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베란다로 내다보니 창밖으로 이런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좀 허세 있게 말하자면 창문 밖은 지중해다. 지중해이긴 하지만 울산의 방어진 느낌이랄까. 나의 고향인 울산은 도심에서 약 20~30분 정도 차로 달리면 바로 동해이기 때문에 바다에 대한 환상은 크게 없는 편이다. 게다가 코로나 기간에 본의 아니게 울산에서 2년을 지내는 동안 울산의 바다를 질릴 정도로 많이 봤기에 동해나 지중해나 그 바다가 그 바다 같아서 개인적으로 큰 감흥은 없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에메랄드 빛 색깔에 눈과 마음마저 맑아지는 느낌이라 좋긴 했다.
베란다에서 매일 아침 만났던 풍경
집에서 내가 다닐 어학원인 EC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약 10분 정도 걸리는 곳이라 위치 하나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문을 나선 다음 어학원까지 스피놀라만 (spinola bay)을 잠시 따라 걷다가 언덕길을 계속 걸어가면 EC malta가 있다.
첫날 어학원 가는 길을 영상으로 남겼다. 몰타에 있을 때 영상편집도 하고 브런치에 글도 좀 쓰고 하려고 했는데 막상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나지 않았다. 결국 프리미어도 2달 정도 유지하다가 아예 사용을 안 하게 되니 전부 해지했고 찍어 놓은 영상은 외국에 있을 동안은 거의 올리지 못했다. 지금이라고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서 영상 편집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아쉬운 대로 10분 이내의 원본 영상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영상은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내 마음대로 올리고 있으니 혹 관심 있다면 유튜브 구독과 함께 좋아요도 부탁드린다.
몰타에 출발한 EC는 현재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영어권 나라마다 전부 랭귀지스쿨을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어학원이다. 건물은 EAST, WEST로 두 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배정 반은 교실에 따라 동쪽 혹은 서쪽에 강의 실이 위치한다. 30+는 주로 EAST 건물을 사용했다. EC 건물은 앞에 큰 야자수가 있는데 학원 로고와 참 잘 어울렸다. 그래서인지 어학원 수업이 최종적으로 끝나면 수료증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반드시 기념사진을 남기는 포토스폿이었다.
어학원 마지막 날 수료증을 받고 친구들과 함께 기념 촬영
동쪽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1층은 로비고 6층까지 강의실이 있다. 7월 중순에 몰타를 떠나 11월에 다시 몰타로 돌아오니 학원 인테리어가 소소하게 조금씩 바뀌어 있었다. 지금 사진은 12월에 찍은 사진이다. EC는 메인 컬러가 '밝은 오렌지' 색인데 몰타의 밝고 강한 기운을 담은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색깔이라 더 좋았다.
로비의 모습
원래는 2층에 도서관이 있었는데 도서관도 없어졌고 도서관 겸 30+ 휴게실을 따로 마련해 놓았다. 건물 층이 모두 다 나눠져 있는 관계로 사실 이 공간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30+ 휴식공간
탑층의 경우도 7월까지 몰타에 머무는 동안에는 한 번도 올라가 보지 않았을 정도로 관심이 없는 공간이었는데 겨울에 다시 오니 넓은 휴게실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월드컵이 있던 날에는 같이 월드컵을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날이 좀 더 따뜻해지면 아마도 야외 테라스는 인기만점일 듯하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조금 색달라 보이던 풍경이었다.
옥상에는 야외 테라스와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 몰타 어학연수는 하루에 영어 공부를 몇 시간 할까?
대부분 몰타 어학원의 경우 정규 수업은 90분 수업, 브레이크 타임 15분, 90분 수업으로 이루어지는데 하루에 약 3시간 정규수업(레귤러 클래스)이 이루어진다. 이후 자신이 원하는 경우 추가 비용을 내고 약 90분의 추가 수업 (인텐시브 혹은 포커싱 클래스라고 부른다)을 들을 수 있다. 인텐시브 클래스의 경우 문법, 스피킹, 어휘, 비즈니스 등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다. 통상 주당 레귤러 클래스만 등록할 경우 20 레슨이고 인텐시브 클래스까지 포함할 경우 30 레슨이다. 인텐시브 코스는 따로 추가비용이 발생하는데 가끔 20 레슨을 30 레슨으로 업그레이드해주는 프로모션이 있어서 프로모션 기간에 등록하면 이득이 될 수 있다.
20 레슨보다 30 레슨이 수업시간이 길기 때문에 인텐시브 수업을 듣는 게 무조건 좋은지는 사람마다 좀 다른 것 같다.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사람마다'라기보다는 '자신의 레벨'과 '공부하는 성향'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나는 몰타에 있을 때는 인텐시브 수업보다는 개인과외를 했었고 런던에 있을 때는 인텐시브 수업을 들었는데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다. (추후 정리를 할 예정)
EC 몰타의 경우 수업 시작 전에 반 배정을 위해 미리 온라인 테스트를 봐야 했다. 코로나 전에는 첫날 어학원에서 다 같이 레벨테스트를 보고 선생님들의 간략한 인터뷰(스피킹 테스트)를 하게 된다. 이후 점심을 먹고 나면 시험 본 결과에 따라 자신의 레벨이 결정되고 반을 배정받게 되는 것이었다. (7월 말 EC 런던에서는 위 시스템에 따라 어학원 첫날이 진행됐다. ) 하지만 코로나 기간이었기 때문에 몰타의 경우 스피킹 테스트는 생략됐고 온라인 시험(리딩, 리스닝, 라이팅) 결과만으로 반 배정을 받았다.
온라인 시험에 접속하기까지 상당히 망설였다. 반 배정 시험이 뭐라고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차일필일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마지막 날에서야 겨우 온라인에 접속해서 시험을 봤다. 온라인 테스트는 문법과 어휘를 묻는 리딩과 듣기 평가인 리스닝이 약 50분간 이어졌고 이후 약 20분은 영작시험이었다. 나름 공부 좀 한다고 했던 사람(?)이라는 자부심 따위는 온데간데없고 막상 시험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하얘졌다. 영어 시험을 얼마 만에 보는 건지 기억도 안 나는 데다가 길바닥에서 써먹던 영어로 시험을 보자니 어질어질했다. 런던에 있을 때 공부가 너무 힘에 부쳐 '나이 들어 공부는 하는 거 아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런데, 일기장을 찾아보니 맙소사! 한국에서 온라인 시험 칠 때부터 이미 나이 들어서 공부는 하는 거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었네.. 이런...
EC 온라인 시험 테스트
+ 긴장된 수업 첫날
어학원의 경우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주단위로 수업이 진행되는데 EC는 매주 일요일 오후에 개인 메일로 반배정 메일을 보내주었다. 참고로 EC의 경우 A뱅크(오전반), B뱅크(오후반)로 나누고 30+와 BLT(나이가 무작위로 섞인 반)은 B뱅크였다. 따라서 B 뱅크인 나는 월, 수, 금은 오후 2시 45분부터 수업이고 화, 목은 오전 9시에 수업이었다. 인텐시브 수업은 오후 1시부터 2시 30분까지 수업인데 몰타에 있는 동안은 인텐시브 수업은 듣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많은 편이었다. ESE의 경우는 무조건 8시 45분 아침수업 하나만 있다.
특이한 건 몰타의 경우는 모든 학생의 이름을 알파벳 순으로 보내주기 때문에 엑셀파일에서 분류작업을 한번 더 거쳐야 나와 같이 수업할 우리 반 친구들만 모아서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매주 매일을 받을 때마다 우리 반에는 몇 명이 수업을 듣는지 어떤 학생이 새로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번 엑셀프로그램을 돌렸으나 나중에는 귀찮아서 안 했다. 이후 런던 EC 다닐 때는 선생님별로 배정된 학생을 그룹 지어서 시간표를 만들었는데 그게 훨씬 더 보기도 좋고 편했다. EC라서 시스템이 다 같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반배정 과 그 주에 진행되는 액티비를 담은 안내 메일을 받았다.
하얀 건 종이고 까만 건 글씨라는 느낌으로 시험을 봤으니 시험결과가 좋을 리 만무했고 나는 엘리멘트리(elementary)로 반 배정을 받았다. 나의 첫 선생님은 몰타 출신인(통상 몰티즈라고 부른다) 디온 선생님이었는데 자신의 소개를 여자가수 셀린디온과 같은 디온이라고 해서 기억하기 쉬웠다. 내가 수업하게 될 반에는 총 12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30+ 반 답게 연령대는 30대 중반, 40대, 50대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나와 이탈리아에서 온 마리아만 빼면 대부분이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몰타가 유럽이라 유러피언을 많이 만날 것이라는 기대는 첫날부터 완전히 깨어졌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는 콜롬비아였고 멕시코, 브라질, 파라과이, 칠레, 파나마 등 어느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위치도 이름도 가물가물한 라틴아메리카의 나라들이 몰타 어학연수생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몰타가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해 어학연수를 선택한다면 남미의 나라들은 좀 더 현실적인 이유로 몰타를 어학연수지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비자 때문이었다. EU가 속한 유럽 국가 중 90일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한 곳이 몰타가 유일하다고 했다. 한국은 대부분 유럽 국가가 90일 무비자라서 여행에 제약이 없지만 남미의 경우 중.후진국이 많다 보니 유럽 입국을 위해서는 무조건 비자가 필요한 상황인데 친구들 이야기에 따르면 비자 발급이 생각보다 쉬운 편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한때 미국 갈 때 비자받기가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느낌과 좀 비슷했다. 몰타에서 3개월 이상 체류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어학연수생의 경우 어학원을 12주 이상만 등록하고 약 80% 출석률만 있으면 학생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학생비자를 받은 후 비자기간 동안에는 아무런 제약 없이 EU가 속한 유럽 각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 남미국가에서 어학연수지로 몰타는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그나마 다행은 한국인은 반에 1~2명 정도라는 점이었다. 4월이 지나면서 한국에서 온 어학연수생도 많이 늘긴 했는데 30+라 그런지 내가 속한 수업에서는 프리인터미디어트 때는 2명이고 그 외는 늘 나 혼자였다. 아무래도 한국인이 많다 보면 한국인들끼리는 한국말로 대화할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나라는 달라도 대부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이라 나라가 다른데도 언어가 같아서 쉬는 시간에는 스페인으로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다가 스페인어 배우겠다는 우스개 소리도 했을 정도였으니 몰타에서 국적비율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물론 국적비율도 중요하긴 하겠지만 결국은 자신의 영어실력이 더 중요하다. 전 세계에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많으니 어떤 발음이어도 알아 들을 수 있어야 하기때문이다.
사진출처 : EC 몰타 공식홈
+ 발음이 어렵다고 왜 너가 이름을 바꾸는 거니?
첫 수업에 'Hello'라고 씩씩하게 인사하고 들어가서 앉기는 했는데 이게 뭐라고 상당히 긴장이 됐다. ENFP이기는 하지만 속으로 엄청 부끄러워하고 은근히 낯가리는 스타일인지라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보여도 나름 긴장이 많이 됐다.
선생님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다음 질문이 바로 이어진다.
"What's your name?"
"My name is Haekyoung, Family name is Jeong.
Jeong Hae kyoung."
사실, 처음 어학연수를 생각했을 때 한글 이름을 그대로 써야 하는지, 영어 이름을 써야 하는지 좀 고민을 했다. 그래서 영어 이름을 짓기는 했다. 아주 오래전에 영어 학원을 다닐 때 무조건 닉네임을 쓰라고 해서 Candy, Sarah 등을 쓰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왠지 좀 다르게 지어보고 싶었지만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랬는데 몰타 어학원에서는 영어 닉네임 대신 모두 자신의 실명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이름 그대로 말했고 '정해경'이라는 이름이 발음이 쉽지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받침이 없는 외국어의 특성상 정. 해. 경. 세 글 자 중 어느 한 글자도 제대로 발음을 못할 줄은 몰랐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발음이 '해영' 정도나 될까. 여하튼 선생님께 '해경'이라는 이름이 너무 어려우면 필명인 '윤서'로 부르라고 했는데 맙소사 '윤서'도 발음이 전혀 안 될 줄이야. 여러 번 시도하다가 안 돼서 영어 닉네임이 있는데 그걸 불러도 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선생님 왈,
"다른 나라 사람들이 너의 이름이 부르기 힘들다고 해서 왜 너가 먼저 알아서 이름을 바꾸느냐? 한국식 이름 발음이 어려우면 너가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바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앉아있고 때론 발음이 쉽고 때론 발음이 어렵지만 다 본인의 이름을 그대로 부른다. 그러니 너도 너 이름 그대로 쓰는 게 맞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생각해 보니 선생님 말이 다 맞았다. 내 이름이 어려우면 내가 이름을 바꿀 게 아니라 그들이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도록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나름은 외국인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훌륭한 우리 한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한글이 우수하고 좋다고 생각하지만 먼저 한글 이름을 포기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이후 런던을 갔을 때 런던 선생님 중 한 분이 이름이 너무 부르기 어렵다고 영어 이름이 있냐고 했을 때(런던의 경우 동양인들은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 이름이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거 안다. 그렇다고 당신이 부르기 편하기 위해서 나는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니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도록 당신이 노력해 주길 바란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몰타에서 첫날 이런 해프닝이 없었다면 나는 해경이 아니라 1년 내낸 스텔라로 불렸을 거다. 하지만 발음이 어려운 내 이름 때문에 매번 새로운 선생님과의 수업에선 내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달라고 늘 선생님들 한글 발음을 연습시켜야 했다. 그 덕분에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나를 제일 먼저 기억하는 장점도 있었다.
나의 엘리멘트리 선생님이었던 디온.
손글씨가 아닌 전자칠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은 몰타치곤 IT 기기 이용을 꽤 잘한다 싶었다. 다행히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영어는 대부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영국식 발음, 미국식 발음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나는 그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고 선생님이 몰티즈라 몰티즈 특유의 영어 억양이 있는데 몰타에 있을 때만 해도 그걸 잘 몰랐다. 런던을 다녀오니 와~ 몰티즈 발음 ㅎㅎㅎㅎ..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친구들의 발음을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한국도 한국식 영어 발음이 있다고는 하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라틴 아메리카 친구들의 발음은 와~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들도 다 초보인 상태라 영어를 오랜만에 해보니 발음 교정이 됐을 리도 없고 나 역시 라틴 영어 발음에 처음 노출되니 대화를 하나도 못 알아들어 미칠 노릇이었다.
EC 교재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출판한 OUTCOMES라는 교재를 사용하는데 총 16 과로 구성되어 있지만 12주로 반복되는 시스템이라 전체 내용을 다 배우는 건 아니고 12개 UIT만 배우게 된다. 어학연수의 특성상 매주 새로운 학생이 오기 때문에 그 주차에 나가는 진도에 새로 온 학생이 적응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좀 어렵게 느껴지는 UNIT과 좀 쉽게 느껴지는 UNIT이 있는데 어쨌거나 첫 주에 시작하는 수업은 다 멘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건 레벨 업이 돼서 새로운 반으로 가도 마찬가지였다.
EC 엘리멘트리 교재
엘리멘트리 레벨이 쉽다고 해도 영화나 뮤지컬을 본 느낌을 쉬운 단어로 막힘없이 말할 수 있다면 사실 이 정도만으로도 스몰토크 정도는 충분하고 의사소통도 할 수 있다. 또한 엘리멘트리에 나오는 내용을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어학연수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기에 엘리멘트리를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텍스트로 보면 다 아는 내용이지만 막상 원어민의 발음과 속도로 들려주는 리스닝은 처음에는 속도가 너무 빨라 잘 들리지도 않았다. 말은 이 비슷하게 할 수 있는데 리스닝은 진짜 멘붕이었다.
이 정도 내용을 막힘없이 술술 말할 수 있어야 엘리멘트리 레벨이다.
첫날 수업 내용을 기억해 보자면 엘리멘트리 수업은 내게는 좀 쉬운 편이었다. 도대체 시험을 얼마나 못 받길래 이 수업에 앉아있는 걸까 의심이 들긴 했지만 엘리멘터레 수업에도 내가 몰랐던 단어와 표현들이 의외로 많았다. 스피킹과 리딩은 나름 괜찮은데 일단 리스닝이 좀 힘들었다. 영어 레벨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느끼는 나의 수준이고 내가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느냐이기 때문에 기본부터 차근차근 다지면서 공부를 하자고 첫날 결심했다.
첫날 배운 표현 중에
외국인들이 정말 많이 쓰는 'out of', "to get on well' 은 지금도 유용하게 써먹고 있고 알고는 있지만 거의 사용해 본 적 없는 afterwards, beforehand, 새로 알게 된 단어인 pensioner (연금수급자) 등등 엘리멘터리에서도 배울 것이 많았다.
첫 날 배웠던 수업 중 내가 잘 몰랐던 것들.
우리나라의 경우 문법에 강하기 때문에 대부분 레벨테스 점수가 높은 편이라 인터미디어트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30+의 경우 다들 영어공부가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나처럼 엘리멘트리나 한 단계 높은 프리 인터미디어트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엘리멘트리 수준 정도는 무리 없이 스피킹이 되지만 첫 수업에서는 리스닝이 어렵다고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프리 인터미디어트에 반 배정을 받은 사람도 첫날 수업을 듣고 너무 어렵다며 엘리멘트리로 반을 내려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몇 주이상 앞서 영어에 노출된 사람과 처음으로 영어에 노출된 사람의 실력이 같을 수는 없다. 아무래도 엘리멘터리보다 높은 레벨이 영어를 더 잘 하는건 당연한 거다.
이미 어학연수를 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조언하기를 낮은 반에 오래 있을 필요 없고 실력이 되면 무조건 반을 빨리 올라가는 게 좋다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몰타에 있을 때만 해도 엘리멘트리도 다 모르는데 레벨만 올라간다고 해서 무슨 소용 있나 싶었고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다지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정말 후회를 했다.
지나고 보면 별 것도 아니었는데 첫날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좀 우습다. 영어가 뭐라고. 하지만 영어에 갑자기 24시간 노출된다는 건 생각보다 꽤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2년 동안 미루고 미루었던 어학연수가 시작돼서 기분 좋은 첫 출발이었다.
덧. 살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스피놀라 만에 살았던 그 시절이 참 좋았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