 예술가라는 직업은 외국도 예외는 아니구나 싶었다.
배우들의 커튼콜, 주인공인 이에고는 내가 다니는 어학원 ec 몰타의 선생님이었다.
이날 연극을 앞에서 본 지인은 배우들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었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몰타를 떠나기 전에 영어가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도 할 겸 앞자리에서 연극 공연을 한번 더 보고 싶었는데 이후로 연극공연은 없어서 아쉬웠다. 대신 클래식 공연이 무료로 열렸는데 좌석은 주최 측으로 메일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용기를 내서 공연을 보고 싶고 가급적 앞 좌석에 앉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더니 주최 측에서 좌석을 확보해 줬다. 막상 극장에 도착해서 보니 앞에서 두 번째 줄이었고 너무 코앞이라 엄청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그 많은 사람 가운데 한국인, 아니 외국인은 정확히 나와 룸메이트 밖에 없었다. 주최 측에서도 이 공연을 보러 온 우리를 상당히 흥미로워했다.
헬렌 밴드 클럽(St. Helen band club)이 도네이션으로 진행된 공연이었는데 비르키르카라(Birikirkara) 지역의 밴드로 그 클럽은 나름 풋볼 클럽도 가지고 있는 규모가 있는 곳인듯했다. 비르키르카라 지역은 몰타섬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도시인데 몰타는 나라도는 작지만 지역마다 다양한 형식의 밴드가 있는 것도 신기했다. (다음에 소개할 공연에서는 고조지역의 밴드 공연이다) 어쨌건 이날 공연은 이 밴드의 정기연주회였는데 마에스트로인 조셉벨라( Maestro Joseph Bella) 씨가 이 밴드 지휘를 맡은 지 25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기도 했다.
관악기로만 구성된 특이한 밴드였는데 지휘자가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것이 영향을 미친 듯했다. 자리가 너무 앞이라 목관악기인 플루트, 클라리넷, 오보에 등 앞줄에 앉는 악기 외에 대체로 금관 악기들인 트럼펫, 트롬본 등은 소리는 들리는데 연주자는 거의 안 보였다. 관악기로만 구성된 대형규모의 밴드 공연은 처음이라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클래식, 팝, 컨템퍼러리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연주됐는데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이색적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리키마틴의 'La Copa Da La Vida'가 연주된 점이었다. 현악기가 없어 전제적인 음향이 다소 낮게 깔리는데 마누엘 극장의 고풍스러운 느낌과 멋들어지게 잘 어울렸다. 앞자리에서는 저음 소리가 더 좋게 들리는 것도 한 몫했다. 앞자리에 앉으니 목은 상당히 아팠지만 악기 본연의 소리를 오롯이 들을 수 있어서 그 나름대로 또 느낌이 좋았던 마누엘 극장이다.
한국인이라곤 오직 나와 룸메가 전부였던 몰타 지역 밴드의 공연
덧. 어학연수는 영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어학연수의 가장 큰 장점은 짧은 해외여행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당양한 것을 경험해 볼 수 있다. '공연'은 그중 하나. 특히 몰타는 매주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는데 어학연수생이라면 학생할인 가격으로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멋진 공연을 볼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있다. 몰타에서 문화생활도 마음껏 누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