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으로 출국 일주일을 앞두고 어학원까지 결석한 채 로마 여행을 간다는 나를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나도 갑자기 이 상황에 로마 여행을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게 다 그 넘의 몰타 비자 때문이다.
룸메는 딸의 마지막 대학교 방학을 맞이해 딸에게 멋진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고 몰타까지 불렀고 모든 예약을 다 마친 상황에서 설레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로마여행이었다. 여행 날짜는 다가오는데 이미 나왔어야 할 비자가 한 달이 넘어가도록 발급이 되지 않자 룸메는 미치기 직전이었다. 룸메의 로마 여행 이틀을 앞두고 일주일이나 늦게 비자를 신청한 내 비자가 먼저 발급됐다.
나 역시 런던 출국까지 비자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던 상황이었지만 내 비자가 먼저 나온 상황이 편하지가 않았다. 룸메는 해외여행 경험이 전혀 없는 딸을 혼자 로마로 보낼 수도 없어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여행을 취소하기에는 대부분 환불이 되지 않으니 진퇴양난인 상황인데 비자는 안 나오니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미혼인 내가 대학생을 둔 엄마의 마음을 알 수는 없었지만 룸메의 마음고생이 너무 안쓰러워 옆에서 보고 있자니 내가 다 애간장이 녹을 지경이었다.
결국, "딸내미 데리고 내가 로마 갔다 올게"가 됐다.사실, 출국 일주일 밖에 안 남은 상황이니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10000% 감정형인 나의 오지랖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된 거 20년도 전에 다녀온 로마가 어땠는지 기억도 없는데 이참에 자료나 업데이트하자 싶었다. 룸메이트가 짜 놓은 일정대로 그녀의 딸과 로마를 처음 가는 사람들이 가는 코스로 다니는 여행은 나름 괜찮았다.
그동안 다양한 경험과 인문학적 지식이 보태지니 로마가 색다르게 보였다. 극성수기임에도 코로나 여파로 여행자가 많은 편은 아니어서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 로마 유명 관광지는 편하게 관람이 가능했다. 어느 도시를 가던 미술관은 꼭 가는데 보르게세 미술관이 매진이라 대신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을 갔는데 카라바조의 그림이 있어서 좋았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만큼 한산했던 로마
로마, 바티칸, 몰타(성요한기사단)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곳까지 찾아다니며 로마 여행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여행 3일 차 정오에 룸메가 비자를 받았다는 희소식이 들려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젠 내가 몰타로 돌아갈 일이 천리만리였다.
몰타에서 런던으로 올 때는 자리가 있었고 룸메가 고맙다고 비행기표를 예매를 해 주었다. 설마 내가 돌아갈 비행기 표 한 자리는 없겠어라는 마음으로 겁 없이 로마로 왔는데 진짜 비행기표가 없을 줄이야. 극성수기인 데다가 몰타 MTV로 인해 이미 몰타행 비행기는 전부 매진되고 비행기표 자체가 없었던 것.
반나절 내내 온갖 사이트를 다 뒤지는데도 비행기표가 구해지지 않았고 안 되면 공항에서 노숙하면서 대기 타는 수밖에 없겠다 싶어 무조건 공항으로 뛰었다. 결국 대기 끝에 한화로 약 55만 원을 주고 한 자리 남은 일반 좌석이라도 사겠다는 나를 보는 라이언에어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가 항공의 특성당 당일 예애는 가격이 폭등한다. 예매를 잘만하면 5만 원에 몰타-로마가 가능하고 아무리 비싸도 10만 원이면 충분한데 오지랖의 대가로 열 배 넘는 가격을 치르자니 속이 쓰라렸지만 이미 벌어진 일 어쩌랴.
굳이 비싼 돈 내며 초성수기에 갈 필요가 없는 로마였고 지금 내 상황에 로마여행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결정이었다. 아무리 룸메의 상황이 안 좋았어도 내가 굳이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인생수업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덕분에 로마는 내게 잊을 수 없는 여행지가 됐다. 엘리멘터리 수업 때 만났던 친구 마리아가 로만에 살고 있는데 로마에 왔으면서도 자신에게 연락도 안 했다고 너무 섭섭해했다. 11월에 피렌체 여행을 가면서 마리아 얼굴도 볼 겸 겸사겸사 로마를 또 가게 됐다. 일 년 사이에 로마를 두 번이나 가다니. 인생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추후 로마, 피렌체, 터키일주, 스페인 여행지는 추후 별도의 여행기를 작성할 예정이다.
건축을 공부한 뒤에 만나게 된 판테온은 감동 그 자체
열쇠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는 바티칸. 이 땅은 성요한 기사단의 부지다.
카라바조를 만날 수 있었던 팜필리 미술관
+ 마지막 친구 초대
로마에 이어 피렌체까지 다녀왔다면 친구들과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질 뻔했다. 일주일 있다가 런던을 간다는 애가 갑자기 학원 결석하고 로마를 갔다 오니 친구들이 다 무슨 일이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시 몰타로 돌아오니 격하게 반겨줘서 고마울 뿐이었고.
몰타에서 마지막이니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부르고 싶은 애들은 많았으나 집에 앉을 수 있는 의자가 한정적이고 무엇보다 음식을 혼자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 정말 친한 애들만 부를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다른 친구들은 절대 데려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도 나도 나에게 묻지도 않고 친구를 데려오기 십중팔구기 때문이었다.
몰타에 처음 왔을 때부터 친분을 쌓은 친구들을 제외하고 카를로스와 이자벨, 그리고 디에고는 인터미디어트에서 처음 만난 친구다.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열흘 남짓인데 3개월을 보낸 친구들 못지않게 급속도로 친해졌다. 이후 런던에서도 새로운 반에서 2주, 12월 몰타에서 2주간 공부를 했었는데 카를로스와 이자벨, 디에고처럼 끈끈한 인간관계 형성은 하지 못했다. 고작 2주 동안의 시간에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친해질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카를로스와는 여전히 안부를 주고받고 있는데 며칠 전 뜬금없이 카를로스가 자신의 집 구글 주소를 보내더니 언제 놀러 올 거냐고 묻는다. 카를로스의 농담은 언제나 나를 유쾌하게 만든단 말이지.
너무나도 그리운 나의 친구들
콜롬비아, 멕시코, 칠레, 파나마, 브라질 국적은 전부 다른데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고 브라질의 경우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데 예전부터 궁금하던 걸 물었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가 인접 언어이니 각자의 언어로 대화가 가능할지 롤 플레이를 해보라고 했다. 이게 나만 궁금한 것이었는지 친구들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다는 얼굴로 내 제안을 아주 흥미로워했다.
"자 레디~ 큐!!!!"
다들 눈을 반짝반짝하며 무슨 말을 하나 초집중... 모드가 너무 웃겼다.
보다시피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서로 대화가 가능했다.!!!!!!!
나는 무슨 대화를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친구들 표정으로 보아 서로는 다 알아듣는 눈치였고 자기들도 신기해하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 사이에서도 단어나 발음은 조금씩 다른 것도 있다고 했다. 아마도 방언처럼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희한한 걸 시키는 나나, 시킨다고 그걸 또 넙죽하는 카를로스와 디에고다. 이러니 우리가 케미가 좋았을 수밖에.
스페인어와 포르투칼어로 의사소통 중
카를로스와 이자벨은 집을 초대해 준 게 고마웠다며 아침 식사에 나와 디에고를 초대를 해줬다. 내가 너무 시간이 없어 저녁 약속을 도저히 잡을 수 없자 대신 아침이라도 멕시코 음식을 꼭 먹여주고 싶다고 했다.
몰타를 떠나기는 해도 12월에 다시 올 예정이고 제일 친한 친구인 이본을 비롯해 몇몇 친구들이 그때까지 남아 있을 예정이라 헤어진다는 느낌은 덜했다. 금요일 모든 어학원 수업이 끝나고 난 뒤 친구들이 저녁에 뭐 할 거냐고 묻는다. 로마를 갔다 온 터라 이것저것 마무리해야 할 것도 많고 짐도 싸야 하니 별 약속을 잡지 않고 있었다. 짐은 다음에 싸라며 12월에 보더라도 간단하게 페어웰을 해야 한다고 저녁에 서프사이드로 나를 불러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인 어학연수생들과는 페어웰을 하지 못했다. 비자가 다들 늦게 나온 통에 미뤄놓은 여행을 간 사람도 있었고 나도 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정신없이 바빴다. 나름 친하게 생각했던 동생들이라 같이 밥이라도 한 끼 하고 싶었는데 서운한 마음이 꽤 컸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사이에서 힘차게 잔을 부딪친다. 낮에는 뜨거운데 밤이 되니 견딜만한 7월 중순의 몰타다. 12월에 다시 오면 몰타가 어떨지 미리 궁금했다. 몰타를 떠난다는 게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조금 멜랑꼴리 해졌다. 헤어짐이 익숙하지 않은 내가 친구들보다 먼저 떠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12월에 볼 거지만 간단하게라도 페어웰을 해야 한다며 굳이 나를 불러냈다.
+ 성요한 대성당에서 미사
성요한 대성당에서 미사를 한번 봐야지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결국 몰타에서 마지막 주 일요일에서야 미사를 보러 갔다. 관광객으로 성당을 찾았을 때와 미사를 위해 성당을 찾으니 기분이 완전히 달랐다. 성당 안에 울려 퍼지는 성가와 음악이 마음을 차분하게 달래준다.
늦은 나이에 공부하느라 애쓴다며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고 얼마간의 돈을 보낸 지인에게 몰타에서 어떤 것을 선물을 받고 싶냐고 했더니 성요한대성당 신부님이 축성을 해준 묵주를 받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 그건 영어로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싶어 급하게 어휘를 익혔다. 미사 후에 신부님을 찾아가서 묵주 축성을 부탁드렸다. 신부님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고선 축성을 하고 이런저런 덕담을 내게 해주셨다. 지인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해봤다.
몰타를 떠나는 마지막 주에 급하게 본 미사.
+ 학원 마지막날
불과 2주밖에 수업을 하지 않았는데도 두 달을 함께 보낸 것처럼 친해진 인터미디어트 친구들과 선생님이다. 마지막 수업 후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EC 몰타의 수업을 마무리했다. 몰타-런던 어학원 스케줄 조절이 꼬이면서 수료증은 월요일에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월요일 어학원에 가서 수료증을 받고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몰타에 왔을 때는 뭔가 물어보기도 힘들었는데 이젠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구나 싶었다. 12월에 다시 올 예정이니 스태프들도 12월에 다시 만나자며 쿨하게 인사를 건넨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어학원 수료증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EC Malta 앞에서 기념사진 찍는 건 EC Malta만의 세리모니다. '자~~ 사진 찍자'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보는 애들마다 한 명씩 추가되니 무한 반복이다.
"너희들이 있어 정말 행복한 몰타였다."
"Keep in Touch!!!"
인터미디어트 친구들
스탭들과도 안녕~
EC 몰타를 배경으로 수료증과 함께 인증숏은 필수
+ 마지막 일몰
내일이면 몰타를 떠나야 한다. 트레킹을 함께 다녔던 이본이 마지막 일몰을 제안했다. 아직 짐은 싸지도 못하고 있는데 일몰을 포기할 순 없었다. 이본이 정한 마지막 일몰 장소는 파라다이스베이( Paradise Bay Beach)였다. 파라다이스베이는 고조섬을 가기 위해 배를 타야 하는 치케와 항구의 반대편에 있는 해변이다. 늘 그렇듯 라틴아메리카 친구들이 약속 시간에 제때 오지 않아서 출발이 늦었다. 파라다이스베이로 넘어가는 언덕에 서니 이미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디에서건 일몰이 잘 보이니 굳이 파라다이스베이로 가기보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하루종일 뜨겁게 타오르던 태양이 슬며시 힘을 빼니 일몰이 시작된다. 친구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몰과 마주한다. 평소 같았다면 일몰에 집중했을 테지만 오늘따라 친구들의 등에 시선이 가 닿는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혼자였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몰타에서 다양한 경험들, 여행의 완성은 결국 '사람'이다.
이들이 함께 했기에 몰타가 더욱 충만했고 행복할 수 있었다.
이미 해는 넘어갔고 바다와 하늘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인다.
누구 하나 '그만 돌아가자'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몰타에서 마지막 보는 일몰이니 '이별'을 앞두고 모든 감정이 이입되기 마련이지만 나도, 친구들도 담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