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돌보는 자

기억을 먹는 꽃

by 해문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그 꽃은 이상할 정도로 흠집 하나 없이 매끄럽고, 투명하고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웠다.


내 손그늘에 가려지자 이번엔 아주 묘한 보랏빛으로 변했다.


꼭 만져야만 할 것 같았다.


확인해야만 했다.
내가 정말로 이 꽃을 원하는지, 이 꽃이 날 원하는지..


그러나 그 순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낮고, 차갑고도 건조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놀라 흠칫 뒤를 돌아봤다.


꽃에 홀려서일까..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는 늘 거기 있었던 것 같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고 나이 또한 특정하기 어려웠다.


얼굴을 제외한 피부엔 온통 흉터 투성이고 지는 해의 그늘까지 얼굴을 가려,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특징으로는 하얀 백발의 머리카락뿐이었다.


그는 흰 셔츠에 잿빛 린넨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묘하게도 주변의 풀잎 하나조차 그의 옷자락에 닿지 못한 듯 깔끔했다.


"잊고 싶습니까?"
그는 내게 다가오지 않고, 그대로 꽃 옆 고목나무 아래에 튀어나온 뿌리 위에 걸터앉아 말했다.


"무엇을요?"

순간적으로 잊고 싶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를 모른 채하며 물었다.


그는 무언가 이미 알고 있는 듯 보였고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조용히 미소 아닌 미소를 지었다.


“기억은 하나만 사라집니다. 그것도... 이 꽃이 정한 단 하나.”


나는 물었다. “제가 고를 수는 없나요?”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불가능합니다. 당신의 기억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당신을 지켜본 것, 그게 사라집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오랫동안 지켜본 것.
그 말은… 단순히 오래된 기억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럼 당신은 이 꽃을 돌보는 사람인가요?"


"네 맞습니다. 이 꽃은 스스로 필 수 없고 스스로 질 수도 없기에.. “


그는 낮은 목소리로 이어말했다.


"누군가가 계속 지켜보고, 가꾸고, 대신 기억을 안고 있어야 잊히는 일이 가능해지거든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꽃을 내려다보니 이번엔 꽃의 밑동 아래 양분이 되어주는 흙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흙이 아니었다.


오랜 연인의 편지조각, 가족사진의 테두리, 찢긴 노트… 작고 낡은 기억의 파편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순간 현실감각을 잊은 채 몽롱해진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무엇을 잊고 싶으신가요?” 그가 다시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엔 바람이 없었고, 계절이 없었다.


다만 무언가를 너무 오래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지만 고요한 호수 같은 침묵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순간 주마등보다 강렬하게 깨달았다.


이곳은 내가 처음 찾은 장소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
나는 분명 이 정원에 다녀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을 잊고 간 것인지, 그건 더 이상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묘하게 익숙한 느낌만 남은 이곳에서 변치 않는 존재는 내 앞에 서있는 그뿐인 것 같았다.


내 감정을 조금이라도 설명해 줄 수 있는 존재.

이 공간과 꽃을 돌보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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