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먹는 꽃
나는 그 온실을 뒤로한 채 정원으로 나왔다.
꽃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여전히 그 자리에
피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꽃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고통이자, 다른 누군가의 도피처였으며
그리고 지금의 나에겐, 되돌아갈 수 없는 문턱이었다.
돌보는 자는 조용히 내 옆에 섰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팔에 새겨진 흉터들이 대신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뒷모습에서 어떤 깊은 고독과 고결함이 겹쳐 보였다.
책임을 자처한 사람, 기억을 견디는 사람이 가진 얼굴.
동정이 아니라, 존경. 그 감정이 생김과 동시에
내 안에서 새로운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
“소서”
그 기억을 떠올릴 수는 없지만, 그녀를 되찾고 싶다는 갈망만은 점점 명확해졌다.
나는 입술을 다물지 못하고 물었다.
“잊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방법은 없나요?”
돌보는 자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꽃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조용히 대답했다.
“있습니다. 단 하나의 방법.” 나는 숨을 삼켰다.
“당신이 ‘돌보는 자’가 되는 겁니다.” 정적이 흘렀다.
[그 말은 경고처럼, 혹은 초대처럼 느껴졌다.]
“돌보는 자가 되면, 당신이 이곳에 남긴 기억들과 이전에 지워진 기억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럼… 혹시 소서의 기억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이름은 이 정원이 품고 있고, 그 감정은 당신 안에 아직도 반응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럼 왜 모두가 그렇게 하지 않았죠?”
그는 대답 대신, 자신의 팔을 들어 보였다.
“기억을 돌보는 일은… 기억을 ‘기억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 고통을, 변형 없이 감당해야 하거든요.
누군가의 미련, 원망, 절망, 그 모든 감정을 자신의
감각처럼 체화해야만 합니다.”
“흉터는 그 증거입니다. 기억을 품은 자에게, 그 감정은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가 되죠.”
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돌보는 자는 다시는 꽃에 손댈 수 없습니다. 잊는 쪽을 선택할 수 없는 자가 되는 거죠. 영원히, 모든 기억을 떠안은 채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그 말의 무게를 천천히 받아들였다. 소서를 되찾고 싶다는 감정과, 그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가 서로 내 안에서 맞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 이름 하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울 수 있다면 차라리 그 고통을 제 몸 안에 두고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돌보는 자는 처음으로 나를 바라보며 조금, 아주 조금 웃으며 또 한편으론 우려를 감추지 못한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의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