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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다 울컥할 수도 있죠.

40대 아줌마의 주책맞은 눈물

by 고해나

“일어나.” “빨리빨리.”

“빨리 밥 먹어.”

“어서 옷 입고, 빨리빨리”


화요일 아침이 오면 어김없이 집안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늦게 자는 아이들이라 그나마 내가 허용해 줄 수 있는 기상 시간은 8시다. 출근 시간이 늦은 남편마저도 애들한테 닦달하는 소리에 평소보다 일찍 몸을 일으켜 욕실로 들어간다.

매주 화, 목. 큰 아이 친구 엄마들과 동네 스포츠센터에서 '기적의 맨몸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기적의 맨몸운동이라 하는 것은 타바타, 서킷트레이닝을 번갈아 가며 하는 근력운동이다. 2년간 걷기, 러닝, 수영 등 유산소 운동 위주로 몸을 움직였으나 체력은 늘지 않고 이상하게 감기 몸살이 자주 발병했다. 매일 평균 1만 8 천보 이상을 걸어도 체중계 눈금은 올곧은 선비의 기개마냥 흔들림 없이 그 자리만 지켰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기초체력 근력 운동이다.

9시 20분에 시작되는 운동이라 둘째 아이를 9시까지는 꼭 등원시켜야 하는 사명감을 갖고 고사리 같은 손을 잡아끌다시피 발걸음을 재촉한다. 스포츠센터에 도착하니 시간은 이미 9시 22분. 조용히 사뿐사뿐 걸어 들어와 빈자리에 요가매트와 타월을 깐다. 1kg짜리 아령 2개를 세팅하고 실내 운동화를 꺼내 발을 짓이기듯 구겨 넣는다. 강사님의 구령이 허스키한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며 리듬감 있게 울려 퍼진다.


“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 “반대로 발 바꾸고.......”

“오늘은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시작합니다.”

“아령 들고 스쾃 자세에서 발을 번갈아 옆으로 걷다가 다시 제자리로 와서 다리를 모아줍니다.”

“자, 1분간 시작~!!”

빠른 템포의 음악과 타이머 소리를 시작으로 하나둘씩 자세를 잡고 반복적으로 움직인다.


“멈추지 말고 계속하세요." "좋아요, 베리 굿굿!"

"누가 누워있나요?" "자지 말고 일어나요.”

“포기는 김장할 때 배추나 세요.” "김장철은 이제 지났어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요.”


팔과 다리는 점점 후들후들 떨리고 입은 가을 낙엽처럼 수분기 없이 바싹 말라간다. 물 마시는 여유도 허용되지 않는다. 자세 중간에 잠깐 물을 마시려 하면 그다음 동작을 놓쳐버린다. 너무 죽겠을 땐, 물을 한 모금 입안에 머금고 조금씩 마시기도 한다. 운동 10분 후, 비지 같은 땀이 맺히고, 20분 후에는 구슬 같은 땀이 뚝뚝 떨어져 흘러내린다. 버티기 힘든 자세를 하는 어느 날에는 이런 운동을 할 만큼 왜 난 먹고 싶은 대로 먹었을까 후회도 하고, 다시는 야식을 먹지 않겠노라, 달달한 아이스 바닐라라테 대신 아메리카노만 마시겠다며 다짐을 한다.



평범한 날이었다. 어떠한 이벤트도 없었으며, 반복적인 일상이 되풀이되는 그런 날이었다. 아령을 들고 앞뒤로 힘차게 뻗는 찰나 이마로 흐르던 땀이 눈 끝을 타고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그 한 줄기 땀이 나의 어떤 것을 건드렸을까?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더 이상 티 나게 울지 않으려고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운동이 힘겨워 미치겠다는 듯 얼굴에 주름을 잔뜩 만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운동을 하고 있지? 무엇을 위해서 이러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부터 나름 자기 관리 열심히 하겠다며 운동하고 책 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고군분투하는 나 자신이 억척스럽고 딱한 마음에 자기애가 충만해지기 시작했다.

사연 많은 여자로 오해받을까 감정을 추스르며 한 동작 한 동작 집중했다. 동작 사이사이 땀인 척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눈물을 훔쳐냈다. 강사님이 마무리 스트레칭에 걸맞은 노래로 음악을 바꾸신다. 성시경, 나얼의 ‘잠시라도 우리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요가하듯 몸을 늘리며 근육을 풀어주는 동안 노래가 건드린 감정을 토닥여 준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창가에 따스한 햇빛이 내려앉아 한가롭고 여유롭다. 이 순간 생뚱맞게 쾌활한 강사님의 웃음소리가 하하하하하하 들린다. 이번엔 강사님의 웃음소리가 내 웃음 코드를 건드린다. 평소에 사람 많은 곳에서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하하하 하고 웃음이 터지는 경험도 한다. 마무리 운동 끝에는 몸을 수축해 주기 위해 굼벵이 자세처럼 웅크리고 앉는다. 무릎을 가슴 앞으로 구부리고 두 팔로 다리를 감싸 안는 동안 나를 향해 “고생했다, 수고했다, 잘했다.”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자신을 사랑하고 돌봐야 한다는 얘기는 책에서나 강연에서나 무수히 들었다. 머리로는 알겠지만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기는 어려웠고 방법도 몰랐었다. 육아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겠다며 독서, 글쓰기, 그림 그리기, 운동 등을 하면서 이렇게 하는 게 과연 맞는 건지 의심이 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했던 이유는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막연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6개월 전 수영을 하는데 실력이 도무지 늘지 않아 저질체력을 한탄했었다. 남들은 쉬지 않고 몇 바퀴씩 도는데 젊은 측에 속한 내가 숨이 너무 차 서서 쉬는 게 일쑤였다. 같은 레인의 나이 많으신 한 분이 "젊은 사람이 지구력이 이리 약해서야, 쯧쯧쯧..." 하시며 지나가기도 했다. 이런 체력으로 7킬로 마라톤을 준비했다. 뛸 수 있는 거리가 늘더니 수영도 연속 몇 바퀴씩 돌 수 있을 만큼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다. 무언가를 잘하려면 한 가지만 주구장창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운동도 병행하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이 미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스포츠 선수들이 자신의 종목 말고도 다른 운동도 병행하며 훈련하듯이 말이다. 오늘은 아마도 그동안 막연하지만 멈추지 않고 했던 독서와 운동이 협업이 되어 나를 진정으로 품을 수 있게 된 날이 왔다고 확신했다.




40년을 살아오면서 항상 남들보다 느리고 능력도 자신감도 없었다. 남들만큼 하려면 몇 배는 노력해야 그나마 겨우 따라갈 수 있었다. 이런 단점투성인 내가 싫었고, 그런 단점들을 꽁꽁 감추기 위해 마음 졸이며 남들 시선에만 온통 주의를 기울이며 살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타인의 시선에 갇혀 내 아이보다 타인의 잣대에 내 아이를 맞추는 나를 발견했다. 나를 위해, 내 아이를 위해 자존감이 턱없이 부족한 나를 먼저 키워야겠다 생각했다. 나를 돌보고자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하루도 빠짐없이 동트기 전에 집 밖을 뛰쳐나가 산책로를 한두 시간씩 걸었다. 수영을 시작했고, 달리기도 했다. 남편은 시기와 질투심인지 부잣집 사모님들이나 하는 취미를 하고 산다며 비아냥거리기 일쑤였다. '그래, 네가 얼마나 하나 어디 한번 보자.'식의 시선으로 깔보기도 했다. 3개월, 6개월 1년, 2년 꾸준히 이어가는 내 모습에 남편은 이제 내 운동 아이템을 사주려 쇼핑몰을 하루에도 몇 번씩 기웃거리며 카톡으로 링크를 공유해 준다. "마음에 들면 사줄게."

아직 내 마음을 단단하게 여물어지도록 해야 하는 과정을 더 가야 하지만 나를 따듯하게 품을 수 있게 된 걸로 그동안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사회는 잘하는 사람, 성공하는 사람만 인정하는 능력위주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그 사회 속에서 인정받고자 열심히 아등바등 살았지만 이제 안다. 그것이 꼭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사회 잣대에만 비추어 못나게 생각했던 그날들을 이젠 버리기로 했다. 최고로 잘하지 못해도, 성공하지 못해도 열심히 살아가는 나를 내가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항상 나는 나를 응원할 것이다.


노력하고 애쓰는 나, 잘했다.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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