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로 출발 전부터 짐에 치어 죽을 것만 같았다. 몰타와 런던까지 약 10개월 기간이니 계절도 봄부터 초겨울까지다. 따라서 옷만 해도 4계절 모두를 챙겨야 하니 옷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거기에다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니 마스크도 챙겨야 하고 혹시라도 외국에서는 구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 한식재료에, 생필품까지 이래저래 일단 필요한 것만 늘어놓고 보니 내가 봐도 아찔할 정도로 짐이 많았다.
늘어놓은 짐을 보더니 가족들이 한 마디씩 한다.
"이사 가니?"
필요하겠다 싶은 걸 다 꺼내놓고 보니 짐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사실 나도 연실색을 했다. 진짜 이럴 줄 몰랐다.
지금봐도 어마무시하네
+ 짐 싸기 생각보다 쉽지 않다.
2020년에 어학연수를 가려고 준비했을 때는 BA항공(영국항공)을 예매했었고 수하물은 가방 2개, 각 23kg로 총 46kg까지 허용이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터키항공으로 예매를 했고 수하물은 가방 2개, 각 20kg로 총 40kg로 허용이 됐다. 그나마 어학원을 통해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기에 수하물이 40kg까지로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10개월에 40kg로는 도저히 짐을 쌀 수가 없었다.
일반적인 여행과 살아보는 여행의 짐 싸기는 확실히 좀 달랐다. 약 두 달여 취재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품은 필요는 없었다. 예를 들자면 주방용품(밥통, 각종 식재료 등), 전기장판, 여유분의 생필품과 비상약품, 염색약 등등.
게다가 나는 연수기간에도 기록으로 글을 남길 생각이었기에 사진장비와 영상장비들은 무조건 챙겨야 했다. 또한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어반스케치를 그려볼 생각이었기에 그림재료도 챙겨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짐이 어마무시하게 양이 많은데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해서 사소한 짐들이 하나둘씩 쌓이다 보니 짐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나름 다른 사람보다 여행을 더 많이 다니는 편이라 짐 싸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던 건 큰 오산이었다. 어디 가서 여행작가라고 말하기도 창피하다 싶을 정도로 짐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10년 전 산티아고를 다녀오면서 내가 꼭 필요한 짐은 내가 지금 걸치고 있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가급적 짐을 늘이지 않겠다고 생각해 나름은 미니멀 리스트로 살아보겠다 결심했었다. 하지만 미니멀 리스트는 흉내만 내고 있을 뿐.. 이렇게 모든 짐들을 다 늘어놓고 보니 이건.. 와.. 진짜 노답이다.
몰타도 런던도 어지간한 것들은 모두 살 수 있는데 한국보다 비싸기도 하고 품질을 믿을 수 없다 생각해 이것저것 모두 챙겼는데 막상 몰타에 와서 보니 가격 차이가 크게 안 나는 것도 있고 조금 비싸더라도 몰타나 런던에서 사서 쓰면 되겠다 싶은 물건들이 상당했다. 나름 여행의 전문가라는 나도 내 발에 걸려 넘어질 줄 나도 몰랐다.
내가 봐도 너무 한심해서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었다.
생필품과 약만으로도 작은 캐리어에 한 가득.
내겐 필수품인 카메라 장비들.
어학연수기간 내내 그림은 한 장도 그리지 못했기에 애물단지에 무게만 차지했던 그림도구들
펼쳐놓은 짐들의 양과 무게가 어느 정도 되는지 몰라서 큰 가방 2개, 작은 가방 2개에 나눠 담고도 아직 다 들어가지 못한 짐들이 한가득이었다. 이 짐을 다 가지고 갈 수는 없다. 결국은 몰타의 3월이 아직은 쌀쌀한 관계로 초겨울에 입을 옷들과 당장 사용해야 할 것 위주로 챙겼고 나머지는 몰타로 택배를 받기로 했다.
어지간한 건 외국에서 사도 되는데 그게 뭐라고 다 꾸역꾸역 챙긴 걸까
최종적으로 큰 캐리어 2개는 수하물로 부치고 백팩은 매고 이케아 장바구니에 일부 짐을 넣어 들고 갔다.
캐리어의 무게는 2개 합쳐 거의 50kg에 육박해서 10kg나 초과되었다. 원래대로 하자면 터키항공은 5kg 초과당 100 달러 오버차지니 200달러 오버차지가 붙는 셈이다. 다행히 같은 날 어학연수를 떠나는 일행들(편리상 입국동기라 부른다)과 함께 단체티켓으로 예매를 했기에 단기 연수(3개월 이내)로 오는 사람들의 경우 40kg가 안 되는 사람들도 있어 그분들이 양보해 주는 덕에 추가 요금을 내지 않고 짐을 부칠 수 있었다. 이후 몰타에서 입국동기들에게 밥을 한 번 사는 것으로 퉁쳤다.
수하물로 큰 캐리어 2개에 꽉꽉 채운 나의 짐
+ 한국에서 몰타로 짐 보내기
지금은 모르겠는데 2022년 초반에는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한국에서 몰타로 우편수하물을 취급하지 않은 상태였고 동생이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동생 회사 DHL을 이용해 남은 짐을 부쳐주기로 했다. 다이소의 단프라 박스 큰 것에 여름에 필요한 짐들만 따로 포장해 두었고 한국에서 짐을 보낸 지 단 일주일 만에 어학원으로 무사히 잘 도착했다. 대략 짐은 약 25kg 정도였던 것 같다.
동생 말에 의하면 DHL의 경우 박스 안 내용물을 모두 리스트로 적어야 했다고 했다. 중요한 건 비용인데 동생 회사에서 보냈기 때문에 고객 할인 등등이 적용됐다고 해서 정확한 비용은 잘 모르겠다.
DHL로 받았던 나의 추가 짐
당장 필요한 것만 가지고 왔는데도 짐이 어마어마했다. 아마 어학연수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짐을 싸보면 느낄 것이다. 이것저것 넣다 보면 40kg 넘기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것을. 나이 들면 챙기는 것도 많아진다. 피부가 예민하니 화장품도 챙겨야 하고 비상약도 종류별로 다 챙겨야 하고 심지어는 10개월치의 염색약도 챙겨야 했다. 혹시 몰라서 여성용품도 10개월치를 챙겼는데 일단 부피가 너무 많아서 그건 뺐는데 사실 우리나라 여성용품만큼 좋은 제품은 없더라는. 그래도 부피생각하면 여성용품은 한 두어 달 치 빼곤 안 챙겨도 될듯하다.
몰타에서 첫 날 짐 정리 중
+ 몰타 우체국에서 한국으로 짐 보내기
몰타, 영국 외에도 한 달 남짓 이탈리아, 튀르키예, 스페인으로 이동했기에 어학연수 기간 내내 이동 때마다 짐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할 때도 짐이 문제였다. 다. 이미 사용했던 물건과 옷들은 쓸만했음에도 어쩔 수없이 상당 부분 버렸는데도 어학연수기간에 늘어난 짐이 상당했다. 가장 무게를 많이 차지하는 건 어학연수기간 사용했던 교재와 노트, 읽으려고 산 원서들,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던 그림도구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다시 또 수하물과의 전쟁이었고 40kg로 수하물의 양을 맞춰야 했다. 결국 꼭 가지고 가야 하는 짐은 터키항공 수하물 오버차지가 너무 비싼 관계로 몰타 우체국에서 한국으로 짐을 보내기로 했다. 몰타 우체국 택배는 우리와 다르지 않아서 우체국으로 붙일 짐을 직접 가지고 간 다음 무게만큼 돈을 지불하면 된다. 차이가 있다면 박스당 20kg을 넘어서는 안 되며 비용은 무조건 현금으로만 지불해야 하며 포장을 위한 일체의 용품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혹시라도 다시 포장할 가능성이 있다면 칼이나 가위, 포장용 박스 테이프 등은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포장용 박스가 없다면 우체국에서 판매하는 종이박스를 구매하면 된다.
몰타 우체국
부피는 많지 않아도 무게가 많이 나가는 책, 그림도구 들은 우편으로 부치기로 했는데 우체국에서 무게를 재보니 20kg 초과라서 일부 빼고 약 20kg로 맞춰서 보냈다. 가격은 176유로였다. 터키항공 수하물로 보냈다면 초과요금으로 400달러나 지불해야 되는 상황이니 우체국 택배로 보내는 것이 더 유리한 셈이었다.
몰타에서 보낸 짐은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가 있어서 좀 늦게 오리라 예상은 했지만 거의 한 달이나 걸려 한국으로 왔다. 우체국에서 짐을 부쳤다고 해도 수화물기가 배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상황이었고 몰타-한국은 직항이 없어서 이탈리아와 독일 거쳐 오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놀라운 건 인천공항에 1월 17일 16시경 도착했기에 우리나라에서 수화물 처리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궁금해서 지켜보고 있었고 하루나 이틀 정도는 걸릴 줄 알았다. 세상에 바로 다음 날 아침 9시도 안 된 시간에 인천에서 지방인 울산 집 앞으로 바로 배달이 된 것. 진짜 대한민국 최고다.
몰타우체국에서 수화물 번호로 화물추적이 가능하다.
몰타와 런던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정말 쓸데없는 짐을 너무 많이 가져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추가비용을 내면서 짐을 한국에서 부치기보다 그냥 몰타나 런던에서 사는 것이 더 쌌다. 내가 생각해도 참 어리석다 싶었지만 떠나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음이었으니 어쩌랴..
이번 생에 미니멀 리스트는 나에게 불가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한정된 자원으로 10개월을 몰타와 런던에서 살아보니 생각보다 생활하는데 많은 짐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또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그래서, 2023년에는 10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과 이번 어학연수의 경험으로으로 미니멀 리스트로 다시 한번 살아보기 위해 노력해리라 다짐한다.
+ 그래서, 몰타에 꼭 가져가야 할 짐이 무엇이냐고요?
전기밥솥, 국물을 내기 위해 필요한 것(멸치육수, 다시마), 전기장판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외국생활에서 밥은 필수고 한국사람은 밥심이라는 걸 내 몸이 증명을 해내는 사람이라 전기밥솥은 필수였다. 요즘은 1인 가구를 위해 작은 전기밥솥이 많이 나와 있으니 무게가 많이 안 나가는 거로 구매하면 된다. 혹은 어학연수를 마치고 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던 물품들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것도 눈여겨보면 좋을 듯하다.
김치양념 : 나 같은 경우는 김치를 담가 먹었기 때문에 김치양념만 따로 만들어서 가지고 갔다. 내가 했다기보다는 엄마가 김장할 때 김장양념을 따로 좀 빼주셨다. 하지만 단기로 있는 사람이라면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세미네 김치양념으로도 가능하다. (런던 오세요 마트에서는 세미네 각종 양념도 전부 팔고 있다)
몰타 아시안 마트 : 몰타 아시안 마트에는참기름, 고춧가루, 깨소금, 밀가루, 튀김가루, 각종 간장, 소금, 라면, 국수, 다시마, 미역, 김, 당면 등등 웬만한 건 대부분 다 살 수 있다. (오뚜기, CJ 등에서 취급하는 제품들은 대부분 다 있다)
런던 오세요 마트 : 런던의 경우는 지금 한국문화가 열풍이라 한국마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몰타보다 런던이 한식당도 다양하고 식재료도 다양하고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살 수 있다. 그냥 런던은 한국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무리가 없겠다. 굳이 한국 마트가 아니어도 테스코 등의 대형마트에서는 한국 라면과 고추장 등 몇 개 안 되지만 꼭 필요한 한국 음식재료들을 팔고 있었다.
다만 건어물은 어느 나라에서도 살 수 없으니 멸치 등 건어물은 챙겨 오는 걸 추천한다.
기타 : 수건, 양말 등은 확실히 우리나라가 품질이 좋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가급적 챙겨 오는 것이 좋겠다. 락액란 통의 경우 있긴 있는데 확실히 좀 비싼 편이다. 그렇다고 해도 짐 공간에 여유가 있다면 챙겨 오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여기 와서 사는 것을 추천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한국인이 있었던 곳이라면 십중팔구 반찬통을 놔두고 갔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밥심. 콩나물밥도 해먹고 김치도 담구고
몰타도 그렇고 런던도 그렇고 온돌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추위를 타는 사람이라면 전기장판을 챙겨 오는 것이 좋다. 캠핑이 발달하면서 요즘은 전기장판도 휴대용으로 부피도 작고 무게도 가벼운 전기장판이 나오니 챙겨 오면 유용하다. 전기장판의 경우도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되파는 경우도 있으니 어학연수 카페 등을 참고하면 득템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