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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Aug 10. 2020

산티아고 순례길 - 까미노의 오아시스

6월 9일 - 아스또르가(Astorga)

아름답기는 하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걸어야했던 메세타를 지났더니 지루함과 더위를 동시에 느껴야하는 센다를 걸었던 지난 3일. 드디어 직선과 평지에서 벗어나 초반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던 둔덕(이곳에서는 산이라고 부르겠지만)과 싱그러운 초록이 넘실대는 곳들을 만났다.


오르비고를 지나 푸르름이 매력적인 산을 넘는다.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이 야속하기만 했던 메세타와 센다였지만 지금은 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푸르른 하늘을 노래하며 역시 이곳이야말로 까미노라며 즐거워한다.

쉽지도 힘들지도 않은 길. 잠깐 쉬는 바르에서의 여유도, 길바닥에 주저앉아 맞는 바람도 하나하나 즐겁기만 하다.


오르비고를 지나 아스또르가에는 길에는 숨겨진 오아시스가 있다. 바로 ‘신의 집’이라고 불리는 노점 바르(La Casa de los Dioses)인데, 각종 과일과 음료, 쿠키, 빠에야 등을 제공한다. 순례자들의 기부(Donación)로 운영되는 이곳은 마치 사막 위 오아시스처럼 달콤한 추억을 선사한다.

아스또르가 가기 6km 전쯤 만난 신의 집이라는 뜻의 La Casa de los Dioses. 털털한 주인이 맘껏 담아준 빠에야에 달콤한 과일이 일품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고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모처럼 걷는 센다가 아닌 산길을 걷다보니 저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아스또르가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몬떼 도 고소(Monte do Gozo). 약간은 흐려진 하늘에 맑은 아스또르가는 보지 못했지만 멀리서도 보이는 대성당을 내려다보니 즐거운 산이 어떤 곳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스또르가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즐거운 산이라는 뜻의 몬떼 도 고소.

산을 내려와 육교를 건너고 오르막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아스또르가. 우리는 분명 사립 알베르게에 머물기로 했는데, 이미 너무 걸어왔는지(쉴 때마다 30분씩은 쉬면서 도착시간을 한 시간 가량 초과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입구의 알베르게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주방도, 샤워시설도, 와이파이도 나쁜 것은 없기에 주저함은 없었는데 안타깝게도 딱 씨에스타에 맞춰 도착하는 바람에 동행인이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초콜릿박물관에는 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까미노 박물관(가우디의 건축물로 주교관으로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까미노 박물관이 되었다.)은 들어갈 수 있었다.

까미노 박물관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Cruz de Ferro의 철십자가의 원형이 전시되어 있기에 필수 관람 장소이다. 그런데 철십자가가 산티아고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동행인은 하나에 꽂히면 집착하는 버릇이 있는데, 철십자가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비가 올 것처럼 흐리고 거세게 불던 바람은 어제와 마찬가지다. 거기에 천둥과 번개가 겹치더니 오늘은 결국 어느 정도의 비를 뿌려댔다.


부디 내일은 맑기를. 희망을 품어보지만 서늘한 바람과 흐려진 하늘에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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