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8일 - 산 마르띤(San Martin del Camino)
하루 동안의 꿀 맛 같은 휴식이 끝나고 다시금 시작된 까미노.
지금까지 걸으면서 만났던 한국인들과는 만시야(Mansilla de las Mulas)를 점프해버림과 동시에 멀어지고야 말았다. 아마도 약 일주일간은, 어쩌면 산티아고까지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 걸음으론 하루 26㎞ 이상은 무리이니 금세 따라잡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레온에서 아스또르가(Astorga)로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마사리페(Villar de Mazarife)를 거쳐 가는 산길과 비르헨(La Virgen del Camino)을 거쳐 가는 센다(Senda)다.
두 길은 모두 오르비고(Hospotal de Órbigo)에서 만나는데, 산길을 선택할 경우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지만 알베르게가 적어서 꼼짝없이 오르비고까지 걸어야할 수도 있지만, 센다를 선택하면 무미건조한 길이지만 알베르게가 많아서 자신의 속도에 맞춰 쉴 수 있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다. 덕분에 마을을 자주 만나고 평지를 걸었지만 밋밋하고 고된 센다는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다. 척박하고 딱딱한 센다를 걸으니 마치 까미노가 아니라 현실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레온은 까미노의 2/3지점에 해당한다. 거리상으로든 시기상으로든 어느새 절반을 넘어섰고 걸어가야 할 길보다 걸어온 길이 더 멀다. 매일 얼마나 걸었는지 적고 남은 거리를 계산하는데, 요즘들어 부쩍 아쉬움이 커지는 것은 어쩌면 까미노의 끝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꿈에서 깨고나면 난 다시 돌아가야 하겠지.'
까미노를 걷기 시작한 시점부터 매일 매일이 꿈속인 것 같았는데, 마치 자각몽처럼 현실감각이 돌아오고 있다. 꿈에서 '이거 꿈인가?'라는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꿈이 깨버린다고 하던데, 꿈을 깨면 다시 척박한 현실로 돌아 가야한다는 것이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