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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Sep 26. 2023

[몰타어학연수] 멕시코 친구초대, 멕시코 아침식사 어때

몰타어학연수 제3장  #15 사람이 친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3장 인터미디어트 몰타  

#15 멕시코 음식,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 



"너 'R' 발음이 이상해!" 

까를로스(Carlos)가 말했다. 몰타에 온 지 4개월, 그 누구도 내 발음을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인터미디어트 수업 첫 시간에 나와 파트너가 된 까를로스는 쉬는 시간에 내가 '를로'라고 한국어로 발음하자 'No~'라고 하면서 자기 이름의 'r'과 'l' 발음이 그게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저렇게 내가 다른 식으로 신경 써서 여러 번 발음을 해도 그때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라고 했다. 답답했는지 급기야는 '를'과 '로'에서 각각의 'ㄹ'이 어떻게 다른지, 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주 진지하게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내 이름 '해경'의 영어 발음이 어려워 대충 애영, 애용, 해영 등으로 발음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외국인 중 내 이름을 정확하게 '해경'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런던 어학원 선생님들 외에 일반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나의 발음이 이상하다고 누구도 지적해주지 않았고 나름은 의사소통이 되고 있었기에 그렇게 이상한 줄 모르고 있었다. 다만, 십 년 전 산티아고를 걸을 때 독일인 친구였던 데이비드가 내가 'Walk'라고 했는데 그가 'Work'로 알아들어서 해프닝이 있었기에 내 발음이 'r'과 'l'이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완벽하게 불러주기 전에 꽃이 될 수 없듯 이참에 나의 틀린 발음을 완전히 고쳐놓겠다는 일념으로 까를로스는 작정을 하고 옆에 딱 붙어 앉아 계속 발음 연습을 시킨다. 졸지에 쉬는 시간 15분 내내 발음 수업이다. 속으로 '이제 그만 좀 하지' 싶었지만 카를로스의 진지한 태도에 그만하고 싶다고 말도 못 하고 꾸역꾸역 따라 하고 있었다.


  "'ㄹ'을 할 때 윗니 아랫니를 살짝 붙이고 혀를 떨면서 굴리라고.... 자, 날 잘 보고 따라 해봐. " 하면서 시범을 보이는데 내가 그만 폭소가 터졌다. 그게 'R' 발음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까를로스가 하도 진지하게 'R', 'l' 이러고 있으니 옆에 있던 이자벨이 까를로스에게 "해경이 힘드니까 그만해"라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자벨이 고마우면서도 '둘이 친한가? 이자벨 과감하네.' 싶었다. 내 발음을 완전히 고쳐놓겠다고 기세등등했던 까를로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 분위기 뭐지?.


"엥? 둘이 부부였어?"  

요즘 우리나라도 은퇴 후 부부 함께 어학연수를 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인데 40대 중반의 부부가 함께 어학연수를 오리라곤 생각도 못했기에 대단하다 싶었다. 


몰타에서 어학연수는 2주밖에 남지 않았기에 공부는 런던 가서 제대로 하고 몰타에서 인터미디어트 수업은 출석이나 채우자 하는 마음이 컸다. 당연히 친구를 사귀는 것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2주 동안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지만 런던을 앞두고 있었기에 친구를 사귀고 말고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름 정도 알고 대화 몇 마디 나누면 그걸로 충분하다 싶었다. 

2주간 함께 보냈던 인터미디어트 친구들 


그랬는데 첫날부터 카를로스, 이자벨과는 발음 하나로 갑자기 친해졌다. 거기다 또 한 명 브라질에서 온 디에고까지 친해졌다. 디에고는 아마존의 기후변화를 연구하고 있는데 덩치에 비해 절대로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었다. 가끔 내가 장난을 치면 어찌나 잘 속는지, 속아주는 건지 암튼 순수 그 자체였다. 늘 사람 좋은 미소를 장착한 그는 귀여운 면이 있었다. 부인에게 사랑받고 살겠다고 했더니 덩치에 안 맞게 귀까지 빨개지는 통에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막 레벨 업이 되어 인터미디어트 수업이 다소 버거운 나와 달리 까를로스와 디에고에게는 이 수업이 쉬운 편이라고 했다. 2주 간의 수업 동안 이들 셋과 돌아가며 파트너를 했고 덕분에 수업시간에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어학연수를 하게 되니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과 내가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분야에 대해서 조금이나 접할 수 있게 되는 점은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들 덕분에 내가 가보지 못한 나라와 접할 수 없는 분야의 이야기는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했다. 

EC 어학원 뒤편에 있는 세인트 조지베이 
이자벨, 까를로스, 히메나, 디에고. 다들 그리운 사람들 


+ '한국'으로 대동단결 

며칠 남지 않은 어학원에 소극적이었던 나와 달리 적극적으로 내게 다가와준 그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친하게 된 건 '한국'이라는 접점이 있어서란 걸 나중에 깨달았다. 까를로스와 이자벨의 딸은 에든버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제일 친한 친구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딸이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라 한국사람에게도 원체 호감이 있는 편이었다. 딸 친구가 예절도 바르고 스마트해 종종 집으로 초대를 하기도 했다며 한국인은 다 그런 것 같다며 나를 더 특별하게 대해줘서 오히려 내가 고마웠다. 


마침 딸이 방학이라 몰타로 온다며 딸도 소개해줄 겸 같이 저녁을 먹고 싶다고 했다. 내 딸도 아닌데 히메나가 오는 날이 은근히 기다려졌다. 히메나가 온 날 우리는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디에고는 한식 중에서 특히 비빔밥을 좋아한다고 했다. 브라질에서 한식은 가격이 비싼 편인에도 굉장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하길래 몰타에 한식파는 곳이 있다고 하니 눈이 반짝반짝... 브라질 음식이 아니라 한국 음식이 더 먹고 싶다는 외국인은 처음 봤다. 나보고 계속 한식은 언제 먹으러 갈거냐며 계속 졸라대니 또 먹으러 가야 하지 않겠니. 실 가는데 바늘 간다고 당연히 까를로스도 합류했고 이자벨은 일이 있다고 빠졌다. 이미 한식 맛을 알아버린 디에고의 능숙한 젓가락질에 감탄하고 까를로스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쳤더니 곧잘 따라 한다. 해물떡볶이, 비빔밥, 서울도시락을 주문해서 골고루 한식을 맛보게 해 주니 디에고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 번진다. 


한국은 점심 먹고 바로 헤어지지 않고 밥 먹고 무조건 커피를 마시러 간다고 했다. 그랬더니 


"오~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럼 오늘은 한국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똑같이 하자"

둘이서 아주 신났다.  뭐 이런 한국 예찬론자들이 다 있나 싶으면서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근처 파스쿠찌로 갔다. 몰타에 있는 파스쿠찌가 한국에도 있다고 하니 엄청 신기해한다. 커피를 마주 놓고 한국, 브라질, 멕시코 각 나라의 이야기, 문화, 각자의 생활, 에든버러와 런던 이야기까지 맛있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산적 같은 친구들과 한식으로 대동단결 ㅎㅎ


+ 멕시코 음식 먹어봤어?  

내가 몰타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불러 또 김밥을 말았다. 이자벨이 초대를 해줘서 고맙다며 내가 몰타를 떠나기 전 멕시코 아침밥을 차려주겠다고 집으로 초대를 했다. 까를로스가 몰타에서도 차를 몰고 다녔기에 집이 거리가 좀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웬걸 우리 집 뒷골목에 숙소가 있는 것이 아닌가. 뒤늦게 이웃주민인 걸 알고 서로 안타까워했다. 학교에서도 맨날 붙어있고 수업이 끝나고도 맨날 붙어 있는데 서로 집이 어디인지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게 안타까워 할인가 싶어 웃음이 터졌다. 

까를로스 테라스에서는 보이는 풍경 


멕시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나를 위해 이자벨이 멕시코 가정에서 평범하게 먹는 아침식사를 해주겠다고 했다


원래는 멕시코 저녁 정찬을 근사하게 준비하겠다고 했는데 런던행을 앞두고 이것저것 할 게 많다 보니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서 떠나기 하루 전 아침식사로 겨우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이자벨은 요리를 하느라 분주하다. 도와주려고 해도 워낙 낯선 음식들이라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주방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없는 게 도와주는 거다 싶어 거실로 다시 나왔다. 마침 디에고가 도착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식사 기다리면서 까를로스와 디에고는 맥주 홀짝홀짝... 낮술도 아니고 아침부터 술이라니- 난 괜찮아..

마지막 날까지 우리는 함께 - 


전날 저녁에 다 같이 발레타에서 MTV 공연을 보면서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기에 몇 시간 만에 퉁퉁 부은 얼굴로 다시 만나 멕시코 음식을 먹자니 갑자기 웃긴 생각이 들었다. 이자벨이 준비한 음식은 타코(taco)와 엔칠라다(enchiladas)에 후식으로 커피, 아이스크림, 과일을 준비했다. 


외국에서 아침은 다소 간단하게 먹는 줄 알았는데 아침부터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 정성이 가득한 음식이라 준비하느라 너무 고생 많았다고 하니 이자벨인 아침에 원래 이렇게 먹기 때문에 크게 손이 가는 음식은 아니라고 했다. 멕시코 저녁 정찬이면 네가 놀랄 만한 멕시코 음식을 준비해 줄 수 있다며 우리의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계속 아쉬워했다.  


한식파인 나로서는 해장이 하고 싶었는데 술 마신 다음 날 아침에 타코를 먹으려니 아무리 맛있어서도 타코가 잘 안 넘어갔다. 게다가 타코 하나만으로도 양이 충분한 나로서는 억지로 2개나 먹었는데 메인 메뉴에 해당하는 엔칠라다가 또 있다고 해서 그저 웃었다. 엔칠라다는 처음 먹어본 멕시코 음식인데 '~칠리소스 뿌린' 음식이라는 이름처럼 살짝 매콤한 소스를 곁들인다. 매운 걸 잘 못 먹는다 걸 아는 이자벨이 내건 특별히 덜 맵게 만들었다고 했다. 


오렌지 주스 한 모음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느긋하게 한 입 두 입 먹기 시작하니 배는 부른데도 음식이 들어가는 게 신기했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간 건 마찬가지인데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해 준 이자벨의 정성이 너무 고마워 배가 부른데도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다 먹었다. 밥 배 따로 후식 배 따로니 커피와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이젠 물도 못 마실 정도가 돼서야 숟가락을 내려놨다. 

다양한 토핑을 곁들여서 먹는 타코
엔칠라다 


인터미디어트의 수업은 고작 2주였는데 중간에 갑자기 로마를 갔다 오게 되면서 실제로 이들과 보낸 시간은 열 흘이 전부다.  틈이 날 때마다 같이 공연도 보러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누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들과 함께 몰타에서 굉장히 긴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이때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 단 2주 만에 이렇게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인간관계가 아무리 외국이어도 정말 특별한 케이스라는 걸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알게 됐다. 추후 런던 어학연수를 이야기할 때 몰타와 어떻게 다른지 다시 설명하겠다. 어쨌거나 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 덕분에 몰타에서 남은 2주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내가 행운이었던 셈. 

넥밴드 선풍기를 내내 헤드셋으로 알았다는 까를로스, 한국은 신박하네.  


까를로스와 이자벨은 몰타에서 어학연수 끝나면 원래 살던 에든버러로 간다고 했다. 나도 런던에 있으니 에든버러에서 만나자고 했었지만 결국 공부에 치어서 에든버러를 가지는 못했다. 언젠가 우리는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 다음 이야기 : 몰타의 영광이 이곳에, 쓰리시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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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과 2장은 브런치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https://brunch.co.kr/brunchbook/life-of-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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