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가 모든 기력을 빨아들이는 무더운 여름, 뛰쳐나간 입맛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면을 삶는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최화정의 간장국수’는 한번 해 먹어 보자마자 그대로 즐겨 먹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 얼음 동동 띄운 차가운 쯔유에 면을 적셔 먹는다니, 행위에서부터 마치 내 몸을 시원한 계곡물에 담그는 기분이다.
기력이 쇠해진 위장을 배려해 특별히 구매한 쌀 소면을 정성스레 삶는다. 4분 간의 기다림이 끝나면 탱글한 면발을 찬문 샤워 시킨다. 면을 씻고 있으면 생전에 시범을 보여주셨던 엄마 생각이 난다. 늘 면을 잘 씻어야 함을 진지하게 강조하셨다.
“자 봐봐, 면은 이렇게 씻는 거야.”
잔치국수를 해 먹는 날이었을 것이다. 보얗게 삶아진 소면을 채에 받친 후 리드미컬하게 물을 털어낸다. 강하게 틀어놓은 찬물 아래 채에 담긴 면을 두고 힘껏 바락바락 씻는다.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 으레 얼음을 담은 물에 씻던데 그럴 거까지는 필요 없다며 엄마는 당신만의 스타일로 면을 씻어냈다. 항상 느꼈지만 엄마의 손아귀 힘은 굉장했다. 씻는다기보다는 치댄다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 손놀림이었다. 빨래를 빨듯 씻다가 들어 올려 물기를 빼주고 또다시 빠는 행위를 네다섯 번쯤 반복했다. 이쯤 되면 남아나는 면발이 없는 거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하얀 면 뭉치는 가닥가닥 부서지기는커녕 말끔한 본연의 모습으로 콩물에 담길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그 추억을 내 손 끝에 담아 씻고 또 씻는다. 충분히 씻은 후 물기를 짜낸 면을 채반에 잠시 두고 냉장고에서 쯔유와 레몬즙, 매실청을 꺼낸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쯔유와 물을 7:3으로 섞고 레몬즙을 두세 바퀴 휘휘 돌려 뿌려준 뒤 매실즙을 1 티스푼 섞어주면 국물 완성이다. 이다지도 간편할 수가! 불 앞에 서 있는 건 면 삶을 때만 잠깐이라 몸도 마음도 덜 지친다. 엄마가 아끼셨던 일식 그릇을 꺼내 면을 다소곳이 담은 뒤, 얇게 채 썬 오이와 토막 낸 방울토마토, 삶은 달걀까지 얹어주면 여름 별미 간장국수 완성이다.
소면을 한 젓가락 들어 올려 만들어 둔 쯔유 물에 잠방잠방 적신다. 맨발로 물가에 들어가 놀다가 엉덩이를 푹 담그는 어린이처럼 면을 국물에 푹 넣기도 한다. 새콤달콤한 맛이 한껏 배인 면을 호로록 입 안에 넣으면 더위로 멍했던 눈에 생기가 돈다. 혀 끝의 돌기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쳐준다. 더운 날 지친 나를 위해 한 끼를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잘했다고 한다. 아니 그건 어쩌면 엄마가 나에게 해주는 칭찬일지도 모른다. 면 잘 삶아서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고, 대충 먹지 않고 잘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