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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Mar 30. 2023

[몰타여행] 지중해에도 황사가 있을 줄이야.

몰타 어학연수 제1장 #13 몰타에도 황사가 있더라고요.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1장 엘리멘터리 몰타  

#13 집 밖은 지중해, 몰타에 황사가 있을 줄이야.


여러분들은 지중해 하면 어떤 풍경을 떠올리시나요? 아마도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에메랄드 빛 바다를 떠올릴  텐데요. 저 역시 그런 지중해를 기대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내가 기대하는 그런 바다였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중해에도 황사가 있다는 사실. 저도 가보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답니다. 몰타의 황사이야기 출발합니다.~



+ 변덕스러운 몰타의 3월 날씨


몰타는 지중해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지중해의 정중앙, 지중해의 배꼽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몰타를 어학연수지로 선택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지중해'라는 것도 한몫했다. 막연히 '지중해(Mediterranean Sea)'라는 이름이 주는 어떤 환상이 있었다고나 할까.

보라색으로 표시된 곳이 지중해이고 몰타는 지중해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지도출처 = 위키디피아)


그 환상 중 하나는 이런 바다색깔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이런 바다가 펼쳐지는 곳, 바로 지. 중. 해.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그런 바다 뷰를 가진 몰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몰타의 3월 날씨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몰타는 비가 잘 오지 않고 날씨가 그렇게 좋다고 했는데 도착한 첫날부터 비 오고 구름이 낮게 깔리는 날이 많았다. 게다가 한국보다 따뜻할 줄 알았는데 한국과 별 차이가 없었다. 3월 초순 몰타의 기온은 대략 15도 정도였는데 바람이 생각보다 무척이나 쌀쌀했다. 지중해에 위치한 몰타라서 겨울에도 그렇게 춥지 않다고 했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아니었다.


바닷가에 있는 지역의 특성상 기온을 나타내는 숫자와는 상관없는 찹찹함이라고나 할까. 제주가 겨울에 따뜻하다고 해도 일기예보 기온만 믿고 얇은 옷을 입었다간 감기에 걸리는 것과 비슷했다. 육지 것들이 모르는 섬 특유의 해양성 기후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살은 에이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온화함과는 거리가 먼 날씨였다. 손발이 찬 체질인 데다가 등이 따뜻해야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전형적인 한국인인 나로서는 몰타의 3월 날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꽤 추웠다. 특히 3월에는.


흐린 날과 맑은 날이 꾸준히 반복됐고 날이 맑아지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 3월 한 달은 매일 창밖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던 것 같다.


지중해에 대한 환상을 가진 것과 달리 처음에는 외국이라는 느낌은 별로 못 받았았던 것 같다. 그건 고향이 바다를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울산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몰타 집은 바로 앞이 바다이긴 하지만 지형상 바다가 동네 안으로 들어와 만이 형성되어 있는 스피놀라 만이다. 이곳은 울산의 방어진 항구마을보다는 훨씬 작은데 약간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중해라고 해도 어떤 날은 방어진 한 구석에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여튼 좀 그랬다.  


다만, 맑은 해가 나는 날에는 바닥이 투명하게 빛나는 에메랄드 색에는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해의 검푸름과는 차원이 다른 지중해 바다색. 특히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바다 색깔에 나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스며들고 있었다.

터키시 블루 물감을 바다에 풀어놓은 것 같았던 스피놀라만.


몰타는 4월 중순 ~10월 말까지는 전혀 비가 오지 않는 기후다. 그 말은 다른 계절에 비가 집중된다는 얘기인데 12월 중순~ 2월 정도가 우기에 해당되고 비가 집중적으로 온다. 다른 계절엔 온통 메말라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겨울이면 푸릇푸릇한 초록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몰타다. 게다가 비가 오면 기온이 10도가 넘는데도 한국보다 훨씬 춥게 느껴졌다. 찬기운이 뼛속까지 파고든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1년 중 여름이 긴 몰타의 특성상 대부분의 집들은 대리석으로 지어져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겨울에는 대리석이 뿜어내는 찬기는 어마무시했다. 3월까지는 전기장판이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바다의 특성상, 바다가 뒤집어지듯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날도 많았다. 날이 좋을 땐 동네 할아버지들이 방파제에 나와 앉아 고기도 잡고 몇 시간씩 담소를 나누는 곳인데 집채만 한 파도가 모든 걸 삼켜버리듯 달려든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다만, 동해에 이런 정도의 바람과 비였다면 바닷속이 뒤집어지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데 지중해 바다는 속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집어삼킬 듯 달려드는 파도에도 농도 연한 옥색을 꼿꼿하게 유지한다. 이런 파도에도 바다가 차분하게 느껴지는 것 바다색깔도 한몫하고 있는 것 같다. 몰타의 3월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풍랑주의보가 내렸고 어김없이 바다는 큰 파도를 몰고 다니며 몰타가 섬나라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어마무시한 파도, 한국의 태풍을 상상하면 된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화창해지는 날씨다. 비 온 뒤 화창한 날씨는 몰타도 예외는 아니었다.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하는 몰타의 3월 날씨는 몹시 추웠지만 진심 사랑할 수밖에 없는 몰타에 점점 스며들고 있었다.


몰타의 요상스러운 날씨는 언제나 학생들에게는 호기심 한가득이었고. 몰티즈 선생님은 (몰타인을 몰티즈라고 부른다) 몰타의 날씨에 대해 설명하며 통상적인 일기예보 사이트 대신 바람을 확인하는  'WINDFINDER'를 알려주며 기후에 관한 어휘도 익히고 어떤 정보를 참조해야 하는지도 공부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윈드파인더는 기본적인 날씨와 온도도 있지만 바람의 방향, 파도 세기 등을 자세하게 알 수 있는데 몰타 사람들은 이 사이트를 꼭 확인한다고 했다. 그래, 몰타가 섬나라였지. 선생님의 인상적이었던 설명은 바람의 방향이 SE(Sosuth East)이면 습한 공기가 유입되는데 그때부터 여름이 시작되는 거라고 했다.



몰타는 지중해성 기후(Cs)인데 여름에는 고온건조하고 겨울에는 온난습윤하다. 이 말은 여름에는 햇빛이 따갑지만 그늘에 있으면 습하지 않고 겨울에는 습하지만 따뜻한 편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렇지만 텍스트로 표현되지 않는 '체감상'의 기후는 따로 있는데 적어도 내게 3월의 몰타는 어쨌거나 생각했던 것보다 춥다는 것이었다.  뜨거운 몰타의 여름을 피해 런던에서 보내고 12월에 다시 몰타를 왔을 때는 확실히 한국의 12월보다 훨씬 덜 춥긴 했다. 몰타의 진정한 겨울은 1~2월로 본다고.




+ 지중해에 부는 모래 바람, '시로코(Sirocco)'


비가 오고 흐리고 그러다가 다시 맑아지는 날씨의 반복이었던 몰타의 3월이다. 때때로 비가 오긴 했지만 대부분은 이런 바다 색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말한 SE바람이 단지 여름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신호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선생님도 몰랐을 거다.  뜨거운 공기가 유입되는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먼지를 싣고 몰타로 넘어온다는 사실. 그건 바로 최악의 황사였다.


한국도 봄철이면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로 파란 하늘을 보기 힘들 정도로 황사를 경험한다. 푸른 지중해 바다를 기대했던 내게 몰타에서 황사가 있다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랬는데 3월 중순의 어느 날 눈 떠보니 세상 밖은 온통 세피아로 변했다.


와- 몰타에 황사가 있었어.!!!!!!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은 중국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보다는 덜한 느낌이었지만 하늘이 누런 건 똑같았다. 지중해에 부는 모래 바람을 특별히 '시로코(Sirocco)'라 부르고 있었다.  이 바람은 초여름에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지나 이탈리아로 불어오는 더운 바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름철에 지중해 전체가 더워지는 것도 이 시로코 바람의 영향 때문이다. 문제는 이 바람이 모래 폭풍을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시로코 바람이 사하라 사막의 모래먼지를 몰타 전역에 뿌리는 불청객일 줄 몰타에 가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가이드 북 어디에도 듣도 보도 못했던 몰타의 황사. 진심 당황했다. 그렇지 않아도 몰타의 색은 '라임스톤'이라는 미색에 가까운 색인데 모래바람이 불어오니 모든 건물들이 다 평면 속에 집어넣은 듯 2차원으로 변해버렸다.

온통 누런색의 몰타,


사하라 사막에서 바람이 SE(south east) 방향으로 불어오면 (왼쪽의 그림의 빨간 화살표) 3월~4월의 몰타는 온통 모래바람으로 뒤덮인다. 이런 현상이 하도 신기해서 찾아보니 몰타 기상청에서 사하라 사막의 모래먼지(DUST)와 관련된 예보에서 시로코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고 있는 자료를 볼 수 있었다. 모래 바람의 정도에 따라 세피아가 됐다가 흑백이 됐다가 그러다가 폭퐁우가 몰아치며 한 번씩 9m가 넘는 파도도 몰아치는 등 3월 초순 ~4월 중순까지 몰타의 날씨는 변덕 그 잡채였다.

사하라 사막에 불어오는 먼지로 노랗게 변한 몰타와 이탈리아. (사진처 : 몰타 기상청)
흑백필터를 낀 게 아니에요.


엄청난 파도가 몰아치는 날에는 어쩔 수없이 집콕 모드였다. 지난번 생일에 김밥을 만들기 위해 아시안마트에 사 온 어묵이 너무 많이 남아서 채소 육수를 내고 어묵탕을 끓였다. 집 밖은 태풍이 불듯 파도가 거세가 몰아치는데 뜨끈한 어묵탕을 먹고 있으니 집 밖은 지중해라는 사실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비오는 날은 뜨끈한 어묵탕이 진리


4월 중순에도 최악의 황사가 두어 번이 있었고 그러다 어느 날 기온이 훅- 올랐고 봄과 여름 사이의 경계 없이 갑자기 여름이 됐다. 그런 곳이 몰타였다. 그리고 우리의 식당 테라스도 오픈을 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서 우리가 기대한 지중해 빛 바다는 비 한번 없이 10월까지 이어졌다.
4월 중순 찬기운이 가시자 마자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면서 집의 테라스 식당도 오픈했다.


덧. 원래 몰타의 3월이 그렇게 춥지 않고 비도 많이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2022년 몰타의 3월은 사상유래 없이 추웠고 이상기후라고 했다. 어학연수가 끝나고도 아직 몰타에 살고 있는 파나마 친구와 며칠 전 통화를 했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3월인데도 하나도 안 춥고 날씨가 정말 화창하다고 했다. 물론 사하라 사막의 미세먼지와 황사는 변하지 않고 똑같아서 한 번씩 누런 하늘이라고.


+ 다음 이야기 : 몰타 수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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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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