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 흉터의 무게

기억을 먹는 꽃

by 해문

“그 이름, 오래 버티더군요.”


돌보는 자가 문가에 기대어 말했다. 나는 유리병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이건… 어떻게 여기에 남는 겁니까?”


그는 천천히 내 옆으로 걸어왔다.


온실 안, 유리병 사이를 걷는 그의 걸음은 마치

무언가를 밟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사람 같았다.


“꽃은 단 하나의 기억을 먹고 자랍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이곳에, 형태 없는 채로

흘러들어오죠.”


“그걸… 병에 담는 건가요?”


“꽃의 기억이 충분할 때 나머지 기억들을

이곳에 담아둡니다 “


“하지만 때론 유리병에 담기지 않는 커다란 기억들이 있습니다”


곧이어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기억들은 어떻게 하나요? “


그는 조용히 소매를 걷었다.

“ 담깁니다. 제게로.”


그리고 나는 그제야 정확히 보았다. 그의 팔에는 마치 시간이 눌러 찍은 듯한 매우 얇고 긴 상처들이,
나란히, 아주 정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표피만 베인 듯하지만, 붉은 자국도, 피도 없었다.

그건 오히려 오래된 금처럼 희미하게 반짝이는 기억의 흔적이었다.


그 선은 무언가 말 못 할 고통을 지닌 채 살 안쪽

깊숙이 박혀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말없이 그 흉터들을 바라봤다.

“기억을 옮기는 순간, 그 감정의 마지막 울림이 제 몸 어딘가에 새겨집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가장 깊이 반응한 부위에 따라 다르죠.


슬픔은 손목에,


분노는 가슴에,


두려움은 목덜미에,


그리고… 사랑은 손등에.”


그는 조용히 손등을 뒤집었다.


거기엔 거의 사라진 듯 희미한 흉터 하나가 있었다.


다른 자국들과 달리, 그 흉터는 유난히 부드러운

곡선이었다.


“소서는… 어떤 감정이었나요?” 나는 물어선 안될 걸 알면서도 속삭이듯 물었다.


그는 손등의 흉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건… 너무 오래 남아 있던 사랑이었어요. 그래서 더 깊었고, 그래서 당신은 결국 견디지 못했죠.”


나는 두 눈을 감았다.

소서의 얼굴은 그 어디에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딘가 아주 깊은 곳에서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던

기억의 감촉이 아직도 내 뼛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 흉터들… 전부 타인의 감정인 건가요?”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전부는 아닙니다. 몇몇은… 내가 지워야 했던 것들입니다.”


그 말의 끝에,
그는 팔뚝 안쪽, 가장 진한 상처 하나를 조용히 짚었다.


가장 깊고, 가장 낡고, 가장 조용한 흉터.


그건 설명이 없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건 그 자신의 기억이었고,
지울 수 없었기에 더 깊이 새겨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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