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어학연수 제3장 #27 고조섬(5) 시타델 박물관 투어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27 고조섬(5) 더 시타델(The Citadel) 박물관 도장 깨기
고조 시타델에서 몰타 헤리티지 멀티패스로 관람할 수 있는 곳은 총 4곳이 있다. 고조 고고학 박물관(Gozo Museum of Archaeology), 고조 자연박물관(Gozo Nature Museum), 고조 카스텔로 역사적인 집(Gran Catello Historic House 고조민속박물관), 고조 옛날감옥(The Old Prison)이다. 단언컨대, 고조 시타델을 가본 사람은 있어도 시타델 안에 있는 박물관은 다 가본 사람은 나 말고는 없을 것이다. 고조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타피누 성당과 시타델 정도는 방문하지만 시타델에서 고조 대성당을 비롯해 따로 입장료를 내야 하는 곳은 어학연수생들 혹은 한국 관광객들은 거의 방문하지 않는다.
나 역시 솔직히 말하면 헤리티지 멀티패스가 아니었다면 고조 대성당은 몰라도 다른 곳은 굳이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방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몰타도 작은데 고조는 1/4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곳이니 박물관이라고 해도 사실 크게 특별한 것은 없어 입장료를 내고 관람을 했다면 돈이 아까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해도 보고 볼 것이 없다는 것과 아예 보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차이다. 박물관을 다 보고 나니 성채만 돌아왔을 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낄 수 있었고 헤티티지 멀티패스 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던 박물관 투어였다.
시타델의 정문 계단을 올라서자마자 갑자기 수욱-하고 건물 하나가 가로막고 서 있다. 고조 대성당으로 정식이름은 성모승천 대성당(Cathedral of the Assumtion)이다. 시타델 요새의 가장 핵심적인 건물인 고조 대성당은 로마가 지배하던 시절 이 일대는 아크로폴리스였고 그중 가장 높은 위치에 주노(Juno) 신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중세에 이르러 성요한 기사단이 지배하면서 주노신전이 있던 자리에 성모 성천 대성당이 지어졌다.
고조 대성당의 경우 몰타 헤리티지에서 관리를 하는 곳이 아니라서 멀티패스와는 상관없이 입장료(3유로)를 내야 하는 곳이다. 이미 몰타에서 성당은 넘치도록 봤기 때문에 고조에서까지 성당을 봐야 하나 싶어 처음에는 망설였다. 하지만, 시타델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 바로 고조 대성당이니 안 보고 가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입장료에는 성당 관람과 함께 성당 옆 부속건물의 박물관 관람도 가능했다. 남성 관광객이 민소매 옷이라 그 복장으로 출입이 되지 않는다며 민소매를 가릴 수 있는 흰 천을 따로 팔고 있었다. 혹, 성당 입장을 할 생각이라면 짧은 민소매, 슬리퍼 등은 입장이 안 되거나 가릴 수 있는 천을 따로 구매하니 복장에 신경을 써야 한다.
1697년에서 1711년 사이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대성당의 파사드가 너무 심플했기에 분명히 성당 안은 매우 화려하게 장식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온통 금색으로 치장을 했고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준 제단이 눈에 확 띄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들어서자마자 시선은 천장에 꽂혀 내려올 줄 몰랐다.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천장화는 성당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화려했다. 찬찬히 성당 안을 둘러보니 고조를 대표하는 성당답게 엄청난 크기의 샹들리에를 비롯해 작은 채플들도 여러 가지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러다 시선은 다시 화려한 천장으로 자연스레 향했다. 어랏! 중앙 제단 돔 안으로 그려진 그림이, 그림이 정말이지 너무 특이했다. 주로 성서의 내용을 그려 넣는 천정화와 달리 건물이라 특이했다. 그게 아니어도 색깔이 너무 다르니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도대체 뭘까?
고조 대성당의 유명한 '트롱프뢰유 돔'이다. 고조 대성당은 돔이 없는 성당이라는 건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라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남들 다 아는 걸 혼자 뒤늦게 발견하고선 괜스레 유레카를 외치는 격이었지만 혼자 입틀막으로 사실 좀 놀랬다.
프랑스어로 '눈을 속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트롱프뢰유 돔은 착시현상을 가리키는 미술용어다. 2차원의 평면에 그린 그림을 착시현상에 의해 3차원의 공간으로 보이도록 하는 회화기법이다. 말하자면 실제로는 평면이지만 공간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일종의 눈속임이다.
그렇다면 고조를 대표하는 성당에 왜 이런 착시현상의 그림을 그렸을까? 그건 바로 '돈' 때문이었다. 성당이 처음 지어질 당시에는 당연히 돔을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해 성당의 돔을 지을 수 없게 되자 시칠리아 예술가 안토니오 피피(Antonio Pippi)에게 실물과 같은 그림을 그려 달라고 의뢰를 하게 된다. 1739년 실제 돔보다 더 실제 같은 돔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몰타에는 대략 360여 개나 되는 성당이 있지만 돔 없이 프롱프뢰유 돔으로 그린 것은 고조 대성당이 유일하다.
휴- 고작 3유로인데 안 보고 갔으면 무척 후회했을 뻔했다.
고조 대성당을 다 보고 난 뒤 부속건물인 박물관으로 향했다. 별 기대 없이 들어섰는데 발레타 성요한 대성당보다 훨씬 더 많은 보물들을 볼 수 있어 깜짝 놀랐다. 대주교들이 사용했던 물품들, 성당의 성물, 성화까지 볼거리는 여기에 다 모아 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고조 대성당의 천장화를 그린 화가와 어떤 내용의 그림인지 설명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종교화의 경우 설명이 없으면 까막눈이 되기 마련인지라 설명을 읽어다 보니 궁금한 것도 해결하고 자연스럽게 영어 리딩 실력도 늘리고 일석이조였다.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을 나서려고 하는데 출구 쪽에 연대표가 눈을 사로잡는다. 고조 성당의 역사를 시기별로 나타낸 단순한 연대기인 줄 알았는데 고조의 역사, 대성당의 역사, 세계사의 역사를 시기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이 연대표 만으로도 고조역사, 종교사, 세계사가 한눈에 파악기 가능했다.
오호 -몰타 2유로 동전의 몰타 기사단 문양은 몰타가 EU에 가입한 2008년 1월 1일부터 공식 발행한 것이었구나. 몰타의 여러 박물관을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몰타가 어떤 것을 자랑스러워하는지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몰타공성전과 몰타의 EU가입이다. 역시 이곳에서도 그 부분은 빠지지 않는구나.
2019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걸 보니 왜 이리 씁쓸한지 모르겠다.
정면을 바라보면 고조 대성당이 있고 왼쪽 건물이 고조 법원인데 법원과 연결된 부속건물 중 하나가 옛날에 감옥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몰타 쓰리시티즈 성 안젤로 요새에도 감옥이 있지만 개방을 하고 있지 않아 볼 수 없었기에 궁금했는데 감옥은 어디나 다 비슷했다. 어떤 식으로 고문했는지 그림이 있는데 우리나라와 비슷해 새로울 것은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몰타는 고대부터 유배지였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지중해 한가운데 덩그러니 척박한 섬이니 어쩌면 유배지로 최적의 장소였던 셈이랄 수밖에. 설명에는 '비잔틴 황제 헤라클리우스는 그의 아들 아틀라리히(Atlarich)와 그의 조카 테오도루스(Theodorus)가 자신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의 코와 손을 잘라 가우도멜리테(고조-말타)로 추방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주지사는 황제의 지시에 따라 그들의 발 중 하나를 절단했습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내용도 있었다.
성요한기사단 시절에는 고조는 살인을 저지른 난폭한 기사들이나 악명 높은 기사들의 유배지로 사용되었는데 죄수의 이름 중 눈에 번쩍 띄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몰타의 수도 발레트를 만든 장 파리조 드 라 발레트(Jean Parisot de La Valette)다. 그는 몰타대공성전 당시 성요한의 그랜드마스터로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도대체 무슨 연유로 감옥에 갇혔나 싶었다. 1538년에 평신도를 공격한 혐의로 고조 감옥에 4개월 동안 투옥된 것이었다. 그 덕분에 발레트가 투옥됐던 감옥임을 홍보하고 있으니 죽은 발레트가 좀 억울하겠다.
고조 감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기저기 벽면에 새긴 낙서였다. 몰타를 대표하는 암석인 라임스톤은 뾰족한 도구로 쉽게 긁어낼 수 있어 다양한 종류의 낙서가 남겨졌다. 배 모양, 손모양, 십자가, 이름, 날짜 등을 비롯해 온갖 종류의 낙서가 벽면을 빼곡하게 덮고 있었다. 여러 개의 사선이 규칙적으로 있는 것은 짐작컨대 자신이 수감된 날짜를 하루하루 표시한 건 아닐까 싶었다.
즈간티아라는 걸출한 선사시대 유적이 있는 고조지만 출토유물은 대부분 몰타 고고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미 몰타 고고학박물관을 다녀왔기 때문에 복습하는 기분으로 고조 고고학박물관을 찾았다. 성채로 올라가는 골목의 뒤편에 박물관이 있는데 이 일대는 한때 본다이 가문(Casa Bondi)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인근의 그란 카스텔로(Gran Castello)와 함께 다양한 저택들이 있는 곳이었다. 입구에 화려하게 치장한 석조 발코니에 대한 장황한 안내판이 있는 걸로 보아 집주인이 상당한 재력가였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설명에는 부유한 목사가 살았는데 암살되었고 본다이 가문이 인수하고... 등등 복잡한데 결론은 19세기 후반에 버려진 채로 남겨 있었고 워낙 부유했던 저택이라 지붕 슬라브와 목재, 기둥 등이 약탈돼 라바트의 새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됐다고 한다.
이후 1937년 몰타 제도 부지사인 해리 루크(Harry Luke) 경이 전국적으로 문화유산 복구 캠페인을 벌이면서 이 집도 복구에 들어갔고 1960년 5월 일반 저택이었던 카사 본디(Casa Bondì)가 고조 최초의 공공 박물관인 고고학 박물관으로 개관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실제로 2층까지 실내계단으로 연결된 박물관은 이런저런 설명이 없어도 상당한 재력가가 살았던 곳이겠구나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다. 이 집이 고조 최초의 공공 박물관으로 선택된 데는 중세 고조의 저택에 대한 건축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 한몫했겠다 싶었다.
박물관은 선사시대, 고전 시대, 중세 및 초기 근대 시대의 세 가지 주요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가장 일 순위는 즈간티아 유적이었다. 하지만 주요 유물은 몰타 고고학 박물관에 있기에 크게 볼거리는 없었다. 뜻밖의 수확은 고조와 코미노 등 여러 유적지에서 발견된 페니키아, 포엔. 로마 유적들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로마의 전설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로몰루스(Romolus)와 레무스(Remus)의 대리 조각상과 목이 없어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인물인 줄리아 아우구스타(Julia Augusta)까지 출토된 유적들이 놀라웠다. 한때 로마인의 땅이었다는 걸 잊지 말라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몰타가 오랫동안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의외로 로마의 유물들이 별로 없는 것이 의아하다 싶었는데 어쩌면 땅 속에 상당 부분 고스란히 묻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1,500년 전의 시간 위에 지어진 건물 안에 고스란히 잠자고 있을 로마인의 시간들. 언젠가 그 시간들이 깨어날 때가 있겠지.
고조는 지질학적으로 오랜 시간의 지층이 켜켜이 쌓여 있는 섬이다. 몰타에 자연박물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고조에 자연박물관이 있는 게 특이하다 싶었다. 총 2개 층의 건물에 지질학, 광물, 인간과 동물의 진화, 해양 생물과 관련된 전시물이 있었지만 규모가 워낙 작은 데다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쓱 훑어보는 정도였다.
나중에 이 박물관에 대해 찾아보니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몰타 사람들에게 아폴로 2호의 승무원들이 달 표면에서 수집한 월장석을 기증한 것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달에서 온 파편이면 굉장히 중요한 볼거리인데 모르고 지나칠 정도였으니 눈에 띄게 안내문을 붙여 놓았으면 좋았을 걸 싶었다.
곤충학실에는 곤충, 나비, 나방 컬렉션이 소장되어 있는데 좀 귀여운 수준이었다. 몰타의 송골매 정중앙에 표본이 되어 있는데 성요한 기사단이 당시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던 몰타 섬을 지배하기 위해 매년 매 2마리를 상납했던 것을 기념해 놓은 것 같았다.
고조 자연박물관은 개인적으로는 전시보다는 박물관 맨 위층에 고조의 토종 식물로 꾸며 놓은 작은 정원이 더 좋았다. 이곳에서 보는 풍경도 좋았는데 조금 특이했다. 이 건물은 1600년대 세 개가 서로 연결된 건물인데 여관으로 사용된 곳이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피난처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고조의 주택 건축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몇 개의 건물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지어졌는지 정도만 눈으로 확인하는 정도였지만 시타델의 성채에서 모습과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
오늘 본 모든 박물관이 고조의 주택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심에 있는 건물은 카스텔로 주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고고학 박물관에서 카스텔로 주택을 특별히 빨간색 지붕으로 표시해 둔 전시물이 있기도 했다. 원래 민속박물관으로 불리던 곳은 현재는 이 집의 이름인 '카스텔로'로 바뀐 것 같았다. 이 건물은 5개의 서로 다른 건물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시타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단지로 중요성만큼이나 아주 긴 설명이 있었다. 결론은 어쨌거나 이 집도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곳이라 복원 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집 안으로 들어서니 몰타와 고조 사람들이 생활했던 전통적인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1층의 방앗간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소나 말 등이 장치에 의해 움직이도록 만든 시설이었다. 우리나라의 방앗간도 비슷한 장치들이 있긴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주식이 빵인 만큼 방앗간이라기보다는 제분기계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각 층마다 꾸며진 방은 20세기까지 몰타와 고조의 전형적인 시골 환경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포함되어 그들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박물관들의 규모가 너무 작다 보니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각 박물관마다 진짜 인내심을 가지고 본다고 해도 30분 정도면 충분했다. 고조도 몰타인데 고지탄들은 많지도 않은 유물을 가지고 굳이 고집스럽게 박물관을 만들었을까 의아했다. 그렇게 박물관을 차례로 다 돌고 나니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섬의 규모가 작아 출토된 유물도 많지 않으니 몰타 박물관에서 함께 전시를 해도 될 터인데 굳이 시타텔의 주택들을 박물관으로 활용한 이유를 말이다.
너무나도 빠른 초스피드 시대에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니 문화의 고유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 시점에 작은 섬사람 고지탄은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기억하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박물관의 규모는 너무 작았지만 문화는 상대적인 것이기에 결코 규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고조의 건축이나, 몰타인들의 생활상에 대해서는 민속촌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들의 생활상을 엿보기는 힘든데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곳들이 성채의 주택이라 시타델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 나름 의미가 있었다.
고조의 작은 박물관을 통해 문화의 다양성을 잃지 않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덕목임을 고조섬에서 다시 한번 배운다.
+ 다음 이야기 : 몰타 여름 최대 음악축제 MTV Mal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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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과 2장은 브런치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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