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듣는 시간
낮의 모든 소란이 가라앉은 뒤, 그제야 여름밤바다는 조용히 제 얼굴을 드러낸다.
햇빛에 반짝이던 물결은 이젠 별빛을 품고, 바람은 낮보다 천천히, 모래알을 품은 채 발등을 스쳐간다.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가고 발자국만 남은 모래사장
나는 그 사이에 앉아, 조용히 파도를 듣는다.
밤의 바다는 모든 걸 말없이 받아들인다.
말하지 못한 감정도,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출렁이며 안아준다.
그렇게, 조용한 물결을 바라보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풀리는 것 같다.
지나간 계절, 놓친 순간들 모두 이 밤의 바다에 흘려보내고 싶어진다.
불빛 없는 밤 오롯이 너울 치는 파도와, 조용한 바람
외롭지 않은 여름밤.
그 속에서 나는 잠시, 아무것도 아닌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가 된 듯하다.
그리고 그게 이상하게도,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