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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Nov 17. 2015

'헤픈 여자'의 변명

열렬히 헤프게 살 테야


똑같은 병원인데 

산부인과에만 가면 왜 젖은 휴지 같은 기분이 되는 걸까.

울적한 기분으로 부부들 사이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면 

왠지 어떤 변명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새하얗게 표백한 선생님의 가운이 너무나 눈부셔서

관계하는 것도 몸이 축나는 일이라는 말씀에 그만 눈물이 날  뻔했다.

좋아하는 사탕을 아껴가며 하나씩 꺼내먹었겠구나,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 안타까워서 또 눈물이 날  뻔했다. 


그래도 몸이 축난다는 말은 묘하게 내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의 의도와는 달리

관계할 때마다 열정적으로 내 삶을 소진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어차피  출퇴근하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모두 몸을 축나게 하는 것이라면

나는 이성과 마음을 맞추고 뜨겁게 몸을 축내는 편을 선택하겠다.

폭주 기관차를 탄 것처럼 열렬하게 삶의 소멸로 달려가겠다.


누가 나를 헤픈 여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나는 헤픈 여자인가, 하는 주제로 깊이 고민하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떤 남자가 내 행동이 가볍다는 식의 지적을 했고,

나는 그 말에 뜨끔했고, 그래서 내가 이성들 앞에서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되새겨 보았고,

과연 나는 행동이 가벼운 헤픈 여자였을까 반성해보았고,

나는 왜 남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일부러 가벼운 행동을 하는 것일까 내 정신상태를 분석해 보았고,

어렸을 때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며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은 부모님을 조금 원망했고,

앞으로는 가볍게 행동하지 말고 조신하게 행동해야지 하고 결론을 내렸는데

한없이 울적해지는 것이었다. 


세상엔 수 많은 헤픈 남자들이 있는데 

별 잘못도 하지 않은 내가 남자들을 홀리는 마녀쯤으로 매도되어 있는 것에 대한 울적함이었다.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가벼운 행동'들은 남자가 여자를 꼬시기 위한 '작업' 쯤으로 이해됐을 것이다. 

결국 내가 내 스스로의 경박함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부모님을 원망하고 반성을 하게 된 모든 것이

내가 여자였기 때문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씨발... 하고 욕이 나왔다. 어머나.


그러고 나서 내가 내 스스로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그때 그때 내 감정에 솔직했을 뿐이고 

젊은 여자인 내가 내 육체로 할 수 있는 일들에 충실했을 뿐이다. 

내가 이성들 앞에서 '헤프게' 굴었다면 그건 내 (망할)자존감이 떨어져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여자인 내가 남자만큼이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컸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여자들도 자기들만큼이나 호기심을 클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하는 모양이다. 

그건 남자들의 호기심이 자기들이 생각해도 징그러울 만큼 강렬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자는 해도 되는데 여자가 하면 좀 그래...' 그런 생각 때문일까. 


나는 <님포매니악>의 조를 사랑한다. 색정광이었던 조가 불행했던 것은 조가 여자였기 때문이다. 

조 역시 자기 안의 욕정을 다스리기 위해 자신을 억압하고 때려보고 별 짓을 다 했다. 

영화적으로 과장되기는 했지만, 조가 자신의 광기를 다스리고 평범해지려는 노력들은

남자 사회에 길들여지려는 여자의 노력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조가 색정광인 자신을 사랑하고, 색정광 증상을 치료받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을 때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 

조도  잘못된 것이 아니고 나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냥 스스로의 성적 특색을 인정하고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헤픈 여자, 철벽녀, 자존감이 떨어지는 여자...

도대체 누가 만들어내는 개념들인가. 

헤퍼도 괜찮고 경계심이 많아도 괜찮고 자존감이 떨어져도 괜찮다. 

지금 자기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별문제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를 사랑한다면 지금 그대로 괜찮은 것이다.

고민할 필요도 없고 반성할 필요도 없으며 개선할 필요도 없다.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단어 하나에 갇혀서 자기 고유의 특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성한테 관심이 많고 이성 앞에서는 자주 충동적이고 자제력이 떨어지곤 한다. 

그 때문에 많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래서 내 삶은 약간 다채로웠다. 

많은 시간이 흘러서 더 이상 관계할 수 없는 지경의 할머니가 되었을 때,

잠도 오지 않는 밤에 떠올릴 만한 로맨틱한 추억들을 만들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열렬히 삶을 소진할 것이다. 


할머니가 되었을 때를 상상해보라. 지금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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