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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Jan 09. 2023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프롤로그  

   

프롤로그 



지난 2022년의 대부분은 외국에서 보냈다.  좀 더 구체적으로 2022년 3월 5일 몰타에 도착해 몰타와 런던에서 보내고 2022년 12월 19일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대략 10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벌써 2023년이라니 시간이 참 빠르다. 떠나기 전에는 열 달이라는 시간이 참 길었는데 열 달이 지난 지금은 마치 하루 동안에 벌어진 일 같은 이 기분이 무척이나 생경하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미리 보기 삼아 사진으로 정리해 본다.



+ 몰타 34주 + 런던 12주 어학연수

몰타와 런던에서 내가 다닌 어학원은 EC 몰타와 EC 런던이다. 몰타와 런던은 사는 지역도 달랐지만 EC라는 같은 어학원이었음에도 런던과 몰타는 공부환경도, 분위기도 많이 달랐다. 늦은 나이에 어학연수는 매일매일 전쟁과도 같은 날들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자 추억이 되었다.  

EC 몰타와 EC 런던
EC 런던에서 마지막 수업
EC 몰타의 마지막 수업
한껏 어질러진 책상은 학생 코스프레


+ 몰타가 어디예요?

우리에게 아직은 덜 알려진 나라인 몰타. 내가 몰타로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을 때 어김없이 나오는 질문은 "몰타가 어디예요?"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몰타가 어디인지는 의아할 것이다. 처음에 '몰타'라는 나라를 들었을 때 지구상에 있는 어지간한 나라는 안다고 생각했던 나 역시"몰타가 어디예요?"였다.

지중해의 한가운데 자리 하고 있는 몰타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에메랄드 바다 색이었다. 내가 몰타에 도착해 가장 처음 외운 단어가 바로 지중해, The Mediterranean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집 테라스에서 매일 보는 바다가 지중해라니!


3월에 도착해 7월 중순까지 머물렀던 몰타. 그리고 10월 말까지 런던에서 보내고 다시 한 달을 터키, 이탈리아, 스페인을 여행하고 11월 말에 몰타로 돌아와 12월 중순 한국을 떠나기까지 몰타에서 보낸 시간들이다. 통상 몰타 + 런던 두 나라를 연계연수를 하게 될 경우 몰타에서 생활을 정리하고 런던으로 떠나는 게 보통의 수순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색다르게 일정을 구성하게 된 건 추위를 너무 싫어하는 체질이라 우중충한 런던의 겨울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런던을 한 번도 가지 못한 자의 선입견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한 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몰타는 처음과 조금 달랐고 그걸 느껴 볼 수 있어서 나쁘지는 않았다.


지중해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다 보니 육지와는 기후가 참 많이 달랐고 의외의 순간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바다는 맑은 날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바닷속이 뒤집히도록 거센 파도가 몰아치기도 했고 봄에는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으로 종종 황사로 뒤덮이는 날도 있었다. 한국에서 지긋지긋한 황사를 몰타에서 만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바다가 어디 늘 푸르기만 하랴.

겨울에는 모든 것이 메말라버려 초록은 찾아보기 힘든 한국과 달리 몰타는 겨울이 되면 본격적인 푸르름을 만날 수 있다. 종종 12월에도 수영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몰타다.

12월이 되어야 푸른 들판을 만날 수 있는 몰타


12월에도 수영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몰타

몰타에 머물렀던 4개월의 시간 동안 몰타의 참 많은 곳을 다녔다. 몰타는 나라가 작아서 혹자는 2박 3일이면 충분하다고도 그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냥 관광지 포인트만 돌아보자면야 2박 3일도 괜찮지만 그렇게 몰타는 정의하기에 몰타는 긴 역사를 가진 나라다. 게다가 의외로 볼거리가 많기도 하고 여름이 되면 매일매일 축제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축제들이 많아서 소소한 재미에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곳 또한 몰타다.

 

몰타의 수도 발레타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멋진 일출과 아름다운 일몰은 언제나 가능한 곳이 바로 몰타다.
매일이 축제인 몰타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선우예권의 공연을 몰타에서 보다니!!
몰타는 뭐니뭐니 해도 여름이지!!


+ 내가 사랑한 런던

몰타에서 생활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런던으로 떠났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런던은 이상하리만치 두려웠지만 런던을 떠날 때는 그 어느 도시보다 사랑하게 된 런던이었다. 런던에서 4개월은 결코 길지 않은 날이지만 정치적으로 수상이 2번이나 바뀌었고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여왕 2세가 서거하는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여행자의 동선과는 한참 달랐던 런던 생활

공원이 많아 어디서나 앉으면 힐링이 되던 런던
고양이나 개가 아닌 청설모를 더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낭만이 가득했던 런던의 가을.

내가 런던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 그건 콜드플레이 공연과 손흥민 축구경기였고 둘 다 미션 클리어.

웸블리에서 콜드플래이 공연이라니 이게 꿈이냐!
우리나라와 너무 달랐던 축구 경기 문화.

전 세계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런던에도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한류의 열풍. 유튜브로만 보던 외국사람들이 한류 문화에 열광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었던 순간이었다.

런던 아시아 필름 페스티벌의 개막작은 이정재 감독의 헌트였고 영화 관람 후 관객과의 대화까지


런던의 이름난 관광지들도 안 가볼 수가 없잖아.

내겐 런던의 관광지라기보다는 그저 동네 마실 다니듯 다녔던 곳들.

런던에서 뮤지컬 공연은 선택이 아닌 필수!

공부가 힘에 부칠 때는 런던 근교로도 여행을 다녀왔다.


+몰타에서도 런던에서도 빠질 수 없었던 트래킹

걸어서 만나는 도시는 내가 알던 도시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흔히 말하는 '속살'을 걷는다는 것은 그 안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것이고 게다가 현지인과의 교류는 덤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질문이 쏟아지는 날에는 가끔은 스피킹과 리딩 테스트를 하는 느낌이 들어 걷는 것보다 더 지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인이라야만 갈 수 있는 곳을 가보는 즐거움은 남달랐다.


런던에서 트래킹
몰타에서 트래킹


+ 가까운 나라로 떠났던 여행들

어학연수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많은 곳을 여행할 생각은 없었다. 해외여행도 직업상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했기에 다른 나라로의 여행은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친구들이 계속 여행을 다녀오고 있으니 은근히 부럽기도 하고 해서 4월 초에는 친구 따라 이미 한번 가봤던 포르투갈(포르투)을 다녀왔다. 이어 5월에는 그림을 배웠던 교수님 일행이 볼로냐에서 수채화 페스티벌이 있어  오신다고 해서 계획에도 전혀 없던 볼로냐를 다녀왔다. 그리고 7월에는 생각지도 않게,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 로마를 잠깐 다녀왔다.


이후 런던에서 공부에 완전히 치어 머리가 방전되고 나니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했다. 이때 여행을 안 하면 또 언제 할까 싶어 이탈리아(로마, 피렌체, 볼로냐, 피사, 토스카나 지방, 이탈리아 남부), 터키(일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가급적 남들 다 가는 나라가 아닌 잘 안 가는 나라로 가고 싶었지만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머리는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서 남들 다가는, 하지만 나는 제대로 가보지 않은 나라와 도시로 정해서 한 달 남짓 여행을 다녀왔다. 이 나라와 도시를 선택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몰타로 어학연수를 결정하면서 지중해 문화권에 대해 이번에 제대로 한번 공부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여행지로 선택한 스페인은 10년 전 다녀왔던 산티아고로 정했고 가우디를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 바르셀로나로 선택했다. 10년의 간극을 두고 나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나 할까.

우기인 산티아고는 내가 원했던 날씨를 보여주지 않아 묵시아를 가 볼 수가 없어 무척이나 아쉬웠었다.

알베르게에서 만난 순례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묵시아에서 찍었던 사진을 공유해 주셨다.

산티아고
묵시아
이제 완공을 향해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 다시 몰타!

몰타를 좋아했고 원래 계획은 9월 중순 이후에 런던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세상만사 모든 것은 내가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몰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7월 중순에 떠나게 됐다. 이건 순전히 어학원 선생님의 영향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걱정을 한가득 앉고 시작했던 런던 생활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런던에 스며들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이 들었고 런던이었다. 다시 되돌아온 몰타는 이전에 내가 잘 알고 있던 몰타와는 참 많이도 달랐다. 뭔가 텅 빈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태양이 뜨거웠던 7월의 몰타와 태양이 누그러진 12월의 몰타는 눈으로 확인하는 태양의 위치가 달라진 것도 있었지만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없다는 점이 몰타를 참 쓸쓸하게 느끼게 했다. 다행히 가장 친한 친구가 여전히 머물고 있어 그나마 덜 외로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계절별로 달라지던 일


+ 다시 한국!

내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10개월이나 떠나 있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어가 일취월장할 만큼 실력이 늘어서 온 것도 아니고 여행의 여운도 크게는 없다. 심지어는 10개월의 시간이 '순삭'되어버린 것처럼 편집되어 날아간 느낌이다. 기존에 일주일 혹은 한두 달씩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을 때 느끼던 짙은 여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생경함이 때론 당황스럽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만큼 몰타와 런던에서 보낸 시간들에 미련과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그 시간을 치열하게 보냈다는 의미일 터.


모든 것이 사그라드는 이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거침없었던 젊은 날의 나와 달리 나 자신의 한계가 있다는 걸 눈으로, 몸으로 확인하게 되는 일은 참 서글펐다. 그러나 그 한계를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뛰어넘을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게 된 건 큰 소득이다.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갈 수 없는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지만, 문득 뒤돌아본 시간 속에 몰타와 런던은  '내가 진짜 아름답게 빛났던 한 때!'였음을, 치열하게 살아냈던 시간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몰타와 런던 이야기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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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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