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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약점이 아픔이 되지 않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패트리샤 폴라코, <고맙습니다, 선생님>

어렸을 적, 저는 그림을 잘 그렸지만 수학은 정말 못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칭찬 대신 못하는 수학만 가지고 저를 혼내곤 했습니다. 모든 부모님들은 도대체 왜 잘하는 것은 패스하고 못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꾸짖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튼 그런 소리를 듣고 있자면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는 수학 성적이 마치 내 능력 같아 수학이 더 꼴 보기 싫어집니다. 슬픈 건 수학에 가려진 제 그림 실력은 이제 어디에도 쓸모도 없고 칭찬받는 재주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림에 대한 자신감까지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저는 결국 그림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타인의 약점을 향한 비난은 단지 약점이었던 것을 아픔으로 바꾸게 하는 위험한 행동입. 그러니 장난으로라도 친구의 부족한 점을 비난하거나 놀려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겠지요?      


또 하나, 사랑은 곧 그 사람에 대한 기대입니다. 그러나 이 기대는 1등이 되길 바라는 기대가 아니라, 부족하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기대입니다. 친구가 나보다 못한다고 놀리지 않고, 비웃지 않는 것, 나아가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고 격려를 해주는 것, 그리고 부족한 부분이 아픔이 되지 않도록 격려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주인공 트리샤는 난독증을 앓고 있는 소녀입니다. 난독증이란 글씨를 읽거나 해독 능력에 어려움을 느끼는 증상을 말합니다. 난독증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 친구들보다 글씨를 쓰거나 책을 읽을 때 평범한 친구들보다 몇 곱절 더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그런데 사실 더 힘든 건 주변의 시선입니다. 학교를 다니고 학년에 올라가도 글씨를 못 읽는다고 ‘바보’, ‘멍청이’라고 놀리는 친구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는  건 보통의 멘탈이 아니고서는 어렵습니다. ‘정말 내가 바보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친구들에 대한 분노로 학교도 가기 싫어집니다. 이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극복하거나 아니면 포기하거나. 그렇다면 트리샤는 어떻게 했을까요?

      

책을 사랑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태어난 트리샤는 하루라도 빨리 글씨를 배워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지식을 만드는 벌’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트리샤는 학교를 들어가도 글을 읽는 능력이 영 늘지 않았습니다. 트리샤는 난독증이 뭔지는 몰랐지만 자신의 언어가 친구들에 비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학교생활은 지옥이었습니다. 읽기도 어려운데 수학은 더 어려웠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벙어리가 되어가는 것만 같은 자신이 싫었습니다. 


도시로 이사를 하고 새로운 학교에 다니게 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이 약점은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과 적응하는 데 넘을 수 없는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낄낄거리며 트리샤를 놀렸고, 트리샤는 그럴수록 작아집니다. 5학년이 되었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떠듬떠듬 읽는 것도 힘든데, 친구들의 비웃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그나마 읽을 수 있었던 글자들도 뿌옇게 흐려지고 맙니다. 이런 트리샤에게 폴커 선생님이 다가옵니다.

폴커 선생님은 글자를 읽는 데 어려움을 지닌 트리샤를 위해 글자 게임을 합니다. 폴커 선생님이 단어를 불러주시면 트리샤가 칠판에 쓰는 게임입니다. 칠판에 쓴 트리샤의 글자는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제야 폴커 선생님은 트리샤가 난독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약점을 알았으니 이제 이것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으면 되겠죠?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는다면 트리샤의 약점이 결코 아픔이 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폴커 선생님 도움으로 트리샤는 매일매일 책 읽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고, 어느 날 폴커 선생님은 처음 트리샤에게 읽으라고 주었던 책을 꺼내시고는 한번 읽어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트리샤가 한 문장을 천천히, 하지만 또박또박 잘 읽어 갑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지요. 폴커 선생님은 트리샤의 기특한 모습을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학교는 지옥이나 다름없었고, 읽기 수업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시간이었으며, 수학 수업은 고문받는 시간이었다면 그건 옛날 얘기입니다. 이제 트리샤의 학교생활은 즐거움과 행복의 연속이었습니다. 글씨를 읽게 되고 책을 읽게 되면서 트리샤는 비로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꿀을 만드는 벌’처럼 ‘지식을 만드는 벌’ 됩니다. 지식을 통해 얻게 되는 달콤함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지요.  

만약 트리샤가 친구들의 놀림을 버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면, 그리고 트리샤가 폴커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또 폴커 선생님이 트리샤의 약점이 아픔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동화책을 영원히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이 책을 쓴 작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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