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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출퇴근을 함께 한다는 것

눈 뜨면 출근. 눈 감으면 퇴근

by 달집사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경기도에 사는 주인공들이 서울로 출퇴근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길에서 허비해야 하는지를 웃픈 풍자로 녹여내 화제였다. 그 주인공 삼남매 만큼은 아니지만, 나 또한 경기도에 사는 사람으로서 무척 공감하는 대사가 많아 그 드라마를 참 재미있게 봤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나의 경우, 경기도 1세대 신도시인 분당에 거주한다. 대학생 때부터 직장생활까지 모두 서울로 다니기 시작했으니 하루 중 3시간은 길에서 오며가며 시간을 보내는 게 당연한 사람이었다. 지하철로 다니는 강남 언저리가 아닌 서울로 출근하려면, 일단 새벽 6시에는 눈을 떠 6시 반에서 7시 사이에 빨간 급행버스에 오른다. 9시 출근이라고 생각하면 무척 이른 시간에 서두르는 셈이지만, 그 이유가 있다. 아침 출근시간엔 5분 차이로도 사람이 붐비는 정도의 차원이 다르다. 5분 일찍 나오면 여유롭게 앉아서 갈 수 있는데, 5분 늦게 나오면 서서 가는 것도 모자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다닥다닥 붙어서 40여 분을 서서 가야 한다. 게다가 만에 하나, 재수없게 길에서 막힌다? 그럼 1시간이다. 그런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아싸리 부지런을 떠는 것이다.


그렇게 일찍 서울에 도착하면 8시가 안 되는 시간. 그럼 나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다 여유있게 사무실로 출근하곤 했다. 엄마 역시 서울로 출퇴근을 하던 가 있어 시간이 맞으면 아침에 같이 출근을 했다. 그리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 30여 분 뒤엔 각자 근무지로 총총.


그러던 시기를 지나, 이제 우리 모녀는 같은 곳으로 출근, 함께 퇴근을 한다. 집에서 스튜디오까지 지하철로 7 정거장 거리를 매일 함께 오간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수강생들로부터 가장 듣는 말 1, 2위 "두 분은 안 싸우세요?" 엄마랑 딸이 같은 일을 한다는 것에 신기해하신다. 왜 안 싸우겠는가. 작은 것에 툴툴거리고, 빈정 상하고, 토라진다. 다만 사사로운 갈등이 금방 풀릴 뿐. 엄마랑 나는 성격은 비슷한듯 조금 다르나, 코드가 굉장히 잘 맞는다. 아, 하면 어, 하고 텔레파시가 통하듯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눈치를 챈다. 엄마는 나의 베스트프랜드다.


우리는 굉장히 부지런하다. 짬내서 쉬어갈 타이밍에도 '마저 다 하고 한번에 편하게 쉬자'며 마저 채찍질을 한다. 그래서 고달프다. 동작이 빠르고, 머리회전도, 눈치도 빠르다. 안타깝게도 둘 다 완벽주의자들이다. 그래서 피곤할 수 밖에 없다. 러니 남 밑에서 나에게 주어진 '남의 일'이 아닌, 오롯이 '우리의 일'을 우리 둘이 해낸다는 것은 어찌보면 적성에 더 잘 맞기도 하다.


스튜디오를 둘러보면 사방에 할일거리 투성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굳이 찾아 만들어가며 한다. 내일 해도 충분한 일을 굳이 오늘 할당량 채우듯 꾸역꾸역 해낸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엄마는 하루종일 좀처럼 의자에 앉는 법이 없다. 내내 선 자세로 수업을 했으면서 그 이후에는 설거지를, 그릇정리를, 장 보러 다녀오고선, 또 다음 수업준비를 이어간다.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을 때라곤 밥 먹고 커피 마시며 쉬는 1시간 정도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패턴으로 일을 하니 매일 출근은 있어도 정해진 퇴근이 없다. 일을 하다보면 또 일이 있기 마련이고, 그 일을 하다보면 시간은 빠르게 흘러있고, 매일 밤 너덜너덜 파김치가 된 몰골로 귀가를 한다. 집에 가서도? 엄마랑 같이 있으니 연장선이다.


한 집에 사는 엄마와 동업을 한다는 것은 눈 뜨면 출근이오, 눈 감을 때가 퇴근이다. 스마트폰 없이 5분도 살 수 없는 요즘 시대에 나는 집에서도 폰으로 업무를 하고, 쉬면서도 일 생각을 하고, 늦은밤 잠들기 직전까지도 내일 할일에 대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하지만 불편하지 않다. 괴롭지 않다. 우리 일이니까, 내 일이니까. 매일이 새롭다. 내가 피곤해도 오늘 A만큼 끝내놓으면, 내일은 B부터 진도를 바로 나갈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노동청 신고감이라고, 근로기준법이 다 뭐냐며 떠들어도 그런 우리가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이 많은 일을 우리가 다 했어! 우리 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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