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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Jan 20. 2023

 [몰타 어학연수] 50대에 어학연수를 간다고?

몰타 어학연수 제1장 #2 나에게 어학연수란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1장 엘리멘터리 몰타  

#2. 50대에 어학연수를 간다고?



+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019년 정월대보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부모의 죽음 앞에 마음의 준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입. 퇴원을 반복하던 아버지는 새해를 맞이하고 난 보름 뒤 그렇게 고요히 세상을 떠나셨다. 다행이라면 한 달 남짓의 기간동안 아버지와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기에 자식된 도리를 조금이라도 할 수있어서 아버지께 고마웠다.


그렇게 아버지가 떠나고 나니 갑자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일상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 지리멸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변화가 없는 삶은 생각만해도 너무 지겨웠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참 지쳐있었다. 2009년 아무 준비 없이 은행을 떠나게 됐고 뒤늦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그 길은 내게는 매일이 육체적으로 힘든 날들이었지만 걷는 동안 눈물로, 땀으로 내 인생의 모든 찌꺼기들을 게워냈다. 너무 특별했던 경험이었기에 순례길을 다녀온 후 그곳에서 있었던 내용을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자연스레 나는 여행작가와 사진작가가 되었다. 그동안 내 이름으로 된 3권의 책을 출판했고 다양한 곳에 여행과 관련된 글을 기고했으며 1번의 사진 개인전과 여러 번의 단체 사진전에도 참여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강의 제의가 왔고 고등학생부터 은퇴를 앞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행, 사진, 글쓰기, 동기부여 등을 주제로 강의도 하게 됐다. 운 좋게도 KBS, MBC, EBS, TBS 등 TV와 라디오에도 출연을 했다. 은행원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경험과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참 좋았고 재미있었고 즐거웠고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나는 알았다. 


내가 계속 지쳐 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난 충전이 필요해요'라고 말하기엔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사치고 호사였다. 어쩌다 '여행작가'라는 길로 들어섰지만 내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스스로에게 물어도 번듯하게 이뤄낸 것도 없는 상황에서 '충전'이라니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어영부영 다시 몇 년이 흘러가고 있었다.


"무슨 일 하세요?", "여행작가입니다." "와~ 완전 부러워요."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업인 '여행작가'.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게 여행은 여행이 아니었다. 충전을 위해 떠난 개인 여행에서도, 심지어는 가족여행에서도 언제 이 여행이 일로 연결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분주하게 움직이며 사진을 찍고 기록을 했고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놓지 못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게 여행은 '채움'이 아니라 '방전'이었고 생각만 해도 '지침'의 연장선이었다. 사람들은 일상을 벗어나고 싶을 땐 여행을 간다지만 일과 여행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재의 삶은 생각만 해도 피곤함  그 자체였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길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못 견딜 상황이 됐지만 막상 떠나려고 생각하니 어디로, 얼마나 떠나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게 고민이 계속되는 사이 어영부영 시간은 소리 없이 밀려가고 있었다.  여행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내 안에 일고 있는 정체모를 또 다른 갈급함과 갈증은 나의 근본마저 흔들어 대고 있었다. 어쩌면 여행지에서 많은 것을 봐야하고 많은 것을 느껴야하는 의무감에서 좀 벗어나보는 것이야 말로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미쳤다.


그래, 그동안의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아무 준비없이 그냥 한번 떠나보자. 그리고 여행지가 아닌, 삶의 공간으로 부딛쳐 보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나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어차피 외국을 갈 거면, 그곳에서 살아볼 생각이라면 이참에 영어 공부를 하면 좋겠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어학연수를 가보자.


영어를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칭 길바닥에서 배운 영어는 언제나 아쉬운 부분이었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영어 구사능력만으로는 늘 답답함이 있었기에 한국 돌아가면 영어 공부 좀 열심히 해야지라고 결심하지만 여행지에서 돌아오면 일상에 치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때뿐이다. 해마다 새해다짐에 '영어공부'는 빠져본 적이 없지만 그게 실천에 옮겨졌다면 이 글은 없었겠다.


막상 어학연수를 가보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영어 스펙이 필요한 대학생도 아니고 게다가 한국어도 종종 까먹기 시작하는 이 나이에, 영어가 얼마나 머리에 들어올 것이며, 영어가 필요한 상황도 아닌데 비싼 돈을 써가며 어학연수를 가는 게 사치가 아닌가 싶어 엄청난 고민이 됐다. 호기롭게 '어학연수'라는 깃발을 쳐들긴 했는데 시작도 전에 의지가 꺾이는 느낌이었다. 매일 '어학연수를 가? 말어?'를 반복하는 시간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졌다. 이러다가 먹고사는 문제에 치어 그대로 주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번 마음에 들어온 '어학연수'는 이상하리만치 놓아지지 않았다.


뭔가 스스로가 생각해도 납득이 될만한 명분이 필요했다. 인생 전반기를 잘 살아낸 나에게 주는 선물이자 인생 후반기를 대비하는 특별한 시간으로 생각하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영어가 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돈만 쓰고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꼭  어학연수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마치 10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이 내 인생이 터닝 포인터가 되어 준 것처럼 이번의 어학연수도 그럴 것이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거창한 명분이라 웃음이 난다. 그때는 곧 오십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나이가 주는 막연한 불안감이 너무 컸고 더 이상 내가 젊지 않다는 묘한 상실감이 '어학연수'를 핑계 삼아 일상을 떠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들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 끝에 2020년 3월에 어학연수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사이 '50'이라는 숫자는 내 턱밑까지 와 있었다.



+ 그 나이에 영어는 배워서 어디다 쓸려고?  

어학연수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유학박람회를 다니면서 발품을 팔기도 했고 웹사이트를 통해 검색을 해 보는 등 여러 가지를 비교해 본 뒤 몰타로 정했다. 어학연수 비용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해 인기가 많은 필리핀은 처음부터 제외했고 대학생들이 많이 간다는 미국, 캐나다 혹은 호주는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이왕이면 유럽으로 가고 싶긴 했지만 런던은 비싼 것도 비싼 것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살짝 두려운 기분이 있었다. 그러다가 지인이 지중해 섬나라인 몰타라는 곳이 어학연수로 인기가 많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이야 '몰타 어학연수'라고 초록창에 검색하면 그곳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온 사람이 제법 있지만 당시만 해도 어학연수장소로는 정말 생소한 곳이었다. 나에게도 완전히 생소한 나라 '몰타'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기간은 3개월로 너무 부족한 것 같고 최소한 6개월은 해야 어느 정도 영어 공부에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공부를 제대로 해보자 싶어 몰타에서 6개월, 영국 런던에서 3개월, 이렇게 두 곳에서 어학연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검색해본 결과 몰타와 영국 두 곳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2020년)

유학원에서 안내해 주는 대로 어학원과 기숙사 등록을 하고 비행기표를 끊고 유학생보험 등등 세부사항까지 차곡차곡 준비가 진행됐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 나이에 10개월씩이나 외국에서 살면서 수천 만원을 쓰면서까지 이 나이에 과연 영어가 필요한가' 불쑥불쑥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가 나에게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이런 내게 엄마는 "노후 준비할 나이에 무슨 어학연수냐"라고 펄쩍 뛰었다. 지인들도 어학연수를 결정했다는 내 얘기에 처음에는 '좋겠다', '부럽다'를 연발하더니 꼭 마지막에는 한 마디씩 거들었다.


"너 영어 못하는 건 아니잖아?", "근데 너 일에 영어가 꼭 필요해?", "영어 배우면 어디에 써먹을 거야?", "돈도 엄청 많이 든다는데 그 나이에 영어 배워서 뭐 할 거야?" "앞으로 통역 앱이 더 좋아지면 이젠 굳이 돈주고 영어 배울 필요없잖아" 등등등.


질문의 언어는 다르지만 내용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내 일에 영어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영어 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꼭 영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뭔가 나에게 새로운 계기를 만들기 위해 외국에서 좀 살아보고도 싶다고 말을 했었다. 그러나 한두 번도 아니고 만나는 사람마다, 심지어는 나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절친마저도 똑같은 질문을 하니 맥이 빠졌다. 이런 일이 하도 반복되니 나중에는 은근이 짜증이 났다.


남들이 보기에는 영어가 필요 없는 상황에서 영어를 배우러 외국까지 간다는 게 어쩌면 사치일 수 있겠다 싶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또한 내 상황이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라고는 알았지만 계속 같은 질문을 받고 있자니 뭘 배운다는 게 그걸 꼭 어디에 활용할 수 있어야만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단 말인가 싶어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말은 '영어'라고 했지만 외국에서 생활해본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라는 건 왜 생각하지 못할까? 그들의 무지한 근시안에 화가 치밀었고 왜 모든 건 꼭 실용적이어야만 하는지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다. 내돈내산인데 내가 왜 일일이 이런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짜증이 났다. 그런 걱정은 남이 해주지 않아도 이미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했다.  사회적인 고정관념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또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지만 나이 오십에 두 눈 딱 감고 몰타로 떠났다.


그래도 시간은 차곡차곡 흘렀고 출발할 날짜를 한 달여 남겨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코로나가 터진 것.! 이후 상황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간 준비했던 어학연수의 모든 일정들은 모두 취소를 했고 다시 2년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숫자 오십은 어느덧 진짜 내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2022년 3월 코로나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1년 더 미루게 되면 내가 포기할 것 같아 두 눈 딱 감고 몰타로 향해 떠났다.


나이 오십에 어학연수라니요!!  


그래서 나이 오십에 영어는 얼마나 늘었는지 궁금하다고요?

다음 회에 공개됩니다.


덧. 떠날 때는 영어가 목적이라고 했지만 막상 떠나고 보니 영어는 외국에서 살아보기 위한 핑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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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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