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 여름방학

by 해문

여름방학이라는 말엔 묘한 마법이 있다.


방학이 시작되고 짧은 여름밤이 지나면

하루가, 계절이, 세상이 조금 빠르게 흐르기 시작한다.


늦은 오후, 하얀 광목천을 짓이기며 들어오는

여름햇살에 못 이기는 척


몸을 일으켜 ‘오늘은 뭐 하지 ‘와 같은 고민과 함께

방학의 하루를 시작한다.


지는 여름 석양보다 빨갛게 익은 얼굴과 팔은 내 여름방학의 하루를 대변했다.


방학 숙제는 늘 마지막 주에 몰아서 했고, 그마저도

태풍 소식이나 비 내리는 오후에 몰려 있었다.


그때의 게으름마저,

지금은 이상하게도 그리운 풍경으로 남았다.


여름방학은 사실 긴 휴식이 아니라 잠시 허락된

자유였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괜찮고, 그저 놀고, 쉬고,

바라보고, 흘려보내도 괜찮았던 시간.


지금은 어른이 되어 방학이 가진 의미는 사라졌지만 가끔은 그때의 여름방학이 그리워진다.


그때처럼 마음을 잠시 멈추고, 햇살 속에 가만히

누워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시간.


어쩌면,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여름은 시간표도

출퇴근도 없던 그때 그 계절이었을지도 모른다.


오직 나만의 속도로 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던 그 여름방학의 풍경.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