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 뽀르또마린(Portomarín)
사리아(Sarria)를 지나 뽀르또마린(Portomarín)을 가기로 한 날.
온따나스를 지나는 메세타, 레온을 향하는 센다를 걸을 때는 무더위와 강렬한 태양볕의 맹공이 힘겨웠던 것 같은데, 깐따브리아 산맥을 기점으로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선 이후 마치 봄날의 꽃샘추위처럼 춥기만 하다. 까미노 여정의 마지막을 시샘해 장난이란 부리는 것일까.
우리는 아침 일찍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사리아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 위해서였다. 물론 걸어서 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틀 연속으로 33㎞ 이상을 걷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사리아까지는 12㎞, 걸어서 약 2시간 30분이 걸리는데 버스를 타니 1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 덕분에 36㎞의 거리가 23㎞로 단축된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문명의 이기가 얼마나 감사한가 싶지만 순례라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뜻깊은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산티아고 데 꼼뽀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의 목전인 사리아는 프랑스길을 걷는 거의 모든 순례자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길을 시작하는 곳은 다양하다.
프랑스길의 시작점인 생장(Saint dean poed de port)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의 국경을 넘는 경우(약 800㎞), 프랑스를 거치지 않고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약 780㎞)나 수비리(Zubiri, 약 760㎞)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사리아에서부터 출발하는 경우도 꽤 많다.
산티아고 순례자 증명서를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를 걸어야 하는데, 사리아가 바로 100㎞ 지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순례길을 몇 해에 걸쳐 나눠 걷는 순례자들이 마지막 출발점으로 사리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산티아고 데 꼼뽀스텔라만큼 많은 순례자들이 모이게 되는 것 같았다.
사리아를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표지석을 만났다. 산티아고까지 100㎞가 남았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앞서 걸어갔던 순례자들이 표지석을 배경 삼아 인증사진을 찍고 있었다.
산티아고까지 100㎞ 지점이라는 것은 순례자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사리아에서부터 걷는 순례자들에게는 이제 시작이라는 표식이며, 생장이나 론세스바예스와 같이 프랑스길의 초반부터 걸은 순례자들에게는 긴 여정의 끝을 알리는 표식이기 때문이다.
100㎞ 지점부터는 1㎞마다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99, 98, 97, 96…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가 마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 같다.
700㎞ 가량을 걸어야 한다는 막막함이 컸던 빰쁠로나에서의 첫 날밤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겨우 100㎞만 남아있다니 만감이 교차한다.
열심히 걷다 보면 그 끝에 닿을 수 있다 하였던가. 우린 열심히 걸었고 조만간 그 끝에 닿는다. 이젠 그 아름다운 풍경도, 곳곳에서 마주하는 분뇨의 방해도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오로지 마지막,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야.’
잊을만하면 자꾸만 상기시킨다. 정말 이제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이젠 꿈에서 깨어날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