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로 떠나기까지 여러모로 참으로 길었다. 2020년에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몰타로 떠나기 한 달 전 코로나가 터졌고 2020년 2월 27일 몰타행 비행기 탑승만을 기다리던 나는 결국 몰타행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2년 후,
드디어 2022년 3월 5일 00:40분 몰타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서 몰타까지는 직항이 없는 관계로 이탈리아, 두바이 등을 경유해야 한다. 그때는 코르나가 덜 끝난 상황이고 설상가상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지는 바람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항공은 투르키예가 최선이었다.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 11시간 40분, 이스탄불에서 몰타까지 2시간 30분이니 비행시간만 약 15시간, 긴 여정이 시작됐다.
직항이 없는 관계로 이스탄불을 경유하니 비행기 티켓은 2장을 한꺼번에 받는다.
일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10개월에 4계절을 다 지내게 되니 아무리 줄여도 짐이 어마무시했다. 2년 뒤 출국이라 짐이 좀 더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도 여전히 짐은 줄여지지 않았다. 투르키예 항공은 총 40kg 허용되는데 6kg이 초과됐는데 같은 날 출국하는 입국동기들과 그룹티켓으로 끊었기에 다행히 짐 여유분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 추가요금 없이 그대로 들고 올 수 있었다. 물론 몰타에서 입국동기들에게 밥을 샀다.
10개월 동안 있을 짐과의 전쟁이었던 어학연수
원래 계획은 3월 첫 주부터 수업시작이었으나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고민 끝에 결국 한국에서 투표를 하고 떠나기로 결정하고 학원 수업을 일주일 미루고 3월 7일부터 수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너무 늦은 시간 출국인 데다가 코로나로 인해 공항으로 배웅 나오겠다는 지인들을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후배 한 명은 늦은 나이에 어학연수를 떠나는 나를 무조건 응원하겠다며 용인에서 인천공항으로 달려왔다. 열쇠 문화가 있는 유럽이니 요긴할 거라며 귀요미 열쇠를 선물로 쥐어준다. 고마워라!!
드디어 입국장으로 들어선다. 코로나로 그동안 여행을 가지 못했던 사람들로 인해 인천공항이 무척이나 붐비는 요즘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천공항의 썰렁한 풍경이다. 여전히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는 한국인지라 인천공항은 사람하나 없었고 그나마도 오후 9시경이면 대부분의 면세점이 다 문을 닫는다. 비즈니스나 학업 등 꼭 필요한 출국이 아니면 해외 출국마저도 멈췄던 코로나 세상. 지금 다시 보니 참 생경하다.
상상이 안 될 정도로 한적해도 한적했던 코로나 시국의 인천공항
+걱정을 가득 안고 떠나는 밤
이 비행기를 타면 앞으로 10개월 뒤에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묘했다. 약 2달 정도의 취재여행을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내 생에 이렇게 긴 기간을 외국에서 보내는 건 나도 처음이라 설레면서도 약간의 두려움이 엄습한다. 말로는 내가 좋아서, 내가 꼭 가고 싶어서 가는 어학연수라고 하지만 왜 나라고 두렵지 않겠는가?
"노후를 준비해야 할 나이에 그 많은 돈을 써가며 필요도 없는 어학연수를 해서 뭐 하냐? 다 쓸데없는 짓이다." 응원보다 걱정이 더 많았던 엄마의 말이 계속 귀에서 쟁쟁거린다.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나이대인 입국동기들은 다들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그들 역시 설렘과 걱정이 함께 있음이 느껴진다. 각자의 나름대로 많은 고민이 있겠지만 늦은 나이에 떠나는 어학연수는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내 나이만큼의 걱정이 온몸을 짓누른다. 하지만 내가 살아왔던 익숙한 공간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이지 않은가.
'잘하겠지, 잘할 거야.... 아니, 나는 잘 해내야 돼.'
물론 영어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헛된 시간이란 없음으니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마음속으론 나에게 끝없이 주문을 걸었다.
밤에서 또 다른 밤을 향해 비행기는 날기 시작했다. 코로나 상황이라 기내에서 호흡기 감염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아예 마스크를 벗지 않고 식사도 안 먹는다 했지만 나는 그냥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기내식 3번을 먹고 책을 좀 읽다가 자다가 말다가 어영부영 12시간을 견디고 나니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처음 타 본 터키항공
이스탄불 도착시간이 터키시간으로 대략 06:00 정도. 몰타 랜딩타임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밖에 여유가 없다. 처음 와 본 이스탄불 공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곳이어서 환승게이트를 찾는 것부터가 대혼란이었다. 수하물로 부친 짐들은 그대로 몰타까지 가지만 기내 휴대용 짐들은 다시 짐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환승을 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 줄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새벽 6시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미어터지고 있는 이스탄불의 공항은 인천공항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다들 마스크는 쓰고 있기는 해도 오미크론으로 이미 정점을 지난 유럽과 한창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한국의 코로나 상황이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는가 싶어 믿기지가 않았다. 시간은 촉박한데 환승게이트는 가도 가도 보이질 않고 짐 수속 줄은 100m가 넘도록 긴 줄이 늘어서 있으니 비행기를 놓칠까 싶어 걱정이 되어 식은땀이 흐른다. 그렇지 않아도 일주일 전에 몰타로 떠난 사람 중 환승을 놓친 사례를 카페에서 본 지라 더 걱정이 됐다. 하지만 오랜 여행의 경험으로 눈치껏 이리저리 살피면서 줄 서기 신공을 발휘해 다행히 무사히 몰타행 비행기에 오른다.
생각보다 꽤 큰 이스탄불 국제공항
이스탄불 공항에서 만난 일출
몰타행 비행기에 오르려니 이스탄불의 일출이 시작된다.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이스탄불이라는 도시. 한때는 콘스탄티노플로 불리며 천 년의 시간을 살아낸 그 도시는 어떤 곳일지 궁금해졌다. 11월에 이스탄불 여행이 예정되어 있으니 이스탄불은 그때 좀 더 찬찬히 둘러보자 싶었다. 이스탄불이 서서히 멀어지고 비행기는 지중해 위로 직선으로 계속 날아간다. 아마 이때부터 비로소 몰타로 가는구나 조금씩 실감을 했던 것 같다.
저가항공과 달리 간단하지만 기내식이 있다.
+ 처음 만나는 몰타
이스탄불에서 2시간 30분을 날아서 드디어 몰타에 도착했다. 창가좌석에 앉은 덕분에 몰타의 풍경이 발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건물이 모두 '라임스톤'이다. 다른 나라와 확연히 다른 건물의 색. 바로 몰타를 대표하는 '라임스톤'이다. 몰타에 관련된 책을 보면 어김없이 이 '라임스톤'에 관해 다루고 있는데 그림에선 참 표현해 내기 어려운 색 중 하나가 바로 이 '라임스톤'이다. 라임스톤을 실제 눈으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참 많이도 상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냥 평 범했다고나 할까. 한때는 라임스톤으로 대부분 건물을 지었는데 지금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건축자재를 이용하고 있어 요즘 몰타에서 지어지는 건물들은 한국에서 보던 건물들과 큰 차이는 없었다.
라임스톤으로 지어진 몰타의 건물들
그 나라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바로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공항이다. 몰타의 공항은 국제공항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지방공항 정도의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정말 작은 곳이었다. 몰타라는 나라 자체가 제주도의 1/6 정도의 크기에 인구 약 40만이니 이 정도 규모의 공항이 적정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까지 약 50m 남짓 걸으니 바로 도착한다. 이때는 몰랐는데 11월에 로마를 갈 때 활주로가 다른 쪽에도 있어 그때는 버스를 타고 거의 10분 넘게 이동했던 것 같다. 역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던 몰타 공항인 셈이다. 하지만 몰타에 도착한 사람들 대부분이 느끼는 첫인상은 '뭐야, 이거 국제공항 맞아? 왜 이렇게 작아?'다. 그대도 몰타에 처음 도착하면 그렇게 느낄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던가.
몰타에 도착하고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는 없었다. 아직 입국수속이 안 끝났기 때문이다. 섬나라인 몰타는 코로나 상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꽤 까다롭게 입국심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코로나 3차 백신 증명서부터 여러 가지 제약사항이 많아 서류를 챙길 것이 많았다. 자칫하면 입국거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막 파란색의 신여권이 생긴 터라 모처럼 외국 가는 기분을 내기 위해 신여권으로 바꿔서 만들어왔는데 신여권을 처음 본 출입국 관련 직원들이 위조여권이 아닌가 싶어서 나에게 집중 질문이 쏟아졌다. 나중에 내가 너무 늦게 나오니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밖에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녹색여권 소지자는 별다른 질문 없이 바로 입국도장 콱 찍어줬다고 했다. 내 경우는 이번에 바뀐 신여권이라고 설명을 하니 출입국 직원들이 우르르 다 몰려들어서 신여권 처음 봤는데 알고 있느냐며 서로 수군대는 등 여러 해프닝이 많았다. 무조건 새것이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신여권에서 깨달을 줄은 몰랐다. 입국수속하는데 남들보다 거의 30분이나 더 걸려 드디어 밟게 된 낯선 나라 몰타였다.
국내 지방공항 정도로 작은 규모인 몰타국제공항
+ 내가 상상했던 몰타와 너무 다른 몰타
몰타는 3월부터 10월까지 거의 비가 오지 않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몰타를 상상하면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몰타=건조함'이었다. 몰타를 대표하는 색인 라임스톤도 건조함이라는 공식을 성립시키는 데 한몫했음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겨울을 제외하고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나라, 라임색의 건물들, 오래된 도시, 이런 단어들이 주는 어감은 바로 '건조함' 다른 말로는 '메마름'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몰타가 이렇게까지 푸를 일인가 싶을 정도로 의외로 초록이 정말 많았다. 이 정도의 초록에도 감탄을 할 정도니 내가 몰타를 얼마나 건조하게 생각했는지 상상이 되리라.
왠지 앞으로 생활하게 될 몰타를 정말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 첫날이다.
초록의 가로수를 외외로 생각했을 정도로 미지의 나라인 몰타
+ 몰타 미리 맛보기
몰타에 도착한 첫날 남부로 시티투어를 다녀왔는데요. 3월 초 몰타의 풍경 사진으로 미리 만나보세요~
덧. 나 자신의 걱정은 누가 보태지 않아도 내가 제일 잘 안다. 어떤 책을 읽다가 읽었던 문구는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