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의 발에 날개를

by 해니

운전을 하고 있으면 가끔 생경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운전이 무섭다고 피해왔던 내가 아무렇지 않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순간이 기묘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스무 살에 딴 면허증은 장롱에 십여 년간 잠들어 있었다. 서울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서 운전을 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남편이 열심히 우리를 실어다 주었기에 내가 굳이 운전대를 잡을 이유가 없었다. 나 같은 덜렁이가 아기를 태운 채로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 불안해서 안 한 것도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내가 답답했던 모양이다.


2018년, 엄마와 고모 그리고 딸과 함께 양양에 간 적이 있다. 체력이 안 좋은 아픈 엄마와 장거리 운전이 어려운 고모 대신 내가 멋들어지게 모시고 갔으면 참 좋았으련만, 쫄보 장롱면허 소지자가 기사 노릇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숙희 씨는 별말 없이 그 긴 거리를 청년처럼 씩씩하게 달렸다. 뒷좌석은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얼마 후, 여행을 다녀와서 엄마와 수다를 떨다가 운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운전했으면 엄마가 편했을 텐데. 근데 진짜 무서워서 못 하겠어.”

“너는 나이가 30이 훌쩍 넘어서 여즉 그게 무서우면 어떡해?”

“몰라요. 언젠가 나도 내가 운전해서 멀리 여행도 가고 그럴 수 있을까?”

“당연히 해야지. 운전 꼭 해. 네 발에 날개를 달아줘.”


‘날개를 단다’라...... 정말 그런 느낌일까 싶었다. 엄마도 운전할 때 늘 그런 기분인 걸까?


엄마가 돌아가시기 불과 5개월 전, 우리는 미국 서부 여행 중이었다. 엄마와 아빠, 나와 내 딸 이렇게 넷이서 떠난 3주간의 여행이었다. 우리 집의 메인 드라이버는 당연히 강철 체력 아빠였지만 그에게 조차 힘든 장거리 운전이 한번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LA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섯 시간 걸릴 거리가 1시간, 2시간 지체되면서 아빠에게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아빠를 좀 재우기로 한 뒤 숙희 씨가 운전대를 잡았다. 선글라스를 멋들어지게 쓴 엄마의 눈앞에 파아란 하늘과 끝없는 대지가 펼쳐졌다. 미 서부의 드넓은 하이웨이를 달리는 엄마의 모습은 마치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주인공 같았다. 어깨 너머로 자유로움과 행복감이 낙낙하게 전해졌다. 엄마가 말한 ‘날개’란 이런 것이었을까?


여행에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역시 운전을 하게 됐다. 엄마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고 가족들은 비상모드에 돌입했다. 경기도에서 서울 친정집으로 왔다 갔다 하려면 차로 갈 수밖에 없었다. 겁이고 자시고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도로연수 과외를 두 번이나 받은 덕분에 질질 울면서도 사고 없이 병원과 친정집을 오갈 수 있었다.


나중에 어른들에게 들어서 알았지만 엄마는 운전을 좋아했다고 한다. 현 내비게이션의 조상 격인 전국 지도책을 보면서 길을 찾아가는 것을 즐거워했던 숙희 씨를 기억한다. 생전에 딸내미가 모는 차 한번 못 태워드려 좀 속상하긴 하지만 괘념치 않아 하시리라 믿는다. 지금은 혼자서 먼 지방에도 다녀오고 놀러도 다닌다.(차를 가끔 긁기는 하지만) 엄마가 말했던 ‘날개’를 단 기분이 무엇인지를 가슴 깊이 새기면서 말이다.


tempImagewyNJ3o.heic


keyword
이전 28화잔소리 안 해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