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브라운, <나랑 친구하자>
여러분은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을 때 어떻게 하나요? 저는 친하고 싶은 친구들에게 선물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선물을 선택할 때 혹시 어떠한 기준으로 선물을 선택하나요? 대개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물로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나의 눈에 예쁘거나 멋있어 보이면 다른 사람도 역시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믿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걸 고르는 것은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런 경우 선물했을 때 상대방은 생각만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죠. 내가 좋아하는 걸로 선물을 하면 상대방은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실망하는 모습에 선물을 준비한 나 역시 실망하게 되겠죠?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걸까요? 바로 나와 상대와의 공감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사랑은 공감, 즉 나와 친구의 공통적인 감정이나 기분에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번 째는 무조건 비싸거나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대개 선물을 받는 상대가 누구인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귀찮거나, 아니면 어렵거나, 이것도 아니면 잘 모르는 경우입니다. 그러다 보니 비싼 것, 다른 사람들이 많이 사는 것을 선물로 고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선물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물을 준비한 입장에서는 비싼 것을 산기 때문에 마음에 부담만 갖게 되고, 반대로 선물을 받는 입장에서 본다면 비싸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그저 그런 ‘물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 또는 그 사람에게 어울릴만한 것을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첫 번째나 두 번째 경우보다 선물을 고르는 데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립니다. 그 사람이 평소에 무엇을 좋아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하고, 내가 고른 선물이 그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지 머릿속으로 그려봐야 합니다. 좀 피곤하죠? 하지만 이런 고민 끝에 준비한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 기쁨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게다가 선물을 준 사람이 자신을 얼마큼 소중하게 생각하지 충분히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일석이조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가장 좋은 선물이란 두 사람 사이에 공감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랑 친구 하자�의 주인공 루시는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오늘 새 친구를 만들기로 다짐했거든요. 새 친구를 어떻게 만들 거냐는 엄마의 물음에 루시는 자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새 친구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루시에게는 특별한 비법이 있나 봅니다. 자 그럼 루시만의 비법을 한번 살펴봅시다.
루시는 개구리들이 놀고 있는 연못에 갑니다. 작은 개구리들이 사이좋게 놀고 있네요. 그런데 개구리보다 열 배는 더 큰 루시가 반갑다며 연못에 풍덩! 하고 빠집니다. 개구리들은 루시가 반갑기는커녕 무섭기도 하고 깜짝 놀라 도망가고 맙니다. 처음부터 실패네요.
이번에는 기린과 친구가 되기 위해 나무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하지만 루시가 타고 올라간 나무는 기린의 아침밥이었어요. 결국 루시는 기린의 아침 식사를 망친 방해꾼이 됐군요.
이번엔 스컹크를 찾아갑니다. 혹시 적으로부터 스컹크를 지켜주는 것이 뭔지 여러분은 다 알죠? 네, 바로 지독한 방귀 냄새입니다. 만약 스컹크가 지독한 방귀 냄새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스컹크는 지구에서 진즉에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방귀 냄새는 스컹크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다는 의미죠. 그런데 루시는 그것도 모르고 지독한 냄새를 없애준다고 마음대로 스컹크를 씻깁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 몇 번의 새 친구 만들기에 실패한 루시는 타조를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한 번도 날아본 적 없는 타조에게 날아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타조에게 이런 질문은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어요. 날고 싶은데 날지 못하는 상처를 갖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눈치라고는 하나도 없는 루시는 급기야 꿀벌이 열심히 일해 모아 놓은 꿀을 점심으로 꿀꺽하고 먹기까지 합니다. 화가 난 꿀벌은 루시를 좋아할 리가 없겠죠? 꿀벌에게 루시는 친구가 아니라 무찔러야 할 적군일 뿐입니다!
루시의 친구 사귀기는 이제 꼬일 대로 꼬였습니다. 맘대로 안 되자 이번에는 자신의 친구가 되어 주지 않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심술을 부리고 협박을 합니다. 하지만 이럴수록 친구를 만들기는 영영 불가능해진다는 건 루시 빼고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멀찍이서 이 모든 걸 지켜보았던 홍학 한 마리가 실망한 루시 앞에 나타납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개구리에게 겁을 주었던 루시의 행동은 홍학을 만나면서 즐거운 놀이가 되었고, 기린의 아침밥이었던 나무는 루시와 홍학에게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루시가 숲 속의 친구들과 친해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반대로 홍학이 루시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루시는 숲 속 친구들과 공감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고, 홍학은 그런 루시와 공감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시는 마음만 먹으면 친구를 사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인 거죠. 내가 준비한 선물을 모두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감 없는 배려나 호의는 그 누구도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루시와 홍학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공감의 공간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생겼을까요?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너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좋아하는 것을 했기 때문이죠. 이것이 바로 공감을 나누는 방법, 사랑을 시작하는 방법입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가 좋아한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좋아하는 것도 아닌, 우리가 좋아하는 걸 찾아 공감하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