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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May 30. 2023

[몰타어학연수] 몰타에서 한식으로 살아남기

몰타 어학연수 제1장 #27 몰타 한식열전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1장 엘리멘터리 몰타  

# 몰타에서 한식으로 살아남기


한국사람은 밥심입니다. 외국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몰타'라는 나라에서 한식재료 구하기가 어떨지 다소 걱정이 되었는데요. 지난번 포스팅 김치 담그기(https://brunch.co.kr/@haekyoung/108 )에 이어 몰타에서는 어떤 종류의 한식을 해 먹었는지 보여드릴게요. 참고로 저는 요리를 못하는 사람입니다.


몰타로 장기간의 어학연수를 고려했을 때 가장 큰 걱정은 먹는 것이었다. 사실 한국인에게 있어서 '밥은 보약'이라고 하는데 나는 정말 밥이 보약인 사람이다. 한식파로서 긴 외국생활에 음식 걱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물론 한 두 달의 여행이나 어학연수였다면 현지 음식을 사 먹는 것으로도 충분히 굳이 귀찮고 힘들게 밥을 해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장 10개월 동안 외식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마트 물가는 한국에 비해서 저렴한 편인데 외식물가는 한국에 비해서 비싼 편이라 생활비도 나름은 고려를 해야 되는 사항이니 말이다. 대학생들의 경우에도 요리 1도 안 해본 사람들도 다들 한식만렙이 될 수밖에 없는 장기 해외생활이었다. 다들 자신들 나름대로 다양한 요리를 많이 했는데 콩국수를 해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었다. 몰타에 있는 동안 해 먹었던 음식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밑반찬에서 빠질 수 없는 김치 이야기는  이전 포스팅을 참조하시길.




+ 어묵탕 

몰타는 5월 초부터 본격적인 여름으로 들어가는데 우리나라처럼 간절기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다소 쌀쌀하다가 갑자기 맑고 뜨거운 5월로 진입한다. 몰타의 3월과 4월 중순 날씨는 맑은 날도 있지만 의외로 흐리고 바람 불고 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도 많았다. 이런 날에는 뜨끈한 국물이 당기는 건 진리.

집채만 한 파도


아시안마트에 부산어묵이 팔고 있어서 김밥, 잡채 등을 하고 남은 어묵이 있어 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 어묵탕을 해 먹었다. 김치 밑동이 너무 굵어서 버리게 된 배추와 대파, 마늘, 양파 등등을 넣고 국물을 낸 다음 어묵을 넣고 삶아 주면 세상 쉬운 어묵탕이다.

어묵탕



+ 콩나물 밥

콩나물을 팔고 있는데 가격이 사악해도 너무 사악했다. 한 봉지에 약 4유로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3천 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양인데 두 배정도다. 어쩌겠는가. 가끔 특별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이렇게 콩나물밥으로.  나는 밥이 중요해서 통상 1~2인분 정도의 작은 밥솥을 들고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만 해도 작은 밥솥에 밥을 해보니 밥맛이 너무 없어서 부피는 다소 있어도 3~4인분의 밥솥을 가져갔더니 콩나물 밥을 해도 거뜬했다.


콩나물 밥


+ 김치찌개와 부대찌개

초반에 배추 절일 때 소금이 안 맞아서 김치가 너무 짜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예 김치를 푹 익힌 다음 식초를 좀 넣어서 참치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었다. 그러다 좀 질리는 날에는 소시지와 햄을 넣고 부대찌개와 김치찌개 중간 정도의 애매한 요리를 하기도 했었다. 룸메가 부대찌개 가루를 가지고 왔다고 해서 부대찌개를 만들어서 맛있게 잘 먹었다.  

부대찌개 인가 김치찌개인가.
룸메가 만든 부대찌개


+ 시금치 국

나는 밥 먹을 때 꼭 국이 없어도 되는 사람인데 가끔 국을 끓을 때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시금치 국이다. 외국은 시금치가 뿌리 째 있는 것과 달리 시금치 이파리만 파는데 그것도 너무 얇아서 김밥 등을 만들 때 어느 정도 양을 사야 될지 가늠이 안 될 때가 있었다. 그러다 시금치가 너무 많이 남은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시금치 국을 끓어야 했다.

시금치 국



+ 무말랭이

개인적으로 무말랭이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룸메이트가 밑반찬으로 챙겨온 무말랭이와 새미네 양념이었다. 참고로 세미네 양념은 다양한 종류가 나와있는데 짧은 기간이라면 굳이 무겁게 양념을 챙길 필요 없이  팩에 담긴 다양한 새미네 양념을 사 오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어쨌거나 룸메이트가 보쌈김치 양념으로 무친 무말랭이가 어찌나 맛있는지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밥 한 그릇 뚝딱이 었던 무말랭이


4월 중순이 지나면서 몰타는 진짜 예쁜 바다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5월부터 10월 말까지 비가 오지 않는 몰타가 시작되니 테라스 식당이 오픈을 했다. 집 테라스에 식탁과 의자가 놓여 있는데 날씨도 멋지고 뜨거운 여름은 아니어서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면서 지중해 기분을 만끽했다. 테라스 식당을 오픈하면서 한식이 폭발했던 것 같다.

테라스에서 매일 보는 지중해 뷰



+ 삼겹살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거의 몇 년간 육식은 거의 먹지 않았었다. 하지만  몰타에 오고 나서는 내 체질 대로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단백질 섭취도 따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육식도 가리지 않았는데 일순위는 머니머니 해도 삼겹살이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나라 삼겹살 부위를 못 찾아서(삼겹살이라고 적혀있지만 한국과는 조금 달랐다)  최대한 비슷한 부위로 먹었는데 현지 마켓인 '리들'에서 한 번씩 한국식 삼겹살과 거의 비슷한 부위가 있어서 나중에는 삼겹살은 리들에서만 샀다. 상추가 없어서 처음에는 양배추를 같이 먹다가 여름이 되니 로메인이 나와서 로메인을 곁들였다.

삼겹살


+한국식 옛날 통닭을 판다고요?

J가 슬리에마에 한국식 옛날 통닭 파는 곳을 안다고 해서 통닭을 사러 가는 길에 분홍색 카라화분이 눈에 띄어 구매했다. 그동안은 계속 꽃 트럭에서 꽃을 샀었는데 칼라 꽃이 약 한 달 정도 유지된다고 해서 구매했다. 식물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지만 고작 6개월 정도 사는 집에 식물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는데 식물이 없으니 계속 뭔가 허전해서 그냥 눈 딱 감고 집으로 데려왔다.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현지인 대상의 작은 구멍가게에서 옛날 통닭은 팔고 있는 게 아닌가. 가격도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양도 많으니 이런 날에는 어김없이 어학연수를 같이 하고 있는 한국 동생들 불러서 다 같이 먹자 타임이다.

한국식 통닭



+ 닭볶음탕

혼자 있으면 거의 안 해 먹는, 아니 양이 많아서 해 먹을 수 없는 닭 볶음탕도 만들었다. 다만 몰타의 닭은 한국닭과 달라서 생각보다 다소 질기고 뼈는 많은데 살은 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맛있게 냠냠.

닭 볶음탕


+ 새우구이

육고기가 조금씩 질릴 때 즈음에는 해산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생물 오징어를 사다가 삶아 먹기도 하고 오징어 볶음도 하고, 그러다 어느 날에는 새우에 꽂혔다.  과외 선생님이 채숙주의자여서 뭘 해드릴까 고민하다가 준비한 것이 한국식 대하구이였다. 굵은소금을 깔고 굽기만 하면 되니 사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다. 외국에서는 이렇게 먹는 것 같지 않아서 한번 보여도 줄겸 겸 새우를 구웠다. 하지만 선생님은 완벽한 비건이라 해산물도 안 드셔서 결국 우리끼리 다 먹어 치웠다.


+ 짬뽕

삶아 먹고도 새우가 너무 남아서 룸메이트가 짬뽕가루를 가져왔다며 짬뽕을 만들어 보겠다고 해다. 남아있던 다양한 해산물을 넣고 뚝딱뚝딱  맛있게 만들어 주었던 짬뽕이다. 야~맛이 기가 막히다며 감탄하면서 먹었던 짬뽕이다.

국물이 끝내주던 짬뽕



+ 짜장면

룸메가 처음이라면서도 짬뽕을 맛있게 만드는 것을 보니 갑자기 짜장면이 먹고 싶어졌다. 사실 나로서도 짜장면은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지만 우리에겐 백 선생이 있고 유튜브가 있지 않은가. 아시안 마트에 생면과 짜장가루, 전분가루가 있어 사 왔고 나머지는 유튜브 레시피대로 만들기에 도전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맛도 괜찮았고 먹을 만해서 다행이었다. 짜장소스가 너무 많이 남아서 나중에는 짜장밥으로도 먹을 수 있어서 일석이조였다.

처음 만들어본 짜장면


+ 떡볶이는 사랑이지~

어묵도 있고 떡도 팔겠다 수순은 자연스레 떡볶이다. 아시안 마트에 시판되는 떡볶이 소스가 있었지만 고추장과 고춧가루가 있으니 굳이 시판 소스를 살 이유가 없었다. 계란도 삶아 넣고 나니 우리끼리 떡볶이 가게 차려도 되겠다며 하하 호호.

군침이 절로 드는 떡볶이



+ 입맛 돋우는 국수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서 입맛이 떨어지기 시작하니 뭔가 색다른 음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것은 다름 아닌 국수. 면을 좋아한다는 룸메는 여름에는 무조건 비빔국수하고 했다.  아시안 마트 국수와 만능 비빔장을 팔고 있으니 여름 입맛을 책임져 준 국수다.

비빔국수와 잔치국수


+ 오이냉국, 오이소박이

거의 두 계절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몰타지만 우리나라처럼 과일도 채소도 맛있는 계절이 있었다. 몰타의 여름도 오이가 맛있어지는 계절이었다. 거의 만능이라고 과언이 아닌 새미네 양념으로 룸메가 만든 오이소박이는 딱 한국에서 먹던 그 맛 그대로였다. 오이가 맛있으니 시원한 냉국이 생각나는 건 당연지사. 어떨 때는 룸메이트가 어떨 때는 내가 오이냉국을 엄청 만들어 넣고 그냥으로도 먹기도 했고 또 때론 국수를 말아먹기도 했었다. 지금 봐도 군침 도는 밥상이다.

오이가 맛있어지는 계절에는 오이소박이와 오이냉국으로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한식

외국인들 초대해서 요리를 몇 번 했었는데 뭘 해도 실패가 없는 건 잡채와 김밥이었다. 잡채는 많이 만들어서 남아도 냉장고에 넣었다가 잡채밥으로도 먹을 수 있어서 그만이었다. 김밥은 외국인들에게 한식체험을 해보는 용도로 인기만점이었다. 밑 재료만 준비해 둔 상태로 친구들에게 말아보라고 하면 다들 그렇게 신나게 김밥을 말아댔다. 물론 맛도 좋고 영양도 만점이지 않은가.


요즘은 너무 질려서 김밥을 안 먹을 정도로 내 평생에 가장 많이 김밥을 말아봤다. 한 입 김밥, 김치 김밥, 멸치 김밥, 기본 김밥, 꼬마 김밥 등등도 모자라 여름에는 오이와 단무지만 넣고도 김밥을 말았다. 물론 내가 먹자고 만든 것이 어쩌면 더 많다. 냉장고 재료가 애매하게 남으면 그때는 무조건 김밥이었으니 말이다.

외국인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잡채와 김밥


그밖에 '전' 문화가 없는 외국인지라 호박전, 김치전, 양배추 전, 동그랑 땡 전 등등 전을 엄청 신기해하면서도 잘 먹었다. 그리고 너무 한식만 준비하면 간혹 입맛에 안 맞는 애들도 있기 때문에 약간의 표전요리라고 할 수 있는 삼겹살 배추찜 (쉬워도 너무 쉬운, 삼겹살 + 술 + 배추 + 대파가 전부다)을 곁들였다. 육류를 찜으로 잘 먹지 않는 외국인들 눈에는 굉장히 신기하게 보기도 했고 맛도 있어서 정말 잘 먹는 음식이었다.



+ 양식

그렇다고 한식만 줄곧 해 먹은 것은 아니다. 철저한 한식파인 나와 달리 사실 룸메는 양식파였다. 아침은 빵 위주로 먹는다고 했는데 내가 한식을 줄곧 먹어대니 그녀도 계속 한식을 먹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솜씨를 부리는 양식은 이랬다. 직접 커피를 내리고 샌드위치를 만들고 스테이크도 굽고... 스파게티와 샐러드에 맛있는 빵까지... 이건 다 양식파인 룸메의 솜씨다.

양식파인 룸메의 음식들


몰타에서 있으면서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음식'도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이름도 낯선 몰타지만 아쉬운 대로 있을 건 다 있는 한식 재료였다. 어떻게 보면 몰타에 한국 어학원생이 많기도 하지만 K-food를 찾는 사람이 꼭 한국인만 한정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한국에서도 한 번도 안 해본 짜장면을 만들어 먹을 줄 상상도 못 했다.



+ 다음 이야기 : 몰타 마트 한번 털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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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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