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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미리 May 20. 2020

2 # 달리기를 멈춘 사람의 심리

제일 중요한 건 뭔데?

퇴사를 결심한 이후,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조급함’이었다. 매달 통장에 꼿히던 귀여운 월급의 존재가 이렇게 와 닿은 적은 처음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돈 뿐만 아니라,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 그리고 뭘 할 수 있는지. 뭘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어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서 신발도 없이 멈춰진 느낌이랄까. 이 느낌을 떨쳐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아무거나 하기 시작했다. 취업 사이트에 들어가 생각없이 이력서를 뿌리거나, 영어 점수에 집착한다거나. 그 속에서 진짜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없는 열정을 흉내내는 퇴사자만 있을 뿐.


얼마간의 방황 끝에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주는 잠시의 쉼표같은 시간. 가장 처음으로 해야하는 건 '나'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온전히 나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든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것이 온전히 나의 의지인지에 대한 확인. 나는 일단 그 두 가지를 하기로 했다.


1. '알기' - TO DO LIST 와 WISH LIST를 구별하기

일단,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하는 일들을 적었다. 조급함에 쫓기다 보니 해야 하는 일들을 하고 싶은 일이라고 속여가며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TO DO LIST'와 'WISH LIST'를 구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되었다. 해야 하는 일은 그렇게나 잘 적어나가면서 하고 싶은 일은 3가지를 적는 것도 겨우 해냈다. 조금은 꿈 같은 이야기를 기약 없는 위시리스트에 적어 두니 나의 조급함이 불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확인' - 거짓 없는 LIST 만들기

리스트가 완성되면 확인의 시간이다. 내가 쓴 내용이 정말 맞는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잘 분리했는지,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확인한다. 그건 습관적으로 '나'를 속이면서도 꾸역꾸역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이라고 착각하던 나에게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나름의 마인드맵을 구상했다. 일단 리스트의 내용을 전부 적고, 맞물리는 내용을 찾았는데 이게 꽤 효과적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해보니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게 나의 의지인지 나의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아가기에 조금은 도움이 됐다.


그래서 찾아낸 나의 'TO DO LIST'와 'WISH LIST', 성급하게 달려들기만 했던 열정 만수르의 조급함 깨기 프로젝트 1의 목표는 결국 "에너지를 쏟을 곳과 아닐 곳을 구분하기"다. 열정 만수르로 사는 시간, 나는 분별력을 잃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몇 가지 하고 싶은 일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꾸준하기다. 목적어도 없이 포괄적인 내용이지만 또 어찌보면 단순하다. 그냥 당장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고, 준비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일단 해보는 것, 그것도 '꾸준히'. 이 꾸준히의 정의를 나는 기간으로 정했다. 쉽게 말해 기한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하루에 한번 집밥 해 먹기', '10일 동안 아침 운동하기',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읽기'와 같이 사소하지만 하고 싶었던 것들에 기간을 정한다. 하고 싶은 일을 기간이 정해진 해야 하는 일로 살짝 바꾼 처사라고 할까. 이게 꽤 효과가 있는게 나는 '해야 하는 일'은 무조건 시도하는데, '하고 싶은 일'은 생각만 하거나 우선순위를 앞으로 땡겨 오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절절히 깨달았다.)


똑같이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하는데도 일을 할 때의 스트레스 없이, 하고 싶을 때 하니 저절로 하고 싶은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알고, 나를 잘 다루는 법을 알고, 내가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던 것이다. 평화로운 백수의 아침, 글을 쓰고 오트밀을 먹으면서 "재미는 없는데, 지독하게 좋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참, 잘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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