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꽃의 대가

기억을 먹는 꽃

by 해문


“혹시… 그 꽃, 내가 전에 만진 적도 있습니까?”


돌보는 자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게 이 꽃의

방식이니까.”


“하지만 기억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와, 이곳에 남는 것일 뿐.”


돌보는 자는 꽃을 등진 채 말했다.


그의 말은 이미 수없이 반복된 냉정한 경고문처럼

들렸지만, 그 안엔 쓸쓸한 온기가 있었다.


“이 꽃은 단 하나의 기억을 가져갑니다.

당신이 정한 게 아닌, 이 꽃이 선택한 하나.”


나는 숨을 작게 들이마셨다.


이상하게도 그 말은

처음 들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말을 이었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는 비지 않습니다. 그 빈 곳엔… 이 꽃이 자랍니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뜻이죠?”


“당신은 알 수 없지만, 그 자리는 변형됩니다.

잊은 채로 그 기억을 대체할 ‘무언가’를 당신이

스스로 만들어내죠. 왜냐면 인간은 기억 없는 감정을 견딜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시선을 꽃에 고정했다.


꽃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만큼 불길했다.


“그럼 이 꽃도 누군가의 기억을 가져가서 핀 꽃이니깐 제가 처음이 아니군요? “


.

.

.


“그렇습니다. 어떤 이는 ‘죄책감’을 지우려 했고,
그 결과,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건 그를 편하게 했지만… 동시에, 그는 다시는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못했죠.”


그는 말을 멈추고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묘한 무게가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아픈 사랑을 지웠습니다. 그는 편안해졌고, 눈물도 멈췄죠.


하지만… 그 후로 어떤 얼굴을 봐도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작동하지 않았어요. 기억뿐만이 아니라 감정까지굳어버린 겁니다.”


나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 말이 목구멍에서 멈췄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일어섰고 그의 그림자가 내 앞에 드리워졌다.


그러자 다시 투명했던 꽃이 보랏빛으로 변하는 걸

가리키며 말했다.


“그 감당은, 오롯이 당신 몫입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그의 손목 아래에 희미하게 남은 흉터를 보았다.


매우 얇고도 여러 겹의 오래된 자국.


마치 무언가를 잃은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지워준 사람이 가진 흔적 같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꽃을 찾습니다.”

그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두 번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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